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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뭔가좋다 Jan 08. 2021

닭발 예찬

아직도 닭발을 못 먹는다고?

쫄깃하고 탱글한 식감. 석쇠로 숯불에 구워 은은히 올라오는 불향. 양념이 적절히 스며들어 혀를 자극하는 매운맛과 뒤따라오는 단맛의 조화가 감칠맛을 끌어올린다. 닭발이 먹을 게 없다고? 아니, 너는 닭발을 아직 잘 모르는 거야. 


나는 원래 음식을 잘 가리지 않는다. 음식은 각자 고유한 맛이 있다는 생각에 음식을 맛보는 도전의식이 있는 편인데 닭발은 내가 즐겨 먹는 음식은 아니었다. 10년 전 즈음 한신포차가 국물 닭발을 대중화시키면서 닭발이란 음식을 처음 알게 되었다. 나도 친구들 따라 국물 닭발을 먹어보았는데 어디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당최 감이 잡히지 않았다. 친구들은 능숙하게 손에 일회용 장갑을 끼고 닭발을 입에 물고 우물 거리더니 '팅' 소리와 함께 은색의 스테인리스 통 속으로 닭뼈를 뱉었다. 슬쩍 들여다본 스테인리스 통 안에는 군더더기 없이 말끔히 발라진 닭뼈가 덩그러니 있었고 통을 들고 흔들면 '티-팅팅' 맑은 소리가 들렸다. 나도 덩달아 닭발을 하나 집어 물고 입 속의 모든 감각을 동원해 발골(?) 작업을 시작했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 이래." 그렇지만 닭발을 먹을 때는 혀가 손이다. 이빨로 뼈와 살을 분리하기 위해 입 안의 적절한 위치로 옮겨 앞니를 사용할 수 있게 서포트하고 분리된 살을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도록 배송한다. 이제껏 혀는 고작 맛을 볼 때나 제 역할을 하는 줄 알았는데 닭발을 먹을 때만큼은 바쁘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혀가 닭발을 위아래로 굴리면서 양념을 다 핥다 보니 한 두 개만 먹어도 입안이 얼얼해지고 쿨피스 한 통을 들이켜도 나아지지가 않았다. 입술은 퉁퉁 붓고 혀는 감각을 잃었다. 나는 그냥 집에 가고 싶었다.


서른이 되었을 무렵, 결혼을 하고 매일 밤 야식 파티가 열렸다. 어느 날은 치킨, 또 어느 날은 피자, 떡볶이, 보쌈, 오도독뼈, 그리고 닭발. 닭발? 아니 닭발 살도 없는 그 뼈다귀를 왜 시켜먹는 거야? 나는 그녀를 계속 설득했지만 눈을 반짝이며 닭발이 얼마나 맛있는지 열변을 토하는 그녀에게 지고 말았다. 여자들은 왜 이렇게 닭발을 좋아할까? 


결혼하고 대망의 첫 닭발을 마주했을 때 나는 와이프에게 이렇게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닭발을 안 좋아해!"

"알았어, 내가 다 해줄 테니까 먹기만 해."


하긴 뭘 다해 줘. 나도 닭발 먹어봤다고 내 혀랑 이빨로 물어뜯고 하는 거잖아. 그럼 입술은 퉁퉁 붓고 혀에서는 불이 나겠지.  


와이프는 양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닭 발가락의 마디를 부러트리며 살과 뼈를 분리해내었다. 입을 사용하지 않고 온전히 손으로 닭발을 분리해낸 것이다! 짜잔. 닭발의 살만 쏙 분리되어 내 접시 위에 올려졌다.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얼른 먹어보라는 듯 턱을 슬쩍 들어 올린다. 주먹밥에 자박자박한 닭발 양념을 슬쩍 묻혀 그 위에 뼈를 발라낸 닭발을 올리면 닭발 초밥 완성. 한 입에 쏙 넣으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뼈가 발라내진 닭발 사이에 밥알이 끼어들어 입 안을 휘젓는다. 닭발에 살이 이렇게 많았나? 살짝 묻힌 닭발 양념이 간을 적절히 맞추면서 끝에 올라오는 불향에 '흐흥'하며 나도 모르게 콧소리가 났다. 매운 양념에 혹사당하는 입술은 지난 추억이 되었고 닭발의 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진짜 닭발 먹는 법을 배웠다. 누가 아직도 매운 양념을 입술에 다 묻히면서 먹나? 그건 초짜들이나 그러는 거야. 


아직도 닭발을 먹어본 적이 없다구? 내가 확실히 이야기해줄게. 진정한 야식의 시작은 닭발에서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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