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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맘 Aug 05. 2017

영국에서 엄마로 살아보기 #10

흰 연기 속에 날라간 자동차

흰 연기 속에 날라간 자동차


영국에 도착해서 구입한 첫 차는 W사의 자동차였다. 안 그래도 한국보다도 저렴한데다 남편이 인터넷으로 알아본 곳이 차량 상태는 양호한 반면 가격이 꽤나 저렴한 곳이 있어서 직접 가서 보고 구입을 하게 되었다.     

한인 민박집 사장님은 일본차가 내구성이 좋고 고장이 안 나서 오래오래 탈 수 있다며 일본차를 추천 해 주셨지만, 그래도 유럽에 있으니 독일차를 타보고 싶다는 것이 남편의 욕심 아닌 욕심이었다.      




그런데 차를 구입 후 한 달이 조금 지난 시점, 아이들 둘을 뒷자리 카시트에 태우고 나 혼자 운전을 하며 가고 있었는데 신호등 앞에서 시동이 꺼진다. 다행히 적색 신호라 뒷차들도 신호 대기 중이었고, 약간은 당황스러웠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비상등을 잠시 켜고 다시 시동을 걸고 운전을 했다. 그 날은 잊어버리고 그냥 지나갔다가 며칠 뒤 생각이 나서 남편에게 이런 사실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곧바로 자동차 정비 체인점으로 차를 끌고 가서 점검을 하기로 했다. 정비소에서 이것저것 손을 봐 주었고, 직원 중 한 사람이 시범 운전으로 한 바퀴 돌고 오더니 정비가 다 끝났다고 한다. 시범 운전을 하고 들어오는 차 뒤에서 약간의 흰 연기가 나오는 것을 보았지만, 지금 막 풀세트로 점검을 끝낸 차인만큼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곧이어 남편과 나는 아이들을 뒷자리에 태우고 정비소 앞을 빠져나와 도로로 진입을 하며 속도를 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흰 연기가 무럭무럭 피어오르고 앞을 가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다. 뒷 차들이 빵빵거린다. 나는 그것이 우리 차에서 나오는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남편은 황급히 핸들을 돌려 다시 정비소로 차를 끌고 간다. 우리 차에서 연기가 부릉부릉 나오는 것을 보고 다시 정비소 직원들이 달려 나오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알았다.      


직원들도 방금 고친 차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런데 시간이 이미 5시를 향하고 있어서 문 닫을 시간이라고 오늘은 차를 정비소에 놔두고 집에 가라고 하는 것이다. 내일 출근해서 다시 검사 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우리는 지금 멀쩡하던 차가 갑자기 연기를 내뿜고, 집에도 못 가게 생겼는데, 이 사람들은 퇴근이라니, 기가 막혔다. 한국의 정비소에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한국이었다면, 이런 일이 있었으면 직원들이 늦게까지 야근을 해서라도 수리를 해 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에 한국 서비스 업계의 편리함이 그리웠고 퇴근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영국 정비소 직원들이 더욱 야속하게만 생각되었다.      


사실 이런 일은 영국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개인의 사생활은 상관없이 서비스 정신으로 야근을 요구하는 문화가 잘못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느새 그런 한국의 야근 문화와 서비스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지만.      



큰 아이가 생후 6개월쯤 되었을 때, 우리 부부는 아기를 데리고 뉴질랜드 오클랜드에 살고 있던 남동생을 방문했었다. 오클랜드에서 베이 오브 아일랜드로 자동차로 여행을 가던 중, 폭우가 쏟아졌고 오클랜드에서 베이 오브 아일랜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카와카와 강이 범람해서 길이 막힌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 날 안에 예약 해 놓은 숙소에 도착을 해야 하는데 경찰들은 길을 막아놓고 열어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아기가 없었더라면 거기서 밤을 새우거나 근처 허름한 숙소라도 찾아갈텐데, 이제 겨우 6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할 짓은 아니었다. 한적한 시골 길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우리처럼 기다리는 사람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들 중 아무도 경찰에게 가서 상황 파악을 할 생각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한다. 그런데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우리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고 어둑어둑 해 지자 인내심의 한계를 느끼고 경찰에게 가서 도대체 왜 이 곳을 건널 수 없는지 물어보았다. 그 때 경찰의 대답을 수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잊을 수 없다.      


“지금 강이 불어서 길이 막혔잖아요. 여기에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깊이 들어가면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지금 계속 상황 파악 하고 있으니 다 수습 될 때 까지 기다리십시오. 자꾸 와서 질문 하시면 우리가 일이 더욱 바빠지고 그러면 해야 할 업무를 하지 못하니 더 이상 질문은 삼가십시오.”      


Don't make us busy

말투는 매우 공손했지만, 경찰들을 바쁘게 만든다고 질문하지 말라는 그 상황이, 정확히 영어로 “Don't make us busy”라고 한 그 표현이 아무리 해외 생활을 오래 했다 하더라도 한국인인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 이외의 다른 사람들은 경찰이 일을 끝낼 때 까지 큰 불평 없이 몇 시간이고 삼삼오오 모여서 기다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평소 같으면 3~4시간이면 족히 도착 할 거리인데 그 곳에서 시간이 지체되어 이미 7~8시간은 지난 듯 했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 이런 그들의 문화를 경험하며, “내가 먼저”가 아니라, 조금 불편하더라도 경찰이나 정비소 직원들이 일을 할 때, 그들이 본연의 업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질문이나 참견을 하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주며 그들의 업무를 존중 해 주는 것이 오히려 일을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안전하게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는 다행히 바로 앞 주유소에서 숙소 가는 다른 길을 물어보다가 우연히 우리가 예약한 숙소의 주인을 만나 주인 트럭에 우리 차를 줄로 연결하고, 트럭이 앞에서 우리 차를 끌고 가주어 경찰의 허락 아래 강이 범람한 길을 무사히 잘 건널 수 있었지만, 그 뒤에 남은 사람들은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르는 일이다. 범람한 길을 지나며 보니 정말 위험천만하기는 했다. 범람 된 범위도 생각보다 훨씬 넓었거니와, 한 가운데 움푹 패여 깊은 곳을 지날 때는 차 창문까지 물이 차올라 이렇게 위험한 곳을 아무리 차 속이라고 해도 6개월짜리 아기를 품에 안고 건넌다는 사실에 아찔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니.      


지금도 가끔 궁금하다. 시골 동네의 낯선 주유소에서 우리가 예약했던 숙소의 주인을 우연히 만나 도움을 받은 것은 과연 우연일 뿐이었을까?      



     

갑자기 흰 연기를 내뿜으며 돌아온 우리의 폭스바겐을 보고 우리만큼 당황했던 정비소의 담당 매니저는 우리를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지금 현재 우리의 가장 큰 자산인 차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 집까지 가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아 공손히 거절하였다. 그런데 멀리서 또 어떤 아줌마가 숨을 헐떡이며 우리에게 오더니, 아까 길가에서 차에 연기가 났을 때부터 보았다며 얼마나 놀랐냐고 물어본다. 그러더니 우리 집까지 우리를 데려다주겠다고 이 분도 친절히 제안을 한다.      


“제가 낯선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요.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이렇게 와서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하니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요. 그렇지만 아까부터 보아왔는데 사정이 딱한 것 같고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아직 아이들도 어리잖아요. 저도 이런 어린 아이들 키워봐서 아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정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해요.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니, 당신들만 괜찮다면 제가 데려다 줄게요.”      


낯선 사람의 어려움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이렇게 친절히 도와주겠다고 하신 그 분이, 낯선 이국땅에서 예기치 못한 일을 당한 우리에게는 매우 고마운 분이었다. 그러나 크게 신세를 질 일도 아니고, 집까지도 버스로 한 번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므로 고마운 마음만 받겠다고 하고 정중히 사양했다. 그렇지만 그 상황에서 알지도 못하는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그 분의 친절함은 잊을 수가 없다.      



     

다음 날 아침, 바로 문제를 파악하고 연락을 주겠다던 정비소에서는 한나절이 되어도 연락이 없었고, 전화로 재촉하면 더 귀찮아하지 않을까 고민하며 시계만 보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전화를 해 보았다. 그랬더니 생각보다 문제가 심각한 것 같다며 며칠이 더 걸릴 수도 있으니 보험사에 대차를 알아보라고 한다.      


보험사에서는 우리가 계약한 내용에서 사고가 난 경우가 아닌 이런 경우는 대차가 안 된다고 했고, 이 사건 역시 운전자 혹은 정비소 과실이므로 보험 처리가 안 된다는 통보를 받았다. 영국의 자동차 보험료는 영국에서의 운전 경험이 없을 경우 특히 더욱 비싼데, 그렇게 비싼 금액을 지불하고도 그 당시 우리의 상황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 거의 없다는 것에 실망스러울 뿐이었다.      


정비소에서는 구입한지 한 달 밖에 안 된 차에게 이런 문제가 생긴 것이므로 중고차업체에서 처음부터 불량 차량을 판매했다고 주장하고 중고차업체에서는 멀쩡하던 차가 정비소에서 정비를 받고 나서 고장이 난 것이므로 정비소의 과실이라고 주장한다. 게다가 중고차업체에서는 우리가 차를 구입할 때 계약서상의 보증기간은 31일이었는데 최초로 차량에 문제가 생긴 날은 37일째였으니, 중고차 업체의 입장에서는 보증 기간도 끝난 이 시점에 보상을 해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물론 계약서상대로 하는 것이 원칙이긴 하지만, 고작 며칠 차이로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다니, 막무가내로 떼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보상을 받고 싶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의 과실은 아니라는 생각뿐이었다.      


마침내 중고차 업체에서는 누구의 과실인지 확실하게 하기 위해 다른 정비소에 점검을 맡겨보자고 제안을 했다. 중고차 업체 측과 연계 된 곳으로 점검 비용은 중고차 업체에서 지불하기로 했다. 만약에 중고차 업체에서 처음부터 불량 차량을 판매 한 것으로 판정이 나면 약간의 보상을 해 주겠다는 약속을 힘들게 받아내었다.      


며칠 뒤, 견인차가 우리 차를 견인하기 위해 우리가 정비를 받은 정비소에 왔다. 차는 사건이 있던 날부터 그때까지 정비소에서 꼼짝도 않고 있었다. 아랍계 운전자가 운전하는 견인차에 우리 차를 싣고, 나와 둘째 아이는 견인차에 같이 타고 가고 남편과 큰 아이는 트램을 타고 한 시간이 훌쩍 넘는 그 먼 길을 가서 중고차 업체에서 지정 해 준 정비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와 남편이 따로따로 가기로 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제는 영국의 누구도 믿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기도 하다. 운전사에게는 미안한 사실이지만 혹시라도 저 운전사가 우리 차를 가지고 사라져버리면 어떻게 하나 하는 노파심에, 둘 중 한 명은 운전사와 함께 동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아직 어린 아기인 둘째를 내가 데리고 함께 견인차에 탑승하기로 했고 남편은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하여 견인차 운전사 연락처뿐만 아니라 차량등록번호도 꼼꼼히 적어놓는다. 아무 것도 모르는 둘째 아이는 엄마 아빠 속이 타들어가는 것은 알지도 못한 채 견인차 앞 좌석에 앉아 고사리 손으로 딸기를 하나씩 집어먹는다. 차를 타고 40분가량 가는 고속도로의 그 길이 가도 가도 끝이 없이 멀게만 느껴진다.     


먼저 도착한 나는 정비소 직원에게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이야기 하는데 너무 분하고 속상해서 나도 모르게 높은 톤의 목소리로 흥분이 고조되어 말 하고 있었다. 숨이 넘어가게 말 하는 내 모습을 보고, 내 이야기가 끝나자 정비소 주인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낯선 곳에 아직 한참이나 어린 아이들 데리고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그 동안 고생이 얼마나 많았냐며, 잘 봐주겠다고 한다. 올드햄이라는 동네의 사투리가 매우 심해 아직 그들의 낯선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내가 듣기에는 거슬리는 억양이었지만 순박한 그 분들의 마음이 느껴졌다. 적어도 이전 정비소 직원이나 중고차 업체의 직원들의 사무적인 태도와는 사뭇 달랐다. 그 뒤로도 한참이 지나서야 남편과 큰 아들과 올드햄의 트램 역에서 재회를 했다. 일주일이 넘어 이 주 가까이, 거의 매일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고 싶은 마음에 사투를 벌인 뒤라 그런지, 고작 한 시간 만에 만난 남편과 큰 아들인데도 마치 눈물겨운 이산가족 상봉 같았다.        




그 이후에도 약 2주 가까이 자동차 문제를 해결하려 보험사와 우리가 처음 찾아갔던 정비 체인점과 자동차를 구입했던 중고차 업체와 중고차 업체가 연계 해 준 정비소 사이에서 수도 없이 오락가락했으나 우리의 바램과는 달리 별다른 소득 없이 시간만 지체되었고 그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고심 끝에 남편은 차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영국에 도착해서 가장 큰 금액을 투자했던 자산이 이렇게 허무하게 사라지게 된 것이다. 차 한 대 값이 사라져버렸으니, 영국에서의 몇 달치 생활비가 한꺼번에 사라져버린 셈이다.      



무거운 마음으로 몇 군데 중고차 업체를 다니며 알아보다 그래도 꽤나 마음에 드는 합리적인 가격의 두 번째 중고차를 구입하였다. 지난 일은 잊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자는 뜻으로 남편은 영국에서 유럽으로 가는 자동차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였고, 두 번째 자동차를 산 두 번째 날, 우리는 간단한 짐을 챙겨서 트렁크에 싣고 아이들은 뒷좌석 카시트에 태운 채 영국 중부의 맨체스터에서 영국 남부 도버까지, 그리고 도버에서 배에 차를 싣고 프랑스 깔레까지, 깔레에서 다시 벨기에 브뤼셀까지 정처 없이 차를 몰고 여행을 떠났다. 정해진 것이라고는 첫 날 묵을 벨기에 숙소뿐이었으나 여행을 통해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차를 몰았다. 좌핸들의 영국차를 몰고 우핸들 유럽 대륙의 고속도로를 빗길 속에 달리며.


by dreaming m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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