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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Jul 19. 2016

사라져가는 대암산 용늪

지난 주말 나는 강원도 양구 펀치볼에서 진행한 생물다양성 탐사대작전(바이오블리츠)에 참가하였다. 이 행사는 지정된 기간 동안에 정해진 장소의 모든 생물종을 기록하는 활동이다. 이 행사에 앞서 바이오블리츠 워크샵을 금요일에 가졌다. 모처럼 만난 친구들도 있고 새로운 분들도 만나서 분위기가 아주 좋았다. 토요일 아침에는 워크샵에 참석한 분들과 같이 대암산 용늪을 탐사하였다. 
  
펀치볼과 대암산이 있는 양구 일대는 한국전쟁 때 크고 작은 전투들이 많이 있었던 곳이다. 지금도 휴전선과 가까워서 대규모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주요 도로마다 군인들이 지키고 서있고, 군용 차량이 끊임없이 오고 간다. 심지어 전차 한 무리가 반대편 차선으로 지나가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양구는 지금까지 가본 그 어떤 장소보다 깨끗하고 물 맑은 곳이다. 
  
용늪이 있는 장소도 주요 군사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집합 장소에 모여 인원을 점검하고 있는데 몇 개 소대의 군인들이 도보로 내려온다. 얼굴을 위장을 하고 있지만 그 안으로 20대 초반의 앳된 모습을 숨길 수 없었다. 검문을 무사히 통과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대암산 용늪의 탐사에 나섰다. 이곳은 6월 말이지만 날씨가 아직 쌀쌀하였다. 만약을 대비해 준비해 온 바람막이를 입으면서 속으로 흐뭇하게 생각했다. 
  
주차장에 내리자 원주지방환경청 소속 해설사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였다. 대암산 용늪은 해발 1280 미터에 존재하는 고층습원이다. 이렇게 높은 위치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는 용이 잠시 쉬어 가는 곳'이라고 옛날 분들은 생각했다. 용늪은 애기용늪, 작은용늪, 큰용늪으로 구성되어 있다. 해설이 시작된 지점은 작은용늪이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나는 열심히 사진을 찍으면서 수면을 찾아보려고 했는데 보이지 않는다. 

대암산 용늪은 일 년 중 5개월 이상 동안 기온이 영하로 내려간다. 길고 눈도 많이 오는 겨울 때문에 식물이 죽어도 완전히 썩지 않고 쌓이는데 이것을 이탄층이라 한다. 이탄층은 기후변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가장 효율적으로 흡수하는 생태계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대암산 용늪은 대한민국 1호 람사르 습지로 지정되었다. 
  
해설사는 큰용늪으로 우리를 이끌면서 주위의 식물들을 소개해 주었다. 조금 걷자마자 하얀 함박꽃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산 아래에서는 함박꽃이 진지 오래전인데, 이 곳은 높은 고도 때문에 아직도 꽃이 피어 있다. 조금 지나자 소음이 들렸다. 용늪의 데크를 개량하기 위해 인제군에서 발주한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용늪 관리사무소 앞에서 다시 집결하여 큰용늪으로 들어갔다. 
  
큰용늪의 둘레는 마치 용늪을 보호하려는 듯 울창한 나무와 수풀이 에워싸고 있었다. 우리는 나뭇가지와 풀들을 헤쳐 거면서 미끄러운 데크를 지나갔다. 틈틈이 하얗게 핀 박새꽃의 사진도 찍어야 했다. 울창한 산림을 지나자 큰용늪이 우리 앞에 펼쳐졌다. 가슴이 확 뚫린 기분이다. 우리 눈앞에 펼쳐진 용늪은 거대한 풀밭이었다. 해설사는 이 대부분의 풀이 사초라고 설명하였다. 대암산 용늪에는 총 22종의 사초가 살고 있다. 사초는 습지식물이지만, 물속에 항상 잠기거나 떠있는 식물이 아니다. 다시 말해 큰용늪 대부분은 수면이 아니라는 뜻이다. 
  
데크를 지나가면서 해설사는 이곳에 사는 끈끈이주걱, 비로용담 같은 희귀식물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나는 큰용늪 여기저기에 버섯같이 솟아오르는 나무가 먼저 눈에 뛰었다. 솔방울이 위로 솟은 가문비나무가 내 손끝이 닿는 곳에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달나무, 신갈나무, 심지어 고사리도 데크 옆에서 자라고 있었다. 이런 나무들은 잘 우거진 산림 한 가운데 있어야 어울린다. 그런데 왜 용늪에 있는 건가?
  
데크를 앞뒤로 걸으면서 나는 데크 양 옆으로 풀과 나무가 유난히 잘 자리고 있음을 알았다. 이것은 일종의 가장자리 효과(edge effect)라 한다. 데크로 인해 경계선이 생기고, 그 경계선에서 습지에 있지 말아야 할 나무와 풀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데크는 이질적인 식물들이 용늪에서 번성하는데 기여를 하고 있었다. 기후변화로 인해 대암산 용늪이 점점 육지로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일 수 있다. 그러나 데크가 대암산 용늪을 육지로 바뀌게 하는 '육지화'를 가속시키고 있다. 
  
나는 대암산 용늪을 보전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육지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서는 데크를 당장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질적인 나무들을 뽑는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용늪이 습지로서의 기능을 잃어가는 원인을 찾아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처음 해설을 시작했던 장소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이 장소는 작은용늪이 있는 곳이다. 다시 한 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작은용늪은 이미 나무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습지 바닥의 상태는 보이지 않지만 울창한 나무로 볼 때 더 이상 태고적 용늪의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작은용늪을 보면서 큰용늪도 조만간 나무로 뒤덮여 사라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탐사일: 2016년 6월 25일
탐사장소: 대암산 용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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