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경상북도 김천에 있는 수도산에서 반달가슴곰 수컷 한 마리가 출현하였다. 이 곰은 곧 포획되어 지리산국립공원에 있는 종복원기술원으로 이송되었다. 유전자분석 결과 이 곰은 종복원기술원이 2015년 10월 27일 방사한 개체로 판명되었다. 이 곰은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직선거리로 무려 80 km나 이동한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듣고 기쁨의 소리를 질렀다.
이 곰은 나와 개인적으로 작은 인연이 있다. 2015년 나는 지리산국립공원에 있는 자연적응훈련장에서 이 곰의 방사를 참관하였다. 이 날은 하늘이 흐려있었고, 가는 비도 내렸다. 반달가슴곰의 방사를 위해 방송국에서 취재진이 와서 반달가슴곰이 나갈 문 앞에 카메라를 설치하였다. 반달가슴곰들이 자연적응훈련장을 나가면서 얼굴이라도 비춰주면 최고의 행사가 될 것 같았다. 이윽고 문이 열렸다. 그러나 곰들은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어리둥절해 있는 우리들에게 종복원기술원 연구원은 나무 위를 가리켰다. 생후 10개월 된 새끼 곰들은 갑자기 몰려온 사람들이 무서웠다. 그래서 나무 위로 도망간 것이다. 아쉽게도 우리는 곰들이 야생적응훈련장을 나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 자리를 뜨면서 야생에서 잘 살아달라고 기원했던 기억이 뚜렷이 난다.
많은 포유동물들이 생활하고, 먹이를 얻기 위해 행동권을 확보하려고 한다. 곰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암컷과 수컷이 행동권을 확보하려는 목적에서 차이가 있다. 대부분의 양육을 담당하는 포유류 암컷은 자신과 새끼들이 먹이를 찾을 수 있는 공간이면 충분하다. 그런데 수컷은 행동권 안에서 먹이도 확보하지만 동시에 암컷과 짝짓기를 하려고 시도한다. 보통 암컷과 수컷의 행동권이 겹치고, 수컷은 많은 수의 암컷과 짝짓기를 할수록 번식에 유리하다. 그 결과 수컷의 행동권은 암컷보다 훨씬 넓다. 지리산에 있는 반달가슴곰의 경우 수컷의 행동권이 암컷의 행동권보다 약 3배 정도 넓다.
포유동물 암컷과 수컷의 행동권의 차이는 번식 이전의 청소년들이 독립할 때 재미있는 현상을 만든다. 포유류 암컷들은 행동권이 작기 때문에 태어난 곳 근처에서 비교적 쉽게 행동권을 구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수컷 청소년들은 독립을 해도 태어난 곳 근처에서 쉽게 행동권을 구하기 어렵다. 경쟁능력이 뛰어나고 행동권이 넓은 수컷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컷 청소년들은 태어난 곳에서 멀리 이동하여 행동권을 찾곤 한다. 이렇게 청소년들이 독립하여 번식할 수 있는 곳을 찾는 행동을 ‘분산’이라고 한다.
암컷과 수컷 간 가장 극단적인 분산행동을 보여주는 포유동물이 사자이다. 사자의 암컷들은 대부분 태어난 곳에 그대로 머물기 때문에 암컷 위주의 무리를 형성한다. 이에 비해 수컷 청소년들은 독립하면 무리가 없고 방랑자가 된다. 이들의 방랑자 생활은 행동권을 확보할 때까지 지속된다. 그리고 행동권을 확보하려면 암컷의 무리와 같이 있는 수컷을 쫓아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리산국립공원에 있던 반달가슴곰이 우연히 길을 잘못 들어 김천까지 배회하였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이번에 김천에서 발견된 반달가슴곰은 수컷 포유류의 분산행동을 그대로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분산이 사실일 경우 이것은 경사스러운 일이다.
수컷의 분산은 건강한 반달가슴곰 개체군을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지리산과 같이 한정된 공간에서는 몇몇 수컷이 모든 짝짓기를 독차지할 수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근친교배의 확률이 높아지고, 지리산에 있는 반달가슴곰의 건강은 전반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근친교배를 완화시키는 방법은 수컷의 분산이다. 같은 부모에 나온 형제자매라도 형제들은 멀리 떠나고, 자매들은 태어난 장소 근처에 머무른다. 그 결과 암컷들은 외부에서 온 수컷들과 짝짓기를 하게 된다. 짝짓기를 위해 새로운 행동권을 확보하고, 근친교배를 방지하기 위한 수컷의 분산은 매우 중요하여 포유류 전반에 걸쳐 나타난다.
수컷의 분산으로 현재 종복원기술원에서 진행하고 있는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성공적이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번에 분산한 수컷은 건장한 반달가슴곰으로 성장하여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는 장거리 이동을 하였다. 또 지리산국립공원에는 짝짓기가 가능한 수컷들이 행동권을 유지하고 있다. 모두 반달가슴곰들이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왕성하게 살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반달가슴곰의 분산은 우리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져준다. 지리산국립공원에 얼마나 많은 반달가슴곰들이 살 수 있을까? 앞으로 반달가슴곰들은 계속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분산을 시도할까? 만약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을 벗어나면 인간과의 충돌이 있지 않을까?
수컷 한 마리가 분산하였다고 해서 지리산국립공원이 반달가슴곰으로 포화상태가 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암컷이 분산을 시도하면 상황이 다르다. 수컷은 짝짓기를 위해 분산하고, 암컷은 먹고 살기 위해 분산한다. 만약 암컷이 분산을 시작하면 지리산에 새롭게 반달가슴곰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고 보면 된다.
모든 건강한 개체군이 그렇듯이 앞으로 지리산국립공원에서 수컷 반달가슴곰의 분산은 계속 이어진다고 예상한다. 이 새로운 국면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설악산부터 지리산까지 연결된 백두대간을 따라 점차적으로 반달가슴곰이 살 수 있게 하고, 반달가슴곰이 서식지간에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반달가슴곰이 지리산에 재도입된 2004년 이후 주민들과 등산객들은 반달가슴곰과 같이 지내는 방법을 배우고 실천하였다. 그 결과 지금까지 큰 사고가 없었다. 물론 앞으로 인간과 곰의 충돌이 없다고 보장할 수 없다. 그렇지만 지리산 주민들의 선례를 보면 우리 시민들도 반달가슴곰과 충분히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글은 2017년 7월 25일 경향신문 [장이권의 자연생태 탐사기]에 발표되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707241123001&code=99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