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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Dec 18. 2022

옷 정리를 했더니, 내가 보였다.


매번 계절이 바뀌면 해야 할 일이 있다.

옷장 정리.

해야지 해야지 하면서 늘 미루는 일, 결국 계절이 중간쯤 지나갈 때가 되어서야 꾸역꾸역 해내는 일.

이번 겨울은 유독 추위가 늦게 시작되어 더 미루었던 것 같기도.


옷장을 열어젖혔다.

으- 들숨에 귀찮음, 날숨에 한 숨을 내뱉고 옷장 안에 옷들을 잡히는 대로 바닥에 내동댕이 쳤다.

바닥에 앉아 계절별, 색깔별, 버릴 옷들과 입을 옷들을 나눈다.

'아니.. 이 옷은 도대체 어디에 입으려고 샀던 거지?'

지난 1년 동안 입지 않은 옷은 물론이고 사고 나서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이 허다했다.

강민경이 입은 걸 보고 그날 새벽까지 어느 브랜드 옷인지 찾다가 해외배송으로 50만원이 넘는 원피스를 사놓고 너무 화려해서 옷장에 계속 처박아 두었던 옷,

백예린이 입은 걸 보고 또.. 지름신에 홀려 같은 루틴으로 30만원이 넘는 원피스를 제일 작은 사이즈 하나 남았길래 '살 빼고 입으면 되지!!!!' 하고 질렀다가 내 최저 몸무게가 될 때만 잠시 숨 참고 방에서 입어보고는 이거 입고 나갔다가는 아무것도 못 먹지라며 고이 다시 옷장에 걸어둔 옷,

친구 결혼식 때 입으려고 샀다가 한 번 입고 안 입는 옷 여러 벌,

스트레스받는다고 지나가다가 보이는 옷집에 들어가 버럭하고 산 옷들,

아직 택도 제거하지 않은 옷까지.

갑자기 누구한테 홀린 듯 결제창을 지나 네이버페이 비밀번호를 치고 있는 나 자신이 저지른 지난 소비들이 옷장에 차박차박 쌓여있었다.


한 숨이 흘렀다. 옷 정리가 힘든 게 아니었다.

나의 소비습관이 고스란히 나의 모습 같아서, 내가 한심해져 버렸다.

나는 그 대상이 무엇이든 갖고 싶은 것은 당장 가져야 만족한다.

당장 가지지 못하면 그것만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해소되기 전까지 조바심이 나고 화가 나는 지경에 이르기까지 한다.

더 한심한 건 가지고 나면 갖고 싶었던 마음을 금세 잊어버리고 또 다른 욕심이 부글거리며 차오른다는 거다.

이 당장을 참지 못하는 무력함에 나를 갉아먹는 일들을 얼마나 많이 했던가.

쇼핑하는 것을 참지 못해 잔고를 비우기도, 외로움을 참지 못해 감정을 소모하기도 여러 번.

누군가 걸친 것이 아름다워 보여도 나에게 어울리지 않으면 결국 버려진다. 내 옷장 속 의미 없이 걸려있던 옷들처럼.


정말 중요한 건 당장의 안도감이나 만족감이 아님을,

잠시 행복하자고 내가 선택한 무언가가 1년 후에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것인가를 꼬박꼬박 되새겨서 다음 겨울이 왔을 땐 버릴 것 없이 차분한 내가 되어 있기를!


옷장 정리는 자주하자=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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