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현실이 아닌 곳의 틈새에서
오랜 관습처럼 이어져온 애증의 굴레란 얼마나 끊어내기 힘든 것인지. 학대하는 부모의 곁을 차마 떠날 수 없는 자식의 마음, 틈만 나면 경멸 섞인 말들을 토해내기 일쑤인 애인을 떠나지 못하는 마음, 같은 것들을 떠올려본다.
주위에서 아무리 소곤거리거나 손가락질하더라도. 정신 좀 차리라고 뜯어말려도 소용은 없다. 이 잔혹한 속박은 직접 겪어보지 않고선 절대로 체험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일 테니까. 이건 감히 이성과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역에 놓인 이야기이니까.
당장 숨이 막혀오고 가슴이 답답해 죽을 것만 같으면서도. 차마 그 무겁고 긴 상처의 고리를 끊어낼 용기란 쉬이 생겨나지 않는다. 빗물처럼 바닥을 적시는 폭력과 폭언들. 그마저도 나를 향한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당장 내 눈앞의 이 사람이 아니라면, 누군가에게 이토록 집요한 관심을 받는 일이 가능하기나 할까.
조건 없는 사랑의 힘을 믿지 않는 우리에게는, 이 애증의 굴레를 끊어내고 나면 마주하게 될 세상이 더 무서울 테지. 냉담하고 무관심한 세상. 어느 늦은 밤 가로등 불빛 아래 한적한 골목을 걷다가, 소리 소문 없이 내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 누구 하나 알아채지 못할 무관심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굴러갈 이 세상이 그렇게나 무서울 수가 없을 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