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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아 Aug 20. 2019

젖은 옷을 다시 입었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하늘은 거뭇하게 먹구름으로 뒤덮이고 있었다.

비가 곧 쏟아질 걸 알면서도 우산을 사지 않았다.

우산을 살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었다.

하늘이 다시 개지 않을까 싶은 혼자만의 착각 속에 잠시 꺼내들은 지갑을 다시 가방 속에 욱여넣으며, 하늘이 개기를 바랐다.


늘 그렇듯 하늘이 내 뜻대로 될 리가 없었다.

하늘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장대비를 퍼붓는다.

온몸이 축 쳐질 정도의 비를 맞으니 정신이 번쩍 든다.

‘아-정신 차려야지. 하늘이 개기는 개뿔, 아끼던 옷만 다 젖었네 젠장’


집으로 돌아와서 축축하고 기분 나쁜 비 냄새가 벤 옷을 한 겹씩 벗었다.

축축해서 잘 벗겨지지도 않던, 벗은 옷은 차마 정리할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잠시 내버려두고 내 할 일을 하다 보니 꽤나 말라있었다. 비 냄새도 나지 않고 심지어 뽀송해 보이기까지 했다.

아끼던 옷이니까 한 번만 더 입을까 싶어졌다.

겉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급하게 외출할 일이 생겨 젖었었지만 겉으론 괜찮아보이는 옷을 다시 입고 나가는 길이었다.

비가 그친 지 얼마 안 된지라 습기로 가득 찬 거리를 걷다 보니 옷에선 점점 어제의 냄새가 올라왔고 옷 색깔도 누렇게 변하는 것 같았다.


비에 젖은 옷은 다시 입는 게 아니었는데,

바로 세탁기에 돌려서 어제의 비가 씻길 수 있게 깨끗하게 정리했어야 하는데,

차라리 버릴걸 그랬나.


그 길로 다시 집에 돌아와야 했다.

나의 외출은 엉망이 되었고 누군가와의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아끼던 옷이 비에 젖고난 뒤엔 쳐다보지도 않을 옷이 되어버렸다. 꿉꿉함만 남긴 체.


다시는 비에 젖었던 옷을 미련하게 입지 않을 거다.

이번 일을 겪으며 또 한 가지를 배웠으니까.

그거면 됐다. 깨달았다면 다시는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면 되는 거다.



비에 젖은 옷은 다시 입지 말자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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