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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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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Jul 08. 2020

쉼표와 물음표 사이

퇴사의 이유

거진 7년을 다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주변에 얘기했을 때 절반 이상이 나를 뜯어말렸다.

말리는 이유는 거의 비슷했다.

복지 좋은 대기업을 포기하고 갑자기 미용이라니?

너 나이가 서른하나야.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가족끼리 하는 일이 생판 모르는 남이랑 일하는 것보다 쉬운 줄 알아?

같은 서울도 아니고 대구라니, 굳이?

모두가 무리수라고, 깊이 생각을 더 해본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이미 퇴사와 이직을 결정한 상태였지만 모두가 같은 물음표들을 나에게 푹푹 꽂으니

내가 너무 쉽게 생각한 건 아닌지 나마저, 의구심이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만류에 흔들리는 내 눈빛을 읽기라도 했는지 주변에서의 걱정은 더욱 디테일하게 훅훅 들어왔다.

늦은 나이에 번듯한 직장 그만두고 배웠다가 적성에 안 맞으면 그땐 어떻게 할 거냐,

돈이 전부는 아니지만 연봉은 지금의 반토막이 날 텐데 그 돈으로 생활할 수 있겠냐,

미용하면 진상이 얼마나 많은데 감당할 수 있겠냐 등등등


정말 힘들어서 금세 후회하면 어쩌지?

당장 생활비가 어디에 얼마큼 나가더라?

대구에서 가족들한테 가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지?

대구에서 지내다 지인들을 다 잃는 건 아닐까?

퇴사를 코 앞에 두고 내가 생각했던 미래가, 열정이 모두 가뭄처럼 말라가는 기분이었다.


아무도 나의 미래에 담긴 자그마한 희망과 열정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듯 보였다.

그저 지금의 내 생활이 나쁘지 않으니 굳이 판도라의 상자는 열지 말라고,

너도 나도 가보지 않은 낯선 곳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가지 말고 익숙한 이 곳에서 마음 편히 지내라고.


정신을 차려보니 잠시 나의 내면에서 외치는 소리보다 타성에 젖었던 조각들이 더 크게 조각조각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요즘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지내는지, 나의 생활에 만족하는지에 대한 속사정보다는

나의 생활수준과 결혼, 집, 나이 같은 것들을 더 걱정하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걱정해주는 그 마음들은 너무 고마웠지만 내 내면과는 결이 같지 않음을 인정하고는 고이 접어 서랍 안에 잘 넣어두었다.


나의 꿈의 직업이 미용은 아닐지라도 나를 이 곳에서 멀리 데려가 준다면 그걸로 만족할 정도로 나는 현재가 버거웠다.

지난 몇 년 간, 혼자 견디기 힘든 것들을 하나둘씩 이고나가려니 앞으로 나아가지기는 커녕 뒤로 이끌려가는 기분이었다.

같은 공기, 같은 분위기, 같은 사람들 속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하루하루를 견디다 보니 나의 초점은 흐려졌고

더 이상 뭐가 맞는 건지 알 수가 없어졌다.

웃고 있어도 마음속엔 공허함이 가득해서 집에 돌아와 저녁마다 텅 빈 눈을 하고 앉았던 지난날들이 버거워서.

이젠 앞으로 나아가 보려 쉼표를 찍었다.

남에 눈에 보여지는 얕은 행복보다 나의 눈에 보이는 내면의 행복이 더 크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 이제라도 나를 방치하지 않기 위한, 나를 위한 최선의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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