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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맘 Aug 04. 2017

영국에서 엄마로 살아보기 #9

경찰의 방문

경찰의 방문


새로운 집에 정착한지 일주일도 채 안 된 어느 날이었다.


방금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와서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초인종이 울린다. 맨체스터에 도착한지 며칠 되지 않아 딱히 우리를 찾아 올 사람도 없고 택배를 시킨 것도 없는데, 초인종이 울리다니 의아했다.      


“누구세요?”

“누구세요?”

인터폰으로 묻자 대답이 들린다.     


“미스터 권 계십니까? 경찰입니다.”     


경찰이라는 말에 놀랐고, 맨체스터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된 미스터 권을 정확히 찾아왔다는 것에 놀랐다. 도대체 경찰이 왜 찾아온 것일까?     




문을 열어주자 경찰의 질문 세례가 쏟아진다.     



“자녀들이 몇 명 있습니까?”

“두 명이요.”

“신고가 들어와서 조사하러 왔습니다.”

“네? 신고라니요? 무슨 신고 말씀 하시는거죠?”

“오후 5시 15분경 쇼핑몰 주차장에서 보호자 없이 아이들 둘만 차에 있었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남편과 나는 어안이 벙벙해 져 서로를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사실이었다. 장을 보러 마트에 갔는데 차의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은 너무 깊이 잠들어 있어서 깨우기가 미안할 정도였다. 곤히 잠들어 있는 아이들을 섣불리 깨웠다가 괜히 더 아이들이 칭얼댈 것 같았고, 더욱이 비가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는 아이들을 굳이 깨워서 힘들게 야외 주차장을 가로질러 빗속을 걸어가느니 아이들은 차 안에 그대로 놔두고 창문만 살짝 열어놓고 나와 남편만 재빨리 장을 보고 오자고 합의를 보았었다. 우리는 마트 안을 둘러 볼 여유조차 없이 우유 및 꼭 필요한 식자재 몇 가지만 골라서 바로 계산을 하고 차로 돌아왔다. 그런데 그 짧은 시간 안에 누군가가 보호자 없이 아이들만 차 안에 방치하고 있었다고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그 말이 사실이긴 하지만 아이들은 깊이 잠을 자고 있었고 밖은 비가 와서 잠자는 아이들을 깨워서 데려가기보다는 아이들을 깨우지 않고 차 안에 놔둔 채 최대한 빨리 장을 보고 오려고 했어요. 실제로 마트에서 보낸 시간은 10분 정도였던 것 같군요.”     



“아니오, 그렇지 않습니다. 정확히 5시 06분에 신고가 들어왔는데 두 분이 차로 돌아오신 것은 5시 32분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찰이 우리 집에 방문 한 시간은 6시도 채 안 된 시간이었다.


아이들을 잠시 차에 놔두고 내린 것이 경찰이 집에까지 찾아 올 정도로 문제가 된다는 것도 놀라웠고, 그 사실을 누군가가 신고했다는 것도 놀라웠으며, 이렇게 빨리 경찰이 우리를 찾았다는 것도 역시 놀라웠다. 경찰에게 어떻게 우리를 찾았는지 물어보자 차량등록번호로 조회를 해서 주소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호자 없이 아이들만 오랜 시간 동안 차에 놔두었기 때문에 아동학대에 해당한다며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확실하게 알지도 못했던 차를 비운 시간까지 정확히 경찰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자초지정을 다시 한 번 설명하며 우리가 영국에 도착한지 며칠 되지 않아 영국 실정을 잘 몰라서 그랬다고, 이제는 알았으니 앞으로 유의하겠다며, 이번 한 번만 사정을 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처음에는 강경하던 경찰도 우리의 증언이 사실이라고 느꼈는지 잠시 생각하더니 말을 꺼낸다.     


“그럼 지금은 아이들은 어디에 있나요? 제가 아이들을 한 번 직접 볼 수 있을까요?”     


이유를 묻자, 아이들이 실제로 아동학대 없이 안전하게 잘 돌봄을 받고 있는지 직접 확인을 하는 것이 오늘 방문 한 의무 중 하나라고 한다. 그래서 방에서 즐겁게 놀고 있던 아이들을 현관까지 데리고 나왔다.       


“얘들아, 영국의 경찰 아저씨야. 경찰 아저씨가 너희가 잘 있는지 보고 싶다고 하시네? 인사하자.”     


라고 하자 큰 아이는 멋쩍어하며 손을 흔들었고, 아장아장 걸어오던 둘째 아이는 인사하라는 소리에 한국식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배꼽인사를 하는 것이다. 둘째 아이의 한국식 인사를 받은 경찰도 얼떨결에 같이 고개를 숙이며 90도 각도로 인사를 하다가 스스로 그런 모습이 우스웠는지 방금 전까지 근엄했던 표정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피식 웃고 만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몇 살이니, 뭐 하고 있었니, 엄마 아빠가 누구니 등 어린이 눈높이에 맞추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물론 그 당시 우리 아이들은 영어는 한 마디도 못 알아들을 때였고 중간에서 내가 통역 아닌 통역을 해 주게 되었다. 다행히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밝게 노는 모습에 경찰은 안심이 되었는지, 서류에 무엇인가를 적더니 말을 꺼낸다.      


“사실 영국에서는 이러한 경우는 아동학대에 적용되어 조사를 철저히 받고 심한 경우 벌금 또는 징역형이 처벌되기도 하는데 당신들이 영국에 도착한지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니 이번 한 번만 특별히 봐 주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몇 주 뒤 서면으로 다시 한 번 통지가 있을 것입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있을까봐 조마조마했던 우리 부부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경찰이 아이들에게 작별인사를 하자 경찰이 집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신이 난 아이들은 헤어질 때는 더욱 반갑게 손을 흔든다. 재우의 한국식 인사 덕분에 모든 것이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다행이었다.     

 

우리는 아이들만 차에 잠시 놔둔 것이 이렇게까지 경찰이 집으로 조사를 올 정도의 사건이라는 것을 전혀 몰랐었다. 실제로 신고가 들어가고, 수 분 내에 경찰이 집까지 찾아와서 가정 내 아동학대가 있는지 현장조사를 왔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할 뿐이었다.       


영국 오기 전,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30여년을 줄곧 진료를 봐 주셨던 내과 선생님께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선생님 따님도 영국에서 유학을 했었는데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딸이 영국인들은 특히 “신고정신”이 투철하다며 길거리에 쓰레기 무단투기는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고, 그리고 그런 신고는 영국 할머니들이 매우 철저히 한다고 우스갯소리로 말씀해 주셨다. 겪어보니 사실인 듯하다.       




실제로 약 3주 뒤, 경찰서에서 이번 사건에 대한 신고를 받고 가정 방문 조사를 했다는 통지서를 우편으로 받았다. 그리고 이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나는 그 통지서를 서류파일에 고이고이 보관하였다.      


By dreaming m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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