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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이권 Jun 29. 2017

파주 법흥리의 수리부엉이

나는 수리부엉이를 2016년 1월 초순 경기 파주 법흥리에서 처음 보았다. 대규모 택지공사로 인해 산을 폭파하여 생긴 절벽은 멀리서 보아도 위험해 보였다. 나무뿌리가 여기저기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니 폭파의 아픔이 아직 배어 있었다. 실제 조그만 바위들이 아직도 떨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 근처에서 농사가 금지되었다.      


우리에게 위험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절벽이지만 수리부엉이가 살아가기에는 최적이다. 절벽의 틈 속에 수리부엉이 부부가 잘 어우러져 있어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수리부엉이를 관찰해온 꾸룩새연구소 정다미 소장이 위치를 가르쳐주지 않았다면 절벽에서 수리부엉이를 찾기 어려워 보였다.     


깎아내리는 절벽에서 조그만 바위처럼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는 마치 그림의 일부처럼 보였다. 필드스코프로 본 녀석들은 커다랗고 노란 눈을 깜박거리고 있었다. 분명 우리가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을 낱낱이 감시하고 있었다.      


수리부엉이는 해가 지고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하면 본격적으로 사냥에 나선다. 높은 나무에 앉아서 커다란 눈과 귀를 부릅뜨고 주위의 조그만 움직임을 다 잡아낸다. 수리부엉이는 먼저 청각을 이용하여 먹이를 탐지한다. 재미있게도 수리부엉이의 양쪽 귀는 짝짝이다. 이들의 귀는 대충 사람의 귀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그런데 한쪽 귀의 귓구멍이 다른 쪽보다 더 크고, 더 높은 위치에 있다. 이런 수리부엉이의 귀는 아주 효과적이어서 쥐, 들쥐나 곤충이 내는 작은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아무리 청각이 훌륭해도 먹이의 위치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제공해 주긴 어렵다. 그래서 수리부엉이는 청각만큼 놀라운 시각으로 무장하고 있다. 수리부엉이가 주로 활동하는 저녁이나 밤에는 빛의 양이 부족하다. 어두운 환경에서 사람과 같이 낮에 활동하는 동물들의 눈은 충분한 해상도를 얻을 수 없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리부엉이는 커다란 눈을 얼굴의 정면에 배치했다. 또 눈에 들어간 빛은 시신경을 통과하여 각막에 부딪히면 다시 반사되어 시신경에 도달한다. 빛이 눈에 들어올 때와 반사되어 나갈 때 모두 시신경을 자극한다. 수리부엉이는 눈에 들어온 빛을 재활용하여 해상도를 높이고, 밤에도 먹잇감의 움직임을 볼 수 있다.      


수리부엉이는 어두운 환경에서 사냥을 하기 위한 비법이 하나 더 있다. 수리부엉이의 깃털은 너무 부드러워 거의 소리를 내지 않고 비행한다. 마치 스텔스 비행기처럼 다가오기 때문에 먹잇감은 날아오는 수리부엉이를 눈치채기 어렵다.      


법흥리 수리부엉이 부부는 매년 2마리 정도의 새끼를 성공적으로 키워내고 있다. 먹잇감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잡아내는 청력, 어둠 속에서도 환히 볼 수 있는 시력, 부드러운 깃털을 이용한 스텔스 비행능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법흥리 수리부엉이가 성공적으로 번식하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파주 법흥리가 수리부엉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훌륭한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절벽에 위치한 수리부엉이 둥지는 네발동물이나 두발동물이 가고 싶어 하지 않는 장소이다. 늦겨울부터 시작하여 몇 달 동안 암컷과 새끼들은 둥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둥지가 안전하지 못하면 새끼를 키워낼 수 없고, 심지어 새끼를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조용한 소리 환경도 수리부엉이의 생존에 필수적이다. 자동차 소음이나 사람의 인기척으로 인한 방해가 지속되면 수리부엉이가 사냥하기 어렵다. 모든 야생동물이 그렇듯이 양질의 먹이를 제공해주는 먹이터가 없으면 수리부엉이가 살아갈 수 없다. 법흥리 수리부엉이에게는 배후에 먹잇감을 제공하는 숲이 있다.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파주 법흥리는 수리부엉이의 훌륭한 터전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곳의 운명도 바람 앞의 등불이다. 파주시가 수리부엉이가 살고 있는 숲에 ‘장단콩웰빙마루’ 사업을 진행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사업은 수리부엉이의 삶의 터전인 숲에 건물과 도로를 건설하고, 수리부엉이 둥지 근처까지 전망대를 설치할 예정이다. 밤의 어둠과 고요를 이용해 사냥을 하는 수리부엉이에게 이 사업은 치명적이다.      


수리부엉이 한 쌍 때문에 지자체의 중점사업을 그만두어야 하는가? 수리부엉이는 천연기념물이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이다. 다시 말해 수리부엉이는 법적으로 보호할 의무가 있는 생물종이다. 수리부엉이는 둥지 하나만으로 살아갈 순 없다. 수리부엉이가 살아가려면 둥지가 있는 절벽과 더불어 배후의 숲도 같이 보전해야 한다. 또 수리부엉이 숲은 신선한 공기 공급, 미세먼지 제거, 휴식공간 제공, 그리고 눈앞에 들어오는 녹색 존재 자체만으로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어 지역주민에게도 이미 큰 혜택이 돌아가고 있다. 마지막으로 파주에는 이미 ‘파주장단콩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지금 수리부엉이 숲에 조성하려고 하는 ‘장단콩웰빙마루’ 사업과 비교하여 그 목적과 내용이 유사하다. 모든 점을 고려하면 ‘장단콩웰빙마루’ 사업은 의미가 없다.      


올해 다시 법흥리 수리부엉이를 찾았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도시에서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고요함이 나를 둘러쌌다. 평소에는 듣지 못하던 소리가 들렸다. 내가 내쉬는 숨소리, 한 걸음씩 옮길 때 나는 발자국 소리. 수리부엉이가 필요한 것은, 그리고 우리가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숲의 고요함이다.               


이 글은 2017년 6월 27일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6262117015&code=990100#csidx97b5b6ac0d5e33aa852c7e4141330c7 



경기 파주 법흥리 절벽에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 꾸룩새연구소 정다미 소장 제공


경기 파주 법흥리 절벽에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 꾸룩새연구소 정다미 소장 제공


경기 파주 법흥리 절벽에 앉아 있는 수리부엉이. 꾸룩새연구소 정다미 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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