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반대론자 엄마의 학원 체험기 (2)
여덟 살 딸아이가 ‘실험하는 학원’에 다니고 싶다며 뜬금없이 사교육의 세계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은 지 반년이 되었다. 수도권 거리두기 4단계와 갑자기 시작된 여름방학이 겹쳐 몇 주간은 수업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화요일마다 신나게 학원으로 달려가는 아이의 모습은 여전하다.
“봄아, 학교 다녀와서 학원까지 가려면 좀 피곤하지 않아? 조금이라도 힘들거나 피곤하면 언제든지 그만 다녀도 되니까 꼭 엄마한테 얘기해 줘!”
“아이 참, 엄마. 나는 과학이 제일 재미있다니깐! 아무리 피곤해도 계속 다닐 거야.”
이제 겨우 초등학교 1학년, 아기 티를 채 벗지도 못한 꼬마들이 모여서 뭐 대단한 실험을 하는 것도 사실 아닌데, 아이가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삼각 플라스크에 형형색색의 약품들을 넣고 섞으면서 보글보글 하거나 펑 터지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대체 무엇이 이 꼬마의 마음을 꼭 붙들고 있는지 궁금했다. 엄마의 이런저런 유도신문에 종알종알 대답하던 아이가 결정적 한 마디를 남겼다. “엄마, 선생님이 과학 학원에서는 꼭 정답을 말하지 않아도 괜찮대. 우리 마음대로 생각하고 상상하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해서 좋아.”
몇 달 전이었다. 아이를 데리러 간 학원 앞에서 우연히 마주친 선생님께서 너무도 밝게 웃으며 다가오셨다. “어머니! 오늘 봄이가 수업시간에 제일 먼저 발표를 잘해줘서 수업이 정말 활기차게 진행되었어요. 정답의 여부를 떠나서 생각의 포문을 열어주는 것이 1학년 수업에서는 가장 중요하거든요. 제가 같은 주제의 수업을 정말 많이 해 봤는데, 봄이처럼 대답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어요. 집에서도 칭찬 많이 해 주세요!”
문제 1) 유치는 왜 빠질까요? 나의 생각을 이야기해 보세요.
봄의 답) 어른이 되어서 유치를 가지면 창피해요.
문제 2) 동물들의 이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이유를 생각해보세요.
봄의 답) 늑대, 호랑이 / 육식이니까.
토끼, 소 / 초식이니까.
문제 3) 만약 모기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요?
봄의 답) 가렵지도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어요.
문제 4) 얼음에 대해 알고 싶은 점을 적어 보세요.
봄의 답) 얼음은 왜 차갑나요?
아주 틀린 답은 아니지만 정답표에 제시된 모범 답안도 아닌, 어딘가 엉뚱하고 귀여운 대답들로 가득한 교재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며 아이와 함께 한참을 웃었다. 아직까지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은 훨씬 더 직관적이고도 재치 있는 그림들을 그려 넣기도 하고, 아이만의 방식으로 과학적인 상상력과 사고력을 키워 나가고 있는 모습들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1학년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이론이나 지식보다는 과학 자체에 흥미를 가지고 ‘왜?’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라는 선생님의 지론은 나의 교육 철학과도 맞닿아 있었다. 다행이다. 어쩐지 정답을 강요할 것만 같은 교육의 길목에서 같은 마음을 품은 선생님을 만난 것이.
아이의 과학 교재가 오래오래 엉뚱하고 귀여운 대답들로 채워지면 좋겠다. 정답을 찾아내고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문제를 풀어내는 것이 어느 순간에는 중요해지겠지만, 아직 여덟 살 이봄에게는 마음대로 상상하고 이리저리 생각해보고 자신 있게 질문하고 표현하는 순간들의 즐거움이 전부였으면 좋겠다. 이미 정답을 알아버린 후에는 ‘왜 그럴까?’라는 호기심이 금방 시들해져 버리고 말 테니 말이다. 조금씩 세상을 알아가고 지식을 쌓아갈수록 서서히 빛을 잃어갈 어린 시절의 귀한 보석과도 같은 그 마음들 말이다.
과학 학원이 좋은 이유가 ‘꼭 정답을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라고 대답한 아이의 말 한마디엔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다. 정해진 규칙과 순서에 따라 완전무결한 답을 도출해내야 하는 수학보다 ‘상상’이 개입할 여지가 훨씬 넓게 자리하고 있는 과학을 조금 더 흥미롭고 재미나게 받아들이는 것도 아마 같은 이치겠지. 사교육 반대론자이자 선행학습 알레르기 보유 중인 나는 이렇게 또 한 달의 학원비를 결제하고 돌아온다. 다음 달엔 조금 더 신선하고 기발하고 재미난 대답으로 교재를 채워 오길 기대하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