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카페 신비의사랑
제주 공항에서 출발할 때는 이슬비가 내리더니 신비의 도로에 도착할 즈음 소나기처럼 빗방울이 굵어졌다. 제주시에서 4km 떨어진 노형동 1100로, 일명 도깨비 도로는 오르막길이 내리막길로 보이고, 내리막길이 오르막길로 보이는 착시현상으로 이색적인 관광명소로 알려진 곳이다. 주변에는 도깨비 조각상과 산책로, 휴게실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곳에 제주도 카페 신비의 사랑이 있다.
신비의 도로 옆 신비의 사랑.
신비의 사랑은 지중해풍 독채 건물, 넓은 주차장, 야외 정원으로 여행자가 들리기 좋은 곳이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오른쪽 진열대 원두커피들이 반짝이며 나를 반겼다. 브라질, 콜롬비아, 과테말라, 코스타리카, 온두라스, 인도네시아, 에티오피아, 케냐 등 세계 커피가 열렬히 나를 환영하듯 향기로운 인사를 건넨다. 널찍한 소파에 앉아 카페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핸드드립, 로스터리 전문 카페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대형 로스터기 2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커피잔, 여러 대의 그라인더, 다양한 드립퍼, 진열장에서 손님을 기다리는 원두커피들.
다들 커피를 시작할 때 특별한 계기가 있다는데 정말 우연이었다. 15년 전부터 와인을 업으로 삼으려 공부를 해왔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점점 어려워졌다. 그러다 와인 이외 다른 분야인 초콜릿, 커피, 제과제빵 분야를 배우면 도움이 된다고 해 하나씩 배워나가고 있었다. 제과제빵, 초콜릿을 조금 접하고 다음으로 차를 시도했는데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았기도 했도 이해하기에 참으로 어려운 분야였다.
그러던 중에 당시 서울에서 열린 와인 메이커스 디너에 참여하게 되었다. 남는 시간에 우연히 삼청동 카페를 가게 되었는데 커피를 마시면서 카페 사장님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그날 와인 행사에 참여하면서 머릿속에는 커피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는 그날 바로 남대문 시장을 가 생두, 드립 도구, 통돌이 로스터 등 커피 관련 제품을 사 제주도로 내려왔다.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로스팅을 제일 먼저 시작했다. 스스로 공부하면서 로스팅 기법을 배우고 로스팅 한 원두를 운영하던 와인숍에서 손님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후 핸드드립, 원산지 공부, 커핑 등 다양한 방법으로 나만의 기술을 익혀나갔다. 커피는 말 그대로 와인과 많이 닮아 있었다. 와인을 공부했던 지식 때문인지 커피는 내게 친숙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와인의 세계’에서 ‘나’는 ‘중간자‘의 역할이었지만 ’커피의 세계’에서 ‘나’는 로스팅을 통해 마치 ‘창조자’의 역할을 맡은 것만 같았다.
커피를 처음 접한 게 2008년인데 겁도 없이 2009년 이 자리에 커피숍을 열어 와인숍과 3년 정도 겸업을 했다 어느 날 특별한 고민 없이 와인 일을 접고 2012년부터 커피에만 집중하였다.
이때 용기를 내게 된 터닝 포인트가 된 계기가 있었다. 커피를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것은 책의 한 문구였다. 제일 처음 산 커피 관련 책. 카페를 소개하는 책이었다.
‘Coffeest가 죽어가던 나를 살렸다’ 이 글을 ‘Coffee가 죽어가던 나를 살렸다’라고 보였다. 와인을 계속해야 하나 하는 기로에 서 있던 나에게 이 책의 문구는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다. 와인과 커피 사이 방황하는 내가 커피인으로 살아야겠다 결심하게 되었다.
매일 아침 카페에서 로스팅을 한다. 그만큼 원두를 사 가시는 손님들이 많다. 매출의 90%는 원두 판매다. 현재는 커피밥 로스터기를 사용한다. 많은 이들이 국산 로스터에 대한 의구심들을 많이 갖고 있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한 현존하는 로스터기 중 가장 강력한 옵션을 자랑한다. 카본프리 메탈화이바 버너, 드럼 속도 조절, 배기량 조절. 게다가 버너에 유입되는 외기를 막아주는 특별한 기능까지. 물론 가격이 저렴한 건 덤이다.
처음 카페를 오픈할 때 수망 로스팅을 했다. 1주일 만에 이따로 로스터로 바꿔 직화식 로스팅을 했다. 그 이후 10년 정도 후지로얄, 본막 등 직화식 로스터기를 사용하다 새로운 도전이었던 반열풍식 커피 밥 로스터기를 사용 중이다. 처음엔 낯설었지만 적응되고 보니 예전에 비하면 너무 편하고 신박해 어벤저스 같다.
단연 원두가 장점이다. 원두 종류는 상시 30가지로 로스팅 후 1주일 기점으로 원두를 판매하고, 그 기간이 지나면 50% 할인해 공급한다. 그때만 찾아오시는 분들도 많다. 카페에서 판매되는 원두는 스타일에 따라 여러 기법을 쓴다.
스페셜티 원두는 높은 온도로 익힘에 집중하는 노르딕 로스팅을 한다. 맛보다 향에 중점을 둔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생두를 익혀내어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이다. 하지만 판매량이 높은 대부분의 커머셜 원두들은 전통적인 로스팅을 한다. 커피밥 로스터만의 무산소 옵션 덕분에 원두의 맛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게 그 특별함이다. 가격에 비해 맛이 좋아 매일 커피를 집에서 마시는 분들이 즐겨 찾는다.
커피는 독학으로 시작했다. 어떤 사람이나 책을 통해 배우게 되면 그 사람을 따라 하게 되어 스스로 찾고 싶었다. 와인을 배울 때 다른 사람을 답습하게 되는 나를 발견하고 힘들었었다. 그래서 실패를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나만의 방식으로 커피를 알고 싶었다. 내가 느낀 맛과 향을 그대로 전하고 싶었다. 어찌 보면 미련한 방법이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나만의 커피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제주도에 놀러 온 여행자도 많지만, 매일매일 커피를 마시는 현지인들이 대부분의 단골이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에는 우리 카페에는 손님이 정작 없다. 한적한 평일 단골들이 카페에 들러 커피를 마시거나, 원두를 주로 사 간다. 밥은 집 밥이 최고인 것처럼 매일 마시기 좋은 커피를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집 밥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함이 없으니까.
연휴의 늦은 오후 교외에 나가 예쁜 카페에 들려 커피를 마시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 카페에 들려 원두를 사들고 가는 뒷모습을 보면 너무 행복하다. 커피 맛을 탐미하는 자라면 핸드드립으로 내린 강배전 커피 맛도 권하고 싶다. 나처럼 새로운 (이제는 새로운 맛이 되어버린) 쓰디쓴 커피 맛에 빠져들지도 모르니. 이미 그런 분들은 다시 늘어나고 있다.
큰 욕심은 없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알콩달콩, 내가 좋아하는 커피를 하면서, 매일 마시고 싶은 커피를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로스터 기법도 좋지만 내가 하는 방식의 고전 로스팅 기법을 살려 신비의 사랑을 이어갈 생각이다.
윤승섭 대표는 옛날 방식으로 로스팅 해 강한 쓴맛이 느껴지는 강배전을 선호한다. 물 온도 82도, 물 빠짐이 느린 원추형 드립퍼를 사용해 거친 쓴맛은 더욱 진했다. 쓴맛 뒤에 오는 단맛을 느낄 수 있는 커피 맛, 묵직한 그날의 커피 맛은 특별한 경험으로 기억된다.
특별한 날이 아닌 늘 마시는 커피가 신비의 사랑 커피였으면 좋겠다는 윤승섭 대표는 바람은 이미 이루어진 듯하다.10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그의 눈동자는 아이처럼 반짝였다.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세 아이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는 사람. 어릴 때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 일과 가정의 균형을 깨트리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 원대한 꿈을 꾸지는 않는다.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릴 뿐이다.
커피로 인해 인생이 변하고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는 그의 삶이 영화처럼 느껴진다. 드라마틱 한 그의 인생에서 남의 시선도, 최첨단 시설도, 멋진 인테리어도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그 누구도 따라 할 수 있는 그의 삶 논 픽션! 단지 지금 행복한 일을 하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매일 아침 향긋한 커피를 마실 때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그의 일상도 굿모닝이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