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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남동 심리카페 May 30. 2023

가족의 행복을 위해 부모님이 먼저 벽을 부숴줘야 합니다

나의 기대가 그에게 족쇄로 채워져서는 안 된다. 내 사랑이 그를 가둬 버리면 안 된다. 내 꿈이 사랑하는 이를 짓누르는 수레바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내가 할 일은 그를 짓누르는 수레바퀴를 치워 주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숲길에 있는 마음약방, 연남동 심리카페입니다.


도입부에 들려드린 말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 나오는 말입니다. 심리카페에서 상담을 해드리다 보면, 부모의 기대와 개입으로 인해 수레바퀴를 굴리듯 삶을 살아내가고 있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나'를 잃은 채 수레바퀴에 짓눌려 있는 경우도 자주 보게 되죠. 


부모님이 되었든, 자식이 되었든, 짓누르는 수레바퀴를 치우는 것에 관해 이근후 님의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라는 책에 나오는 부분들을 각색해서 들려드릴게요. 






조울증에 시달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자수성가 스타일로 자신의 분야에서 크게 성공하고 인정받는 분이셨습니다. 아버지를 존경하면서도 아버지와 비교당하는 것에 은연중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모에게 누가 되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해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만 조을증에 시달리고 있을 뿐이었죠.


이분의 조울증 치료는 시간이 오래 지나도 생각만큼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선배 의사에게 치료 방법에 대해 자문하자, "그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돼."라는 답변이 돌아왔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 계신 한 자식은 결코 그 그늘을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선배의 말대로 훗날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이분은 별다른 치료 없이 병이 나았습니다. 


자식에게 부모는 하나의 벽입니다. 벽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을 하죠. 벽은 보호막도 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자식이 그 벽을 뛰어넘으면 완벽한 성장을 이루게 되지만, 벽이 높고 튼튼할수록 부모에게 기대는 습관이 몸에 밴 자식은 부모에게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이렇게 되면 자식은 물론 부모도 행복하지 못합니다. 특히 노년의 부모는 자식 뒤치다꺼리를 하며 말년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럴 때는 부모가 먼저 그 벽을 부숴 줘야 합니다. 자녀가 여리고 착하고 섬세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면 더욱 그래야 합니다. 


자식의 연령에 맞게 자식의 뜻을 수용하고 인격체로서 존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식이 성인이 된 뒤에는 더 이상 이래라저래라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자식의 삶은 자식이 주도권을 가져야 합니다. 자식 삶의 중심축이 부모가 아니라 자식에게로 이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재산이 많을 때, 또는 부모 스스로 인생 경험이 풍부하다고 생각할 때, 부모가 집안의 주도권을 늦게까지 잡고 있는 경우가 흔합니다. 눈을 감을 때까지 온갖 지시를 내리며 자식을 믿지 못하는 이들도 있죠.


마흔 살이 된 자식이 아직도 변변한 직장 없이 부모에게 기대어 살고 있다며 걱정을 토로하던 노신사가 있었습니다. 회계사 출신으로 사회적으로 성공하여 경제적인 풍요는 물론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며 사시는 분이셨습니다. 


자식에게 의식주는 물론 다방면에서 최고의 교육과 문화를 누리게 해 줬죠. 온 가족이 한 달에 한 번은 꼭 음악회에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자식이 마흔 살이 된 지금도 매달 그 음악회 행사를 계속하고 있다는 말에 많이 놀랐습니다. 저는 자식의 반응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말끝을 흐리시더군요. 


과연 자식은 어떤 마음으로 음악회에 가는 것일까요? 노신사는 자신이 죽고 난 뒤 자식이 어떻게 살까, 노심초사하며 인생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건강하다고 장담하지만 곧 정신이 흐려지고 판단력이 떨어질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는 정말 어떻게 할 것일까요?


노년은 내 몸을 잘 건사하면서 삶의 의미를 곱씹고 즐기는 시기여야 합니다. 이런 시간을 자식 걱정에 바치고 있으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노신사는 자식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니 자식이 홀로서기를 못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다만,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와 자식이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부모는 일정 기간의 양육과 보호가 끝나면 자녀가 스스로 인생을 살도록 내버려 둬야 합니다. 모든 일을 자식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도록 해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 모두가 행복하게 사는 길은 의외로 쉽습니다. 


부모와 자녀가 각자 자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면 됩니다. 물론 자녀의 삶이 불행해지면 부모가 걱정을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부모 세대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해줄 수 있는 지지와 위로는 주지 못하고, 수레바퀴에 깔린 심정을 갖게 만들고 있다면, 참으로 슬픈, 사랑과 상처, 원망과 자책이 뒤섞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생각을 하며 억울해하거나 원망하는 부모들을 보게 됩니다. 자식에게 쏟아부은 정성을 희생이나 투자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가 누구를 위해 희생한다는 것 자체가 착각입니다.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성년이 되어 홀로 자신의 생활을 해 나갈 때까지 돌보는 것이 부모의 도리인 것입니다. 부모의 책임을 다 하는 것이지 희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자녀는 당신의 분신이 아닙니다. 당신이 못 이룬 꿈, 못 누린 삶을 이루고 누리는 것을 자식을 통해 대리 충족이나 만족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녀는 자녀가 가진 인격 수준대로 이 세상을 살아갈 권리가 있는 독립적인 존재입니다.


자녀의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자녀가 성장해 독립적으로 자신의 삶을 가꾸게 되면, 부모도 과거의 상처나 자녀를 위한 희생적인 돌봄으로부터 자유롭게 떠나와야 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자신의 인생을 누리는 것이 삶의 과업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이고 사랑입니다.


자칫, 당신이 자식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셨으면 하는 것처럼, 자식도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식이 부모에게서 독립하려고 애를 쓰듯, 부모도 어느 순간부터는 자식에게서 독립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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