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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May 06. 2019

주마간산 평화누리 ③

4길 행주산성 공동묘지에서 바라보는 한강  

경기도 고양 사는 사람에게 행주산성은 친숙하다. 북한산성이나 남한산성만큼  많이 찾지는 않지만 인지도가 떨어지지는 않는다. 그건 아마 권율 장군과 행주대첩 이야기가 교과서에까지 소개된 이야기이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산성이 있는 이 산이 덕양산이란 사실은 덜 알려져 있다.

산성 위에서 내려다보면 한강이 보인다. 한강 왼편으로 강변북로가 내려다 보이고, 오른쪽 큰 다리가 행주대교다. 강변북로와 행주대교 근처로 난 자전거 길이 산성 아래로 이어진다. 전망이 좋다. 특별한 무기가 없었을 시절의 전투에서 함락시키기 어려운 지형이란 걸 쉽게 알 수 있다.    

이번엔 이 행주산성 평화누리길이다. 덕양산 중턱을 돌다가 위로 올라와 다시 정문으로 나오는 길로, 평화누리길 6길이다. 산성을 한 바퀴 돌아 거의 원점으로 내려오는 짧은 순환길이란 점에서 색다르고 트레킹 코스로도 좋다. 유료로 입장하는 공원 내의 길과 산성 외곽 길이 이어진다는 것도 특별하다. 공원 입장을 어떻게 관리하는지 몰라도, 아무튼 들어가는 쪽문이 따로 나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점보다 더 특별한 것은 묘지다. 평화누리길 어디를 가나 묘지는 많다.  명당은 다 산소가 차지하고 있다고 하는데 실감할 수 있다. 문중 선산들이 많아 왕릉을 방불케 하는 비석을 세운 곳도 있고, 가지런하고 깔끔하게 관리된 곳도 흔하다. 반대로 수년간 명절에도 찾지 않았던지 풀이 수북하게 자란 곳도 있다. 묘지를 만들고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있어 보이는 돌 하나 박아 넣고, 경관을 정리하는 데도 큰돈이 든다. 매년 자라나는 풀을 베고 정리하는 것도 정성이다. 해서 죽은 자들의 땅도 경관은 천지차이다.   

행주산성의 묘지는 두 곳 정도 봤다. 산 가운데 안쪽으로는 문중묘지 같은 곳이 있다. 산을 도는 평화누리길만 따라 가면 이곳으로는 진입할 수 없다.  범위와 자리한 모양으로 볼 때, 묘지는 한 벼슬한 이들의 것 같기도 하지만 한눈에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조는 나름 이름 떨치며 고장의 명문으로 살았으나, 후대로 내려오면서 여러 이유로 세력이 사그라진 탓일 테다. 다들 복 받자고 좋은 곳에 조상 묘를 만들었을 텐데도 흥망은 따로 있는 법. 그 사실을 확인시켜 주듯 또 다른 공동묘지가 있다.

평화누리길을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이처럼 공동묘지 사잇길을 걷게 될 줄은 몰랐다. 작은 묘비라도 가지런히 세워졌고, 가끔 벌초라도 해주는 그런 곳이 아니다. 봉우리의 반은 깎여나간 작은 무덤들이 여기저기, 그야말로 방치된 듯 흩어져있다. 달빛 교교한 한밤 중이라면 '전설의 고향'이 이곳이 될 거다. 수많은 혼들이 하나둘 무덤에서 나와 아래 한강과 행주대교를 텅 빈 눈으로 바라볼 것으로 추정.

'아, 그래 이곳이 격전지 아닌가?  있어, 행주대첩 때 전쟁하다 사람들이 많이 죽어서 그런가' 하고 별 뜻 없이 생각이 들었는데, 안내판을 보니 정말 그랬을 성싶다. "대부분의 무덤은 한강을 향해 남향으로 만들어졌으며, 무덤의 봉문도 일반 묘소에 비해 매우 작은 규모이다. 일설에 의하면 이 무덤들은 임진왜란 당시에 싸우다가 전사한 민관군 병사와 여성, 승병들의 시신을 처음 묻은 곳이라 한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일제 강점기 시대에 지도면 행주 지역의 공동묘지로 정해지면서 더 많은 무덤이 들어서게 되었다고 한다." 안내판은 이렇게 이곳의 연유를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이 끝을 맺고 있다. "그릭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는 많은 무덤에서 인생의 소중함을 느껴본다" 하지만  인생의 소중함보다는 무상함을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이 않을까.

봄마다 무덤가엔 꽃이 핀다. 할미꽃, 조개나물, 제비꽃, 각시붓꽃, 애기풀 .... 돌보지 않은 무덤에 정명을 모를 고사리가 가득 자라난다. 왜 그렇게 무덤가에는 싱싱한 생명이 싹트는 것일까? 사람의 손으로 땅을 파고, 그 속에 관을 넣고, 흙을 덮을 때 얼마나 큰 슬픔과 두려움이 함께 깃들었을까. 그런 죽은 자의 땅에 싱싱하고 예쁜 선명한 색의 꽃들이 피어나는 것을 볼 때마다 생과 사가 하나가 되어 무엇을 말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공동묘지 지나 길을 따라 가면 덕양산 비탈을 오른다. 한강을 따라 고양 쪽으로 들어오는 강변북로에서 볼 때마다 참 가파르다 싶었던 그쪽 사면이다. 조금 공원 안으로 들어가는 쪽문으로 평화누리길은 이어진다. 시종일관 길을 알려주는 리본 표시가 잘 되어 길을 잃고 다른 쪽으로 빠질 염려는 없다.

공원 안으로 들어와서도 경사는 계속되지만, 잘 단장한 공원 벤치에서 한강을 바라보고 한 숨 돌린다. 위에 아름드리 살구나무 고목 한 그루가 산성을 지키듯 서 있다. 그러고 보니 행주산성의 '행'이 살구나무 '행杏'인 사실이 떠오른다. 고양으로 들어가는 도로 한 곳은 길가로 열을 지은 살구나무 가로수가 있다. 봄마다 근사한 풍경을 만든다. 살구나무 아래 개를 묶어두지 말랬는데...

이제 하산하는 길이다. 서두르지 말고 여기저기를 둘러보면 생각보다 보고 쉴 곳이 많다. 남한산성, 북한산성처럼 넓지 않고 한 구역 정도이지만 나름대로 깊고 깔끔하다. 행주산성 앞의 카페며 식당만이 다인 줄 알았는데, 안쪽 숲을 느낀 것이 수확이다. 아, 공동묘지도 있었지. 길은 아래로 이어져 한강변을 따라가다가 안으로 들어가 고양 호수공원으로 이어진다. 밝고 화사한 고양 일산 명물 호수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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