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호선 전철 이대역에 내려 출근하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소리쳤다. 뒤돌아보니 비둘기 한 마리가 길 위에서 퍼덕거리고 있었다. 방금 전의 자동차가 비둘기를 치고 가서 경비원이 소리를 지른 것이다. 곧 환경미화원이 길 위의 비둘기를 주워 쓰레받기에 넣었다. 나는 혹시 살릴 수 있을까 하여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내가 쓰레받기에 가 보았을 때 비둘기는 이미 죽어 있었다. 경비원은 이런 일이 흔하다며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동시에 비둘기가 너무 겁이 없다고도 한다.
도심에서 비둘기와 인간의 충돌은 이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도시에서 일상이 되었다. 길거리에 버려진 음식물 쓰레기나 토사물을 먹고 있는 비둘기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너무 잘 먹어 살이 찌고, 사람을 피하지도 않아 이제 비둘기는 '닭둘기'라고 불린다. 또 배설물을 아무 데나 뿌리기 때문에 시민과 건물에 피해를 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환경부는 2009년 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하였다.
오늘날 구박받고 있지만 비둘기는 희망과 평화의 상징이다. 비둘기와 우리의 인연은 인류 최초의 문명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기원전 3000년 경 메소포타미아의 사람들은 비둘기를 본격적으로 사육하기 시작하였다. 비둘기가 우리 인류의 문화에 결정적으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노아의 방주이다. 노아가 망망대해에서 육지를 찾기 위해 비둘기를 날려 보냈다. 그리고 비둘기가 올리브 잎을 물어온 것을 보고 홍수가 물러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노아는 비둘기를 내보내기 이전에 까마귀를 먼저 날려 보냈다. 까마귀가 육지를 찾는데 실패하자 다음에 비둘기를 내보냈다. 까마귀는 단거리 선수이고, 비둘기는 장거리 선수이다. 그러므로 노아는 처음에는 방주 근처에서, 그다음에는 먼 거리에서 육지를 찾아보았다. 노아는 새들의 비행능력을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적절히 활용한 셈이다.
동물들이 일정한 장소나 둥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능력을 회귀성(homing ability)이라 한다. 비둘기는 뛰어난 회귀성으로 인해 우리 인류가 오랫동안 메신저로 애용하였다. 전쟁 중에는 비둘기가 전서구로 활약하여 많은 병사들의 생명을 구하기도 하였다.
장거리를 비행할 수 있는 새 중에서 노아는 하필 비둘기를 선택하였다. 만약 비둘기가 아닌 다른 새였다면 마른땅을 발견하고도 돌아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러면 노아는 홍수가 물러났어도 이를 확인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노아는 비둘기의 회귀성을 잘 알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치밀하게 계산된 노아의 행동을 고려해보면 노아는 뛰어난 동물행동 전문가이다.
비둘기는 야생에서 일 년에 1-2회 정도 번식하지만, 먹이가 풍부한 도시 환경에서는 무려 일 년에 5-6회까지 가능하다. 도시에서 포식자의 부재도 비둘기가 빠르게 번식하는 요인일 수 있다. 그러나 도시에서 대부분의 다른 새에게도 포식자는 없다. 많은 새들이 도시에서 사라지는데 왜 비둘기만 이렇게 번성할 수 있을까?
도시에 흔한 비둘기는 주로 절벽의 튀어나온 바위에서 둥지를 트는 양비둘기에서 유래하였다. 양비둘기는 둥지 근처에서 다른 양비둘기가 둥지를 트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야생의 비둘기는 둥지를 중심으로 영역 행동을 한다. 양비둘기는 인간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비둘기장’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사육되면서 영역 행동이 많이 사라졌다. 그 결과 오늘날 비둘기는 도시에서 좁은 공간에서도 많은 수가 동시에 번식할 수 있다.
최근 비둘기의 두뇌를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고차원 인지 처리를 관장하는 부위의 연결 회로가 사람의 그것과 아주 유사하다고 한다. 뇌의 안쪽에 위치한 해마(hippocampus)는 바다의 해마와 비슷하게 생겼다. 해마는 포유류와 조류에서 장기 기억이나 방향 찾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 뇌의 전전두엽은 흔히 '뇌의 관제탑' 역할을 하며 각종 정보를 통합하고 의사결정을 한다. 조류의 두뇌도 이와 비슷한 부위가 있다. 해마나 전전두엽은 정보 처리를 위해 뇌의 여러 부위와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이런 연결 회로가 비둘기와 사람이 놀랍도록 비슷하다.
두뇌의 연결 회로는 비슷하다고 비둘기가 사람만큼 똑똑하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적어도 비둘기와 사람이 비슷한 방법으로 주변 상황을 인지하고, 비슷한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도시에서 새들이 살아가려면 도시 환경을 잘 이해해야 한다. 건물 틈을 이용하여 번식 공간을 찾아야 하고, 장애물이나 위험요인을 피해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버리는 음식물을 식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심지어 먹이를 주는 사람도 잘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어려운 일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다. 대부분의 새는 사람과 같이 민첩한 동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 새들의 이런 본능은 사람의 음식물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여 도시 생활에 한계를 줄 수 있다. 비둘기의 고차원 인지 처리 능력은 도시에서 생활할 때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비둘기는 도시에서 사람이 다가가도 쉽게 날아가지 않는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두려움을 모르는 비둘기는 종종 자동차에 희생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런 특징은 먹이자원을 최대로 활용하게 하여 비둘기가 도시에서 번성하는데 바탕이 되고 있다. 그래서 ‘닭둘기’라는 별명은 비둘기가 도시 생태계에 잘 적응하여 살고 있다는 반증이 된다.
이 글은 2016년 10월 17일 경향신문의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610172114015&code=990100
일자: 2016년 8월 29일
장소: 서울시 명동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