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와이프는 내가 정말 그런 사람이 된 것 마냥 착각하게 만들었다. 신혼 때부터 작은 일에도 대단하다며 박수를 쳐주니 난 진짜 어릴 적 티브이에서 보던 맥가이버가 된 듯했다.
90년대 초. 손재주계의 대부 맥가이버.
그래서 처음 초 심플 초 쉽게 초 저렴과 달리 인테리어 계획은 점점 부풀려지고 허황되게 변해갔다. 싱크대를 비롯해 커피머신이 올라갈 바 테이블, 카운터까지 직접 제작하기로 했고, 테이블, 수납장, 책장 등 이왕 하는 김에 제대로(?) 해보자는 허언을 내뱉고 말았다.
건물주(님)는 2주의 공사시간을 허락했다. 마지막까지 공사기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보려 노력했지만 "그럴 시간에 만원이라도 더 벌 고민을 하세요."라는 건물주(님)의 팩폭에 입 닫고 바로 사인을 해버렸다. 2주는 턱없이 부족하게 느껴졌지만 어쩌겠나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는 거지.
비싸고 안 좋은 인테리어는 있어도 싸고 좋은 인테리어는 없다.
초보자가 완벽한 인테리어가 가능할까? 아마 불가능하지 않을까. 이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셀프 인테리어는 끝없는 노동과도 같은데 자신과의 충분한 타협점을 만들어놓지 않는다면 전문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결과물을 보고 무력감에 빠질 확률이 높다.
처음 계획과 끝은 언제나 다르지만 어쨌든 나도 처음엔 계획이란 것이 있었다.
일단 전기공사는 셀프 공사라는 욕심만으로 진행하기엔 내 목숨은 물론 건물의 목숨까지 위험할 수 있기에 전문가의 손을 빌리기로 했다. 기존에 사무실로 쓰인 공간이라 천장에 볼품없는 형광등을 제거하고 빈자리는 석고보드와 핸디코트를 이용해 메꾸기로 했다. 벽은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바닥은 일명 수평 몰탈 작업을 계획했다. 자연스레 목공 작업은 우선순위에서 배제되었다.
천장의 형광등 자리를 메꾸면 새로운 등은 어느 곳에 설치할 것인지. 페인트는 무슨 색으로 어느 곳에 포인트를 줄 것인지 등 실질적인 공사에 앞서 공간을 어떻게 꾸밀지 설계가 필요했다.
노트를 펴고 펜으로 단면도를 그리면서 곳곳에 표시를 해보았다. 그런데 아무리 상상을 해도 머릿속에 디자인이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분명히 방법이 있을 텐데 열심히 구글링을 해보니 3D 실내디자인을 할 수 있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문제는 이게 괜찮은 건지, 구현 가능한 건지, 동선 상 불편함은 없는지 등 전문가 영역에서 봤을 때 현실적으로 맞는 건지 의심스러웠다. 유튜브와 블로그를 둘러보며 짜 놓은 계획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가 없는 게 큰 난관이었다. 누군가 이 계획이 맞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방면에서든 전문가는 전문적인 지식을 바탕으로 합리적이고 확실하게 일을 마무리한다. 그러나 전문가가 해놓은 일은 이미 정형화되어 흠잡을 데는 없지만 무난한 결과물을 만들 수도 있다. 싸고 좋은 인테리어야 없겠지만 싸고 내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는 되겠지. 결과물이 좀 흠잡을 데는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