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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randol Apr 09. 2021

꽃잎이 눈처럼 떨어진다

아이는 '꽃눈'이라고 두 눈 반짝이며 말했다.

아이들 눈에도 지난번보다 초록 잎이 더 많은 게 확연하다. 지난번은 사실 어제다. 그만큼 빛을 향해 달리는 꽃잎의 속도는 맹렬하다.  다음 주가 되면 아이들에게 한 예언을 지킬 수 있을까? 꽃은 온데간데없고 잎만 무성하리니. 

바닥에 떨어진 꽃잎을 보다가, 어떻게 꽃잎만 이리 떨어지는 걸까 말하며 꽃을 한번 살펴보자고 했다. 아이들 벚나무 쪽으로 마구 달려갔다. 꽃을 꺾어 들고 아이들 눈앞에 갖다 댔다. 다섯 장의 꽃잎을 헤아려 본다. 벚나무가 장미와 친척이며 이 친척들은 꽃잎이 다섯 장씩 달렸다는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말해 줘야지.  

아이들은 꽃 속이 궁금하다. 초등학생이니까 암술, 수술도 다 잘 알고 있다. 뭐가 암술이고 수술인지 들여다본다. 내 눈에는 흐릿해 보여도 아이들 눈에는 가느다란 그것들이 선명하게 서 있을 것이다. 그래도 루페를 가져오지 않은 걸 내심 미안해하며 속죄의 마음으로 '그래 다음 시간에는 '더 크게' 한번 보자꾸나' 하고 생각했다. 

벚꽃이 지고 나면 그 자리에 뭐가 만들어질까? 하는 질문에 아이들은 금방 열매라고 대답한다. 이제 내가 항상 하는 질문을 던질 차례.(너무 상투적인가?) 사과나무 열매는? '사과', 배나무 열매는? '배', 밤나무 열매는? '밤' 벚나무 열매는? 벚??  이 질문은 속도가 관건이다. 빠르게 질문을 던지며 허를 찌르면 좀 재미난다.  초딩이니까 잠깐 기다려주면 누군가 한 명은 버찌를 대답한다. '버찌' 예쁜 이름이지. cherry, 뭔가 비슷한 어감은 기분 탓인가? 정확히 버찌와 체리는 좀 다르지만.   

장차 버찌가 될 부분은 어디인지 물어보면, 아이들은 대충 씨방 부분을 지적한다. 물론 이것은 학교에서 배웠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직관적으로, 감각적으로 알 수 있다.  자연은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니까. 씨방이 있는 가장 안쪽에는 누구나 말할 수 있는 그것이 있는데, 아이들은 모두 그게 꿀이란 것을 안다. 루페 없이 관찰했는데도, 반짝이는 뭔가가 뚜렷하게 보인다. 이게 꿀이라면 아마 끈적거릴 테지? 돌아가며 한 번씩 만져보니 정말 그렇다. 과연 꿀일까? 맛을 보면 대번 알겠지. 살짝 혀만 대어볼까? 순간 주춤하지만, 한 명의 지원자가 나오는 순간 모두 맛보고 싶어진다. 용기 있는 자가 모두를 이롭게 하는 순간. 그런데 미각은 다 따로 노는 것인지. 별 맛이 없다는 반응부터 달다, 뭔가 짠맛이 나는 듯하다 까지 다양하다. 

"너무 조금 먹어서 그런 것 아니에요?" 아이들의 반응이 이렇게 나올 때, 이 일을 수습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꽃을  따다 마구 먹게 할 수는 없는 일이니까. 다음번에 벚나무 잎이 제대로 나왔을 때는 이파리 아랫부분의 선점도 관찰하고, 다시 한번 맛도 보아야겠다. 잎에서도 꿀을 만들어내는 벚나무 특유의 '화외밀선'과 꿀 좋아하는 개미와 진딧물 이야기도 곁들여서. 


봄바람에 꽃잎이 눈처럼 떨어진다. 그걸 본 아이는 꽃눈이라고,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도로 위에 떨어진 벚꽃 잎은 자동차가 달릴 때마다 회오리 치듯 춤을 춘다. 이 모습을 언제까지 볼 수 있을까? 꽃이 만발한데도 성질 급한 잎들이 벌써 차고 올라온다. 아직은 뾰족하게 말려서 다 펴지지 않았지만 곧 나뭇잎의 온전한 모습으로 태양의 세례를 받을 터. 잎 테두리의 톱니가 가지런하고 끝이 뾰족한 그것이 뚜렷하게 보일 때 또 하나의 봄이 시작된다고 믿고 싶다. 이렇게 봄을 나누어보면 짧은 봄어 덜 아쉬울래나.  

그렇게 해서 꽃잎이 싹 다 지고 초록이 반짝거릴 때쯤 화무십일홍에 한숨 쉴까 아님 반짝이는 초록 희망으로 두근거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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