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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Sep 09. 2021

혼자여도 괜찮은 날


지난여름, 나는 역대급으로 돌아다닌 것 같다.

일주일에 하루밖에 없는 휴무에도 불구하고 누가 집에서 쫓아내기라도 하는 듯, 시간이 나는 족족 그곳이 어디든 떠났다.

지나고 보니 딱히 기억에 남을 정도로 넘치게 좋았던 곳은 없는 것 같다.

사실 여행이라기보단 도피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시간들이었다.


기나긴 도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가을이었다.

간만에 가을비가 걷히고 맑은 하늘을 볼 수 있었던 오늘은 아무런 약속도, 계획도 없는 날이었다.

좋았다. 누구를 만나거나 어디를 가야  일이 없으니 홀가분한 느낌마저 들었다. 그동안 너무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나를 못살게  건가 생각이  정도로.


눈이 일찍 떠졌기에 잠시 넋을 놓고 베란다 바깥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그 새 많이도 자란 화분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참 오랜만에 느끼는 평온함이었다.


최근 철저히 옅어졌던 잠을 오늘 하루 몰아서 잔 마냥 깊게 자고 일어난 늦은 오후,

가을이 되면 꺼내 바르는 화이트머스크향의 바디로션을 걸치고 요즘 자주 찾는 카페로 향했다.

커다란 나무 밑에서 올려다보는 적당히 어두워진 오후와 밤 사이의 하늘,

얇은 가디건정도가 잘 어울리는 가을 초입의 온도,

도입부만 들어도 아는 좋아하는 노래가 잔잔하게 흩어지는 공간에서 생각했다.

혼자여도 나쁘지 않다고.


누군가에게 나의 불안이 보여질까 두려워서 괜찮은 척 해왔던 지난여름의 나는 괜찮지 않았고 늘 불안했으며, 그 불안은 결국 보였으리라.      

하지만 보여지는게 중요한 게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고

온전한 나로서 행복하지 않다면 누군가를 끼워 넣어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도 절절히 느꼈으니 되었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나에게 필요했음을 알았으니 되었다.


이번 가을은 유난히도 고요하게 지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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