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부동산을 방문하기 전에 얼마나 사전조사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네이버 부동산으로 대략적인 가격을 훑어본 게 전부였다.
여행을 갈 때도 한국에 돌아 올 때도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도 매번 준비없이 일단 시작했다. 이번에도 서점을 하기로 마음먹었으니 부동산을 알아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부동산으로 향했다. 사업 아이템은 정했으나 가게를 어떤 식으로 꾸며야 할지 도무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준비 없이 처음 부동산을 방문했을 때 했던 말을 떠올려보면 부동산 사장님께 아직도 죄송한 마음이다.
"음 독립서점을 하려고 하는데요. 공간은 작아도 상관없어요. 근데 여유 공간이 있으면 커피도 같이 팔 계획을 하고 있어요. 와인도 함께 팔면 더 좋구요. 저희는 찾아오는 사람들이 주 고객층이라서 대로변이 아니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손님이 오려면 너무 구석이면 곤란하겠죠? 2층도 괜찮은데 1층이면 더 좋을 것 같아요."
며칠 뒤에 이런 말도 했다.
"공장형 카페도 좋을 것 같아요. 폐공장 같은 곳을 개조해서 크게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아니면 다 쓰러져가는 옛날 한옥 같은 곳도 좋아요. 분위기가 중요할 것 같거든요."
명확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보다 애매모호한 설명이 또 있을까. 다시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무지한 질문들이었다. 그 많고 많은 매물 중에 당최 무엇을 보여줘야 할지 부동산 사장님도 참 난감하셨을 것이다. 나에게 명확한 건 월세로 내야 할 돈이 한정적이라는 것뿐이었다.
인천의 부평이라는 지역을 확정하고 부평의 임대 나온 대부분의 매물은 다 확인한 것 같다. 부동산은 각 권역을 설정해 놓고 권역마다 2~3군데씩 방문했다. 10곳 정도를 방문했는데 부동산이 서로 매물을 공유하기도 하니 같은 매물을 본 적도 있었지만 권역별로 다양한 매물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부동산 사장님들 중에서도 어떤 분은 원하는 매물을 기가 막히게 알아들으시고 괜찮은 매물을 주르륵 보여주시는가 하면 어떤 분은 무슨 말을 하던 "어~알지알지~ 내가 상가전문이야. " 아는 척은 엄청 하면서 개똥 같은 매물만 보여주기도 했다. 이 사장님을 통해 겸손이 얼마나 삶에 중요한 미덕인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확실히 많이 볼수록 점점 보는 눈이 생겼다. 머릿속에 인테리어의 결이 그려지기도 하고 화장실, 전기, 하수도, 단열 등등 챙겨야 하는 부분에 대한 지식도 늘어갔다. 발품 파는 것은 너무 힘들었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뭔가 순서는 바뀐 것 같지만 많은 매물을 체크하고 보니 하고 싶은 일에 맞는 장소에 대한 그림이 명확하게 그려졌다.
매물을 확인하고 고민을 할 때 부동산 업자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 이 매물은 다른 손님들도 계약하겠다고 난리예요. 지금 고민하신다고 하니 제가 억지로 잡고 있는 거지 진작에 나가는 매물인데 빨리 결정 좀 해주세요. 진짜 같기도 하고 거짓말 같기도 한데 진짜면 어쩌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정말 결정해야 할 순간이 다가왔다.
최종 후보는 두 개였다. 1번은 새 건물의 1층이었고 평수는 좀 작지만 요즘 스타일의 통유리에 층고가 높은 오픈형 천장이었다. 월세도 예산 범위에 들어왔고 가구 들여 넣고 조명 달면 바로 장사를 시작해도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위치가 너무 구석이라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2번은 새 건물은 아니지만 외관은 깨끗했고 1층이었다. 평수가 1번에 비해 훨씬 컸고, 꽤 넓은 뒷마당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공간을 잘 활용하면 해볼 수 있는 일들이 많을 것 같았다. 대신 월세가 예산을 넘어섰다.
이게 마음에 들면 저게 아쉽고, 저게 마음에 들면 이게 아쉽다. 내 마음이 간사한지 간사한 매물들만 있는 건지 참 야속했다. 에라 모르겠다. 이 정도면 충분히 체크하고, 비교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성급하고 무모할 수도 있지만 마음을 먹었으니 신속하게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