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아이를 낳아 길러보는 경험은 왜 의미있는가?
게임, 유튜브, 여행, 취미생활 기타 등등이 40 넘어 50~60까지도 재미있고 즐거울수는 있지. 하지만 그 즐거움이 평생의 반려이저 동료이자 친구를 만나 모든걸 함께 나누고 경험하는 즐거움과 2세를 낳고 키우며 겪는 그 벅찬 감동과 기적같은 시간들을 대신할수는 없음. 절대로. 전혀 종류가 다른 행복임. 그리고 결혼해서 아이낳고 뒷바라지 하다가 늙어 죽는 평범한 사람들은 그 과정들이 공식이라서 하고있는게 아님.
세상에 볼 거리, 즐길 거리, 놀 거리 천지입니다. 저는 게임을 좋아하니까 게임을 예로 들어볼게요. AAA급 게임부터 소규모 인디게임까지, 정말 틈만 나면 수도 없이 많은 게임들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입니다. 옛날에 게임기에 팩 꼽고 하던 시절에야, 게임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게임 팩 하나 겨우 구하면 그 게임 하나만 몇 달, 몇 년이고 주구장창 돌렸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릅니다. 할 게 너무도 많고, 따라가는 건 벅찹니다. 24시간 백수 생활하며 게임만 붙잡아도 다 못따라갈 지경인데 직장 등 생계 때문에, 육아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다른 곳에 빼앗기고 나면 게임할 시간이나 체력 따위는 남아나질 않습니다.
저는 심리학 전공자로서 행복의 질과 양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제 아무리 재밌는 콘텐츠라 해도 평생의 반려자를 만나는 기쁨, 소중한 사람들과 여생을 함께하는 의미, 내 아이를 낳아 기르는 행복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는 게 많은 심리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인데요, 저 역시 비슷한 믿음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만 가끔은 잠깐이나마 의문을 품게 되는 순간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행복은 양보다 질이다.
하지만 양이, 너무나도 압도적이라면 질을 누를 수도 있나?
콘텐츠가, 세상에 많아도 너무~많다
요즘은 결혼이 필수가 아니고 선택이라고들 하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진지하게 행복의 정의를 위와 같이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주는 행복? 반려자가 주는 행복? 물론 특별하겠지. 하지만 그거 아니어도 세상엔 즐길 거리, 놀 거리가 차고 넘치는데? 평생 다 하지도 못하고 죽을만큼 할 게 많은데 심심할 틈이 어딨어~'
그러나 혼자 신나게 즐기다 이제 나이가 40대~50대에 접어든 사람들 중에는 저 말에 더 이상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다보니 예전처럼 놀 체력도 뒷받침되지 않고, 제 아무리 재미있는 콘텐츠라도 혼자 하면 재미가 없다고들 합니다. 과거에는 연락 한 번에 딱딱 잘 나와주던 친구들이 어느새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자기 가족 챙기느라 얼굴 보기도 힘드니 늘 외롭고요.
직장인의 하루를 떠올려봅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후에는 겨우 집에 도착해 씻고 밥을 먹습니다. 그 후엔 뭘 할까요? 누군가는 소파에 늘어져 스마트폰을 집어 듭니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유튜브 쇼츠나 인스타그램 릴스를 스크롤합니다. 재밌는 영상 하나를 보며 킥킥 웃고, 다음 영상을 넘기고, 또 넘기고… 정신을 차려보니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습니다. 그렇게 뒤척이다가 잠들고, 다음 날 또다시 반복되는 하루.
그 순간들은 분명 나쁘지 않았습니다. 짧은 영상들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과 도파민의 자극은, 지친 일상 속에 작은 탈출구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그런 날이 반복되면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내 삶은 왜 이리 공허한 걸까?”
요즘 일상은 점점 더 도파민에 의존하는 패턴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게임, 유튜브, 쇼츠, 스트리밍 서비스는 점점 더 빠르고 강렬한 자극을 제공하며, 도파민 버튼을 무한히 누르게 만듭니다. 당장은 재미있으니까 계속 넘겨가며 숏츠로 시간을 때우지만 솔직히 마음이 영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아, 계속 이렇게 아무 의미없이 시간을 보내도 되나?
계속 뇌가 값싼 도파민에 절여지는 거 아닌가...
어차피 실컷 봐봤자 나중에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고...
이 즉각적 행복이 정말로 우리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요?
즉각적 행복(Hedonic Happiness), 즉 도파민(Dopamine)은 우리가 보상을 예측하거나, 성취감을 얻을 때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게임에서 레벨을 올리거나, 유튜브에서 흥미로운 영상을 발견할 때 이 도파민이 솟구치며 우리를 중독적인 쾌락의 루프 속에 가둡니다.
문제는 도파민이 제공하는 즐거움이 즉각적이고, 빠르며, 끝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는 뇌를 끊임없이 자극하지만, 쉽게 포화 상태에 도달합니다. 우리가 새로운 콘텐츠에 계속해서 끌리는 이유는 더 큰 자극을 갈구하는 뇌의 특성 때문입니다.
도파민만으로 구성된 행복은 질적으로 매우 빈약합니다. 이는 마치 무한히 확장되는 마트의 과자 코너를 떠올리게 합니다. 종류는 많고 맛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영양을 채울 수 없듯, 도파민의 홍수 속에서 진짜 삶의 의미를 찾기는 어렵습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도 현대인들이 종종 느끼는 것은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입니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즉각적 즐거움은 우리 삶에서 의미를 가져다주는 요소들을 서서히 대체하고 있는 셈입니다.
첫째, 시간의 소비입니다. 콘텐츠는 우리의 시간을 갉아먹습니다. 그러나 의미 있는 인간관계, 성취, 경험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쓰이는 시간은 종종 이러한 더 깊은 가치를 구축하는 데 쓰일 기회를 잃게 만듭니다.
둘째, 자아와의 단절입니다. 즉각적 행복은 우리가 내면을 들여다보거나 성장할 시간을 빼앗습니다. 이는 결국 우리의 자아 정체성과 삶의 방향성을 약화시킵니다.
반면, 옥시토신(Oxytocin)과 세로토닌(Serotonin)은 깊은 관계와 안정된 행복에 연관됩니다. 옥시토신은 주로 타인과의 신뢰와 유대감을 형성할 때 분비되며, 세로토닌은 사회적 인정이나 성취를 통해 얻는 긍정적 감정과 관련이 있습니다. 결혼, 육아, 깊은 인간관계 속에서 분비되는 이러한 물질들은 우리가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는 것’을 넘어, ‘의미를 발견하는 것’으로 이끌어줍니다.
이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의미적 행복(Eudaimonic Happiness)이라고 합니다. 이는 긍정심리학자인 마틴 셀리그먼(Martin Seligman)이 정의한 행복의 요소 중에서도, 인간의 삶을 진정으로 충만하게 만드는 핵심입니다. 실제로 셀리그만은 구체적으로 PERMA 모델을 통해 행복의 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 바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행복은 다섯 가지 핵심 요소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1. 긍정적 감정(Positive Emotion): 즉각적 행복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짧은 영상, 게임, 여행 같은 활동은 순간적인 즐거움과 쾌감을 제공합니다.
2. 몰입(Engagement): 자신이 완전히 빠져드는 경험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예술이나 창작, 몰두할 수 있는 작업을 통해 얻을 수 있습니다.
3. 인간관계(Relationships): 깊고 의미 있는 인간관계는 우리 삶에 정서적 안정과 소속감을 가져다줍니다.
4. 의미(Meaning): 자신이 더 큰 무언가의 일부라고 느끼는 경험에서 오는 행복입니다. 결혼, 육아, 봉사활동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5. 성취(Accomplishment):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느끼는 만족감입니다.
즉각적 행복은 주로 긍정적 감정(P)과 몰입(E)에 치중되지만, 인간관계(R), 의미(M), 성취(A)와 같은 요소를 충분히 충족하지는 못합니다. 결국 이런 불균형이 반복되면 우리는 삶에서 공허함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무의미한 행복과 의미있는 행복을 다음과 같이 구분합니다.
"그래서, 내 인생에, 이 경험이 오래도록 남아서, 내 삶을 바꿔놓을 것인가?"
대부분의 유튜브 영상, 게임 한 판은 제 삶을 바꾸는 데 실패하였습니다. 당장 볼 때는 즐겁고, 유익해 보였지만 애써 기억하고 써먹지 않는 이상 남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물론 누군가는 '인생 영화', '인생 드라마', '인생 책'을 만난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와 같은 행운의 순간은 그렇게 쉽게 찾아오는 게 아닙니다. 세상에는 말도 안되게 많은 콘텐츠가 있고, 양질의 콘텐츠가 있는 반면, 형편없는 콘텐츠도 넘쳐나니까요.
의미적 행복은 사후지불의 형식을 띠고 있는 것 같습니다. 즉각적 행복은 그 즉시 우리가 행복을 받아볼 수 있지만 의미적 행복은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고요. 처음에 결혼을 하고, 출산을 하고, 아이를 낳아보면 그렇게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이 샘솟지는 않습니다. 평생 다른 환경에서 살아 온 사람과 합을 맞춰야 한다는 건, 양말을 입고 벗는 방법부터 밥 먹을 때 계란에 케첩을 찍어 먹을 것인가, 고추장을 찍어 먹을 것인가 문제에 이르기까지 정말 지지부진한 스트레스의 연속입니다.
출산과 육아는 또 어떻게요. 제가 직접 낳아본 건 아니지만, 아내 말에 따르면 애 낳는 과정이나, 낳고 나서 통증을 견디는 것이나 정말 말도 못하게 힘들고 고통스럽다고 합니다. 육아는 저도 많이 하니까 좀 드릴 말씀이 있을 것 같은데, 이게 처음에 해보면 정말 어렵고, 당황스럽고, 난감하고, 절망적인 일의 연속입니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신생아를 키우는 도중에는 애가 어디가 얼마나 이쁜지도 잘 모른 채 정신없이 적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당장 잠도 잘 못자고, 또 밥먹일 시간은 다가왔고, 기저귀는 갈아야 하고, 애기는 자꾸 울고... 의미적 행복이라길래 '결제'한 지가 언제인데 행복이 배달되기는 커녕 힘들기만 하다니요.
그런데 놀랍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행복이 내 가슴 속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이미 제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고, 새로운 환경에 정신없이 적응하는 와중에 어느새 행복의 씨앗이 제 마음 속에 심어졌나 봅니다.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디고, 새로운 사실들을 받아들이며, 그렇게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와중에 어느새 마음 속에 '의미적 행복의 씨앗'이 싹을 틔우더라고요.
저는 도파민보다 의미적 행복이 더 좋습니다. 마치 손난로처럼, 처음에 잘 흔들어두면 오래도록 꺼지지 않고 제 마음을 따뜻하게 데워주거든요. 잠깐 뜨거운 불을 쬐고 마는 것과는 달라요.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실제 온도와는 상관없이 저희 집에는 늘 훈훈함이 떠다닙니다. 왠지 포근하고 따뜻합니다. 아내와 저, 단 둘이서 살 때는 안 그랬거든요. 그런 훈훈한 느낌이 곧 의미적 행복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덜컥 출산과 육아를 결정하고 삶을 바꿔놓지 않았더라면, 그런 행복이 어디에 깃들 수 있었을까요.
진정한 행복은 사후지불입니다. 일단 삶을 통째로 뒤집어 놓으면, 고통스럽게 적응하는 사이에 어느새 가치와 의미가 깃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한번 싹튼 행복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수년, 수십년이 지나도 이 때의 기쁨과 보람은 아마 평생 제 가슴 속에 남을 것 같습니다. 아마 유튜브 숏츠 수십만 편을 보더라도 그걸 대체할 만한 경험은 없을 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