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디 May 01. 2021

ROI에 대하여

인생의 ROI에 대한 잡상

대학생 때 우연한 기회로 이름이 ‘G’로 시작하는 글로벌 포털 기업의 인턴 면접을 본 적이 있다. 준비한 피티 면접이 끝나고 면접관이 몇 가지 추가 질문을 이어가다가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세 가지 일이 있는데, 데드라인은 모두 똑같다. 그렇다면 이 일을 어느 순서대로 처리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실무 경험은 전무하고 난생 처음 겪는 영어 피티 면접에 지칠대로 지친 대학생 머릿속에서 무슨 대답이 나왔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의 대답을 들은 면접관이 본인이라면 이렇게 답했을 거라며 했던 답안이 기억난다. 'ROI가 높은 순서대로 일을 처리할 것'이라고.


오늘은 ROI에 대한 이야기이다.


ROI가 무엇인가? ROI란 Return On Investment를 줄인 말이며, 이는 투자(=Investment)대비 결과물(=Return)을 뜻한다. 즉 'ROI가 높은 순서대로'라는 말은 '가성비'로 치환할 수 있겠다. 즉 시간과 비용(노력)은 적게 들면서 결과물이 멋진 것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그 담당자의 방식이었다.


십 년도 더 지난 것 같은 그 때 일이 왜 떠올랐냐고? 그 면접을 다녀온 이후 나는 손톱을 깎을 때면 항상 그 말을 떠올린다.  

손톱을 깎는 것 만큼이나 가성비 좋은 일은 없다. 손톱 깎는 것은 무지하게 귀찮아서 자꾸 미루게 되지만 일단 하려고 하면 생각했던 것 보다도 순식간에 끝난다. 그러면서도 손톱이 너무 길었을 때 발생하는 귀찮음들, 예를 들면 손톱 밑에 때가 낀 다거나 간지러운 팔뚝을 조금 벅벅 긁었다고 피가 나거나 한다는 일이, 단 3분만 투자해서 손톱을 깎으면 그런 불상사는 다른 세상 일인 것 처럼 완벽하게 해결된다. 일상 속에서, 아니 인생 전반을 통틀어 이처럼 ROI 좋은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우리는 이 ROI 높은 순서로는 1등인 손톱 깎는 일을 자꾸 미룬다. 손톱에 때가 낀 것 보고는 이따 밤에 깎아야지 했다가, 손톱 주변에 올라온 거스러미를 뜯다가 피가 나면 아, 손톱 깎을때 잘라버려야지, 라고 생각은 하루에도 수십번 하는데 정작 손톱 깎기에 돌입하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손가락 까딱거릴 힘만 있으면 아주 확실하고 분명한 결과물이 튀어나오는데, 손톱 깎는 일은 항상 우리의 우선순위 바깥에 있다.


아마 우리의 인생이 ROI로만 설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ROI만 생각한다면 사람 사귀는 일은 무척이나 ROI가 낮은 일이다. 일단 Return이 0에 수렴할 가능성이 크다. 대학생 시절 후배들한테 밥 사준 것이나, 소개팅, 미팅에 쓴 돈을 생각해보면 틀림없이 Return은 0에 수렴하게 된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 희박한 Return을 위해서 끊임없이 관계에 투자한다.


업무도 마찬가지이다

업무 투입량은 많은데 광팔기는 애매한 것들이 있다. 가령 잘해도 티 나지 않을 것이 분명한데 문제가 생기면  욕은 바가지로 먹기 좋은 것들. ROI 관점에서는 하지 않아도 좋을 것들이다.


가족과의 관계도 분명 ROI가 떨어지는 일이다. 가족들은 거의 확실히, 항상, 내가 원할 때 그 자리에 있다. 굳이 투자하지 않아도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줄 것이 분명하기에 우리는 가족은 뒷전이고 다시 보지도 않을 사람들에게 더 정성을 들인다. 


그래서 그 때 그 면접은 어떻게 됐냐고? 당연히 결과는 탈락이었고 덕분에 나는 지금 다른 회사에서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  ROI 순서대로 일을 처리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솔직히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안 해본 일을 놓고 어떻게 ROI부터 따질 수 있단 말인가?


그 때 그 면접관 분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신지 궁금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진화론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