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간의 콜롬비아 칼리 살사 여행
왼발을 앞으로 한 발자국 디디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이때 허리를 사용해 골반을 왼쪽으로 틀어준다. 다시 오른발을 뒤로한 발자국 디디면서 골반은 오른쪽으로 비틀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와 두 발을 모은다. 살사의 기본 스텝이다.
문제는 골반. 내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골반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거울을 보며 스텝을 밟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사가 나에게 다가와 내 앞에 서서 자신의 허리를 잡아보란다.
이내 환상적인 골반 쇼를 보여주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게 기본이야. 너는 허리(골반)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해!"
그래 알아. 나도 안다고. 허리를 이용해서 골반을 돌린다는 건 이해했다고. 근데 나는 꼬레아노야. 노 콜롬비아노라고!!
강사의 골반은 살아있는 듯했다. 물 밖의 생선이 몸을 튀기듯 튕겨 댔다. 박지성이 두 개의 심장을 가졌다고 했지? 장담컨대 콜롬비아 살사 강사도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다. 가슴속에 하나. 엉덩이 속에 하나.
신기하게도 분명 나와 같은 초보인데 로컬들의 골반은 달랐다. 스텝은 어설퍼도 골반은 기가 막히게 돌려댔다. 스텝은 꼬이지만 골반만큼은 환상 그 자체였다. 남녀 불문. 춤은 안 배웠어도 골반 돌리기는 태어날 때부터 기본 장착 스킬인가 보다.
분명 스텝은 머리로 생각하고 밟으니 순서와 박자에 맞게 할 수 있다. 여기서 골반을 흔들어줘야 태가 나는 건데 그게 쉽지 않다. 스텝만 따라 밟는다고 살사를 출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앞으로 나란히 한 상태에서 팔을 살짝 구부리고 가슴과 일직선 상에 위치시킨다. 어깨를 흔들며 박자에 맞춰 좌우로 흔든다. 시선은 항상 파트너의 눈을 맞춘다. 춤은 디테일이다. 완벽한 자세에서 제대로 된 춤 선이 나온다.
파트너와 눈을 마주치는 것도 쉽지 않다. 눈을 쳐다봤다가 오른쪽으로 힐끔. 다시 눈을 쳐다보고 왼쪽으로 힐끔. 대부분의 내 시선은 바닥을 향해 있다. 스텝을 제대로 밟기 위해 내 발과 파트너의 발을 보는 이유도 있다.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지만.
티브이에서 연예인들이 5초간 눈빛 교환을 할 때 부끄러워하며 어색하게 웃는 장면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속으로 '주접들 떤다'라고 생각했다. 아니 사람 눈을 쳐다보는 게 그렇게 어렵나? 엉? 그냥 딱 엉? 그냥 딱 눈 뜨고 앞에 있는 사람을 보면 되지!
"어딜 보는 거야? 파트너는 눈을 마주 봐야 한다고!"
파트너가 내 팔을 흔들며 집중하라는 듯 말했다. 음 그래. 어디선가 상대의 눈을 쳐다보기 힘들면 눈의 초점을 약간 풀어서 눈썹 사이의 정수리를 보면 편하다고 했는데 이들에겐 통하지 않았다.
강사의 구령에 맞춰 내 몸은 인형극의 줄에 매달린 인형처럼 삐그덕 삐그덕 거리고 등에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힘들다. 그렇지만 내 입가에는 조금씩 미소가 번졌다.
연습 중에 자주 들어 익숙한 살사 노래가 나오면 더 신이 났다. 강사가 나를 쳐다봤다.
'나 잘하지? 나 이 노래 알아.' 눈빛을 쏴주었다.
스피커를 타고 흘러나오는 살사 노래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내 골반도 자연스레 박자에 맞춰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