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코로나 3월
코로나 이전의 나는 일상에서 먼 여행을 휴식으로 삼아왔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믿었고 망설임 없이 여행에 나섰다. 순례길의 오르막길도, 인도의 낡은 기차도 내 의지를 꺾지 못했다. 그러니 매일 같이 야근에 시달리면서도 예정된 포르투 여행만이 유일한 도피처였다. 그러나 3월 초·중순,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코로나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나는 불안감 속에서 ‘해외안전여행’, ‘한국인 입국금지’ 등의 키워드를 습관적으로 검색하며 현지의 확진자 세가 잠잠하다는 사실에 희망을 걸었다.
설렘보다 불안을 안고 내린 포르투 공항에서 택시 운전사는 먼저 내 손에 소독제를 뿌려주었다. 마중 나온 일행과 함께 숙소에 짐을 풀었다. 보름가량을 먼저 여행 중이던 그와 내가 느끼는 온도 차는 상당했다. 유럽의 관광지들도 문을 닫기 시작했지만, 현지인들이 경계하는 건 마스크를 쓴 동양인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에 곧장 <해리포터>의 모티브가 된 서점으로 향했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에는 ‘COVID-19’라는 단어가 강조된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실체 없던 불안이 존재감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상심을 달래며 언덕에 올랐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멍해졌다. 지구 곳곳의 여행자들이 도시 전경을 발아래 둔 채 망중한을 즐기고 있었다. 한없이 평화로운 분위기에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바이러스가 점령한 별에서 몇 광년쯤 떨어진 미지의 행성에 불시착한 듯한 이질감이었다. 물론 이 같은 낭만이 허상이었음을 깨닫는 데는 하루도 채 걸리지 않았다.
어딜 가나 휴점 안내문과 마주치기 일쑤였고, 밤거리를 걸을 때면 술 취한 무리가 ‘꼬레아나’, ‘코로나’라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국경이 맞닿은 스페인에서 확진자 세가 급증하며 상황은 악화했다. 결국 며칠 여 남은 일정을 포기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다시 언덕에 올랐다. 폐쇄된 공원 너머로 처지가 비슷한 이방인 몇만이 난간에 기대서 허망하게 석양을 바라봤다. 오히려 지나치게 찬란했던 광경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었다.
귀국 후 자가격리를 지내는 동안에 비로소 여행이 끝났다는 느낌이 찾아들었다. 달라진 일상에는 코로나도 무르지 못한 낭만 또한 자리했다. 이를테면 창문을 열다가 마른 봄 냄새를 맡았을 때, 어느새 핀 봄꽃을 발견했을 때, 잠 못 이루는 밤에 초승달이 눈에 들어올 때... 눈앞의 이질적인 풍경이 아니라 현실적인 감각에 스며드는 낭만이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