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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제나봄 Jul 20. 2021

"엄마, 나 실험하는 학원에 다니고 싶어요!"

사교육 반대론자 엄마의 학원 체험기 (1)

"엄마, 나 실험하는 학원에 다니고 싶어요!"


초등학교에 이제 갓 입학한 딸아이가 밑도 끝도 없이 학원 타령을 한다. 대체 '학원'이 뭔지는 알고 말하는 걸까 싶으면서도 다른 아이들이 귀찮아 죽겠다는 표정으로 가방을 두세 개씩 둘러매고 옮겨 다니는 그곳에 스스로 걸어 들어가겠다는 아이의 패기에 웃음이 난다.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태권도, 피아노, 미술학원도 아니고, 그런데 '실험 학원'이라는 게 진짜 존재는 하는 걸까?


잠시 사족 같은 설명을 곁들이자면, 나의 딸은 꼭 채운 여섯 살이 되도록 오롯이 엄마 품에서 자란 아이로, 남들보다 늦게 '형님반'으로 유치원에 입학을 하면서도 2주 이상은 등원 시간마다 서럽게 울었고, 초등학교 또한 다를 바 없이 교문 앞에서 영원한 이별이라도 하는 듯 엄마를 꼭 끌어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던 녀석이다. 울지 않고 교문에서 '웃으며 안녕' 하기까지 딱 두 달이 걸린. 그런데 이 녀석이 자기 입으로 학원에 보내달란다. 혼자 가야 하는 건 좀 떨리지만 한 번 해보겠다며.


밤이면 혼자 '실험 놀이'를 세팅하고 즐기던 아이, '실험 학원'에 가고 싶다는 말을 흘려들을 수 없었던 이유들...


그리하여 엉겁결에 시작된 '실험 학원 찾기' 프로젝트는 시작과 동시에 끝이 났다. 매일 지나다니던 집 앞에 바로 그곳이 있었으니, 이름만 놓고 보면 내가 절대 관심을 갖지 않을 만한 그곳, 무려 '영재교육원'이라는 이름이 붙은 그곳에서 아이가 원하던 '실험 위주의 과학 수업'을 한다는 것이다. 대체 어떤 곳인지 구경이나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아이 손을 잡고 슬쩍 들어선 그날, 나는 제법 흥미로운 주제들로 구성된 실험 내용에, 아이는 꿈에 그리던 실험실 분위기의 강의실에 마음을 쏙 빼앗겨 그 길로 등록과 첫 수업을 시작해버렸다.


"엄마, 짜잔! 이건 '거꾸로 영사기'야. 내가 오늘 만들었어! 볼록렌즈를 물건에 가까이 대면 크게 보이는데, 멀리 있는 걸 보면 이렇게 거꾸로 보이지!"


볼록렌즈의 성질을 이용한 '거꾸로 영사기'


첫 수업이 끝나고 아이는 잔뜩 신이 난 목소리로 가방에서 '작품'을 꺼내 자랑하며 달려왔다. 물고기가 실험 주제인 날은 '금붕어가 든 수조에 스포이드로 파란 색소를 살짝 떨어뜨렸더니 물고기 아가미에서 파란 물이 나왔다'며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야기를 해주고, 어느 날은 페트병에 고무 프로펠러를 달고 감는 방향에 따라 앞으로 혹은 뒤로 움직이는 자동차를 만들었다며 길 한복판에 서서 한참 동안 시연회를 펼쳤다.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에 잔뼈가 굵은 엄마다 보니 이 정도 실험이나 활동은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아이에겐 실험 그 자체보다 '실험실' 같은 분위기가, 만화 속 '박사님'같은 가운을 입은 선생님과 같은 관심사를 가진 친구들이 필요했나 보다. 아이는 그 어느 때보다 흥미로워했고 즐거워했다. 매일 울면서 등교하던 아침과는 달리 처음 보는 노란 학원차에 혼자 대뜸 올라타고 가서 수업을 신나게 하고 온 아이는 일주일 내내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내 눈을 의심할 만큼 아이는 좋아하는 일 앞에서 용감해졌고, 새로운 도전을 설레는 마음으로 받아들였다.



돌봄과 자람과 놀이와 학습이 모두 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아기 시절이 지나고, 아이는 새로운 계절을 맞이했다. 마냥 파고들던 엄마 품에서 스스로 몸을 일으켜 선생님께 배우고 친구들과 놀이하는 어린이의 세계로, 학생의 세계로, 삶의 지경을 조금씩 조금씩 넓혀가는 중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서고, 서툴고 어색하지만 이것저것 스스로 부딪혀보며 하루하루 자라나고 여물어가고 있다. 엄마 눈에는 여전히 여리고 어린 아기 같지만 어느새 새로운 계절을 즐기기 시작한 아이에게 싱그러운 생기가 넘쳐흐른다. 대견하기도 뿌듯하기도 하면서 어딘지 모르게 살짝 서운한 이 마음은 아마도 이 귀엽고 예쁘기만 한 어린 시절이 하루하루 멀어져 가는 것이 아쉬워서겠지.


나는 사교육 같은 건 반대한다고, 1학년은 모름지기 그저 즐겁게 뛰어놀며 '학교'라는 사회에 무사히 적응하면 그만이라고 단언하던 엄마로서의 지론 따위는 이렇게 한 방에 무너졌다. 심지어 꽤 자유분방해 보이는 음악이나 미술학원도 아닌, 게시판과 모든 소식지에 이 학원에서 특목고를 몇 명이나 합격시켰는지로 점철된, 어쩐지 무시무시해 보이는 그곳이 시작이라니. 아이의 바람과 흥미가 향한 곳이라 '할 수 없이' 보내주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살짝 변명을 해 보며 아이의 하루하루를 지켜본다. 학원 가는 게 조금이라도 부담스럽거나 재미없어지면 언제든 그만둘 수 있으니 염려 말라고 아이에게, 사실은 스스로에게 되뇌며 말이다.



입학 초, 매일 아침 오열하며 들어서던 교문... 아마도 다시는 보지 못할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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