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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Jun 02. 2021

어서 와! 모종삽은 처음이지?

새로 숲을 열어가는 병아리 떼의 숲 속 트레킹


미리 도착해서 숲을 둘러봤다. 익숙한 곳에다 그리 넓지 않은 범위니까 바쁠 건 없다. 한 이삼십 분이면 되겠다. 아침까지 비가 온 바람에 땅이 질다. 숲길을 뒤덮은 풀들이 물을 잔뜩 물고 있어, 신발이 맥없이 금방 젖었다. 한 50m 정도나 들어왔을까. 아침이지만 어둑한 숲 속이 나름 깊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풀과 나무가 이렇게 자라난다는 게, 이 속에 혼자 있다는 게 종종 믿기지 않는다. 어쩌다 일이 되었지만, 그래도 이 시간이 좋은 건 맞다.


짧게라도 밧줄을 걸어보려고 했다. 두 나무 사이에 아래 위로 두 줄의 밧줄을 묶는다. 밧줄이 모양을 갖추면 아래 밧줄 위로 발을 딛고 위의 밧줄을 두 손으로 잡고 이동하는 방법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밧줄은 출렁거리고 아래로는 빈 공간이다. 글로만 설명하니 밧줄 시설을 이용한 뭔가 전문적인 프로그램? 

실제 두 눈으로 확인해 보면 현장의 밧줄 길이는 고작 어른 세 발 자국 정도고 아래로 공간은 어른 무릎 정도다. '뭐야 이거 아마추어같이?' 하지만 세 살짜리 아이들에게는 적잖은 도전이 될 수도 있을 테니, 좋은 경험이 되기를 기대한다. 나무에 밧줄을 꽁꽁 묶는다.


적당하게 오늘의 동선까지 짜고 나니 약속한 시간이다. 제시간에  도착한 '손님'을 맞이해  함께 거미줄을 만들기로 계획했다. 그동안 다른 두 팀이 도착해 인사한다. 안녕^^ 모두 거미줄을 만드는 데 참여시킨다. 거미줄은 넓고 탄력 있는 고무밴드를 나무 사이를 이어주는 방식으로 만든다. 다 함께 몇 번씩 잡아당기며 경험해 보도록 했다. 완성하고 나서 먼저 안으로 들어가 모두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선뜻 나선 두 명을 따라 주저하던 두 명도 거미줄 속으로 들어섰다. 

모험, 아니 그냥 놀이가 이제 시작된다. 특별한 규칙 같은 건 없지만, 나름 나만의 진행 요령 한두 가지는 구비했다. 하지만 요령은 둘째고 그때그때 재미있으면 그만이다. 적당히 놀다가 이야기를 나무며 자연스럽게 거미줄을 거둔다.


'거미줄이 다 어디로 사라졌나?' 좀 전에 다 보고도 갸우뚱하는 '단골손님'을 모시고 숲길로 든다. 조그마한 발걸음을 담담하게 옮기는 두 눈을 들여다보면 대견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고 아무튼 참 빨려 들어간다. 모르는 척 뒷짐을 지고 길을 오르다 돌아다보면 이런 혼잣말이 나온다. '이건 사람이 아니무니다. 병아리이무니다.' 누구든 마찬가지일 걸.

 병아리 중 한 마리가 먼저 손을 내밀 때, 숲은 새로 열린다. 내가 숲이 되고 아이가 숲에 기대는 것이라면 더 기대할 바 없겠다. 언젠가 그리 되겠지? 아이들을 도와 함께 걷는 엄마들은 모르겠지만 그런 희망을 숲 속에 던져본다. 십여 분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지만 쫑알거리는 아이들의 소리를 나무들에게 들려주며 숲 속의 트레킹을 끝냈다.  


이제 습지로 흙놀이 간다.  어서 와! 모종삽은 처음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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