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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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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Dec 19. 2022

퇴사 2년 4개월 후, 또다시 퇴사합니다(1)


벌써 전 직장에서 퇴사한 지 2년 4개월이 흘렀다.

아모레퍼시픽 영업팀에서 6년을 일했고 아예 다른 길로 접어든 지 2년이 훌쩍 지났다니!

애석하게도(?) 다시 퇴사를 코 앞에 두고 있다.

퇴사라고 하기에는 조금 소박한 동네 미용실에서 근무했으니 퇴사는 조금 거추장스럽고 이직이라고 하자.


갑작스러운 고모의 제안에 하루 만에 이 전 회사에서의 퇴직을 결정하고 미용을 배워보기로 마음먹었었다.

고모의 제안이 있기 직전까지도 퇴직서를 던지는 모습을 매일 꿈꾸며 출근을 했던 날들이니 꽤 어려운 제안도 아니었다.

근데 왜 또다시 이직을 하게 되었을까.


지난 2년 4개월 동안의 대구에서의 생활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거칠었다.

서울만 벗어나면 모든 것이 평화로워질 줄 알았다.

서울이 아닌 곳, 내 곁에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을 떠나면 새로운 나를 위한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 전의 나는 없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요즘 그런 말이 유행이던데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괜찮다. 나도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고 나는 호락호락한 사람이었다.

나는 꽤나 호락호락한 사람이었다.

서울에서 대구로 온다는 큰 결심을 한 나를 칭찬하고서는 유유자적 그 위를 둥둥 떠다니며 놀고만 있었으니까.

물론 대구에 와서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건 아니다.

처음엔 드라이기를 잡고 양 쪽 손을 모두 흔들어야 하는데 흔드는 힘도 없던 손에 힘이 생겼고,

클리퍼(바리깡)에 잭이라는 안전장치를 달지 않고 그냥 윙~하고 손님 머리를 밀어버려서 등이 다 젖었던 일을 이제는 웃으며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남자 커트에 겁을 내지 않고,

내가 해야 할 다음 스텝이 무엇인지 인지하고 스스로 움직일 정도로 미용일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자존감이 문제였다.

내가 생각하고 왔던 헤어디자이너는 지금의 내 모습과는 너무 달랐고 여기에서 머물러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죄책감과 압박감이 1년이 넘어갈 즈음 나를 조여왔다.

늦은 나이에 미용을 시작한 만큼 남들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는 싶은데 나는 게으름에 호락호락한 사람이었고 누군가 나를 채찍질하지 않으면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당근을 함냐함냐 씹고 있는 베짱이에 불과했다.


이런 내 자신을 발견하고도 모른 체 한 지 그로부터 또 1년이 지났다.

그런데 나에게 뜻밖의 스카웃제의가 들어왔다.

지인의 지인이 헤어샵매니저였는데 이번에 새로 오픈하는 대구 중심가의 샵에서 본인이 이끌어줄 테니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었다.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용이라는 직업에 권태기도 왔었던 터라 무엇이든 지금의 판때기를 뒤엎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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