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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효 Dec 31. 2022

반값으로 도전하는 셀프 인테리어(13)

CHAPTER 2 - 08. 배관 설비

화장실 철거 과정에서 작업자의 실수로 배수관의 주요 부분을 잘라버렸다. 실수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누구를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이 때문에 철거 후에 계획에 없었던 배관 설비 공정을 급히 끼워넣게 됐다.


배관 공정은 주로 수도, 씽크대, 욕실, 변기 등의 상하수관, 오수관 등을 변경할 때 필요하다. 원래 우리는 빠듯한 예산 때문에 부엌과 화장실의 기존 배관을 재활용할 계획이었다. 이 때문에 배관 공정을 생략하고 철거에서 곧바로 미장과 방수 공정으로 넘어가고자 했다.


게다가 우리 현장의 주요 배관은 이전 주인이 한번 손을 대 개보수가 이뤄진 상태였다. 특별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거나 구조 변경을 계획하지 않는 이상 기존 배관 구조에 손을 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 급하게 배관 설비 공정을 편성하고 나서야 애초에 설계 단계에서부터 배관 공사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했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됐다.  


여러 군데 전화를 돌려 당장 내일 작업 일정이 비어있는 기술자를 수소문했다. 갑작스런 부탁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실력이 좋은 배관 설비 기술자를 구할 수 있었다. 그는 수백 종의 배수관과 부품, 공구로 가득찬 트럭을 몰고 새벽부터 인천에서 출발해 구세주처럼 작업장에 나타났다.


부탁드린 작업은 철거 과정에서 망가진, 40년 동안 쓰던 하수 배관을 철거하고 새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아울러 역시 철거 과정에서 끊어진 온수 배관을 재연결해 세면대와 양변기, 샤워기 수도를 설치하고, 벽 ‘까대기’(콘크리트 표면을 일부 철거하는 것) 작업을 통해 욕실 수전 위치를 250mm 정도 높여 샤워 수전을 달 수 있게 개조하는 것도 함께 부탁드렸다.


망가진 하수 배관을 고치는 부분에서는 만능 맥가이버도 예기치 못하게 애를 먹었다. 기존의 배수구는 너무나 낡았고 요즘 시판되는 사이즈와는 맞지 않는 배수관 부품이 무쇠로 된 하수구 입구 부분과 강력 본드로 매우 강하게 접합되어 있었다. 트럭 가득한 웬만한 공구로도 쉽사리 분해되지 않았다.


그는 한두 시간 동안 땀을 뻘뻘 흘리며 애를 먹은 끝에 문제를 해결했고, 맨손으로 배수구 깊은 곳에 고여 있던 수십 년 된 머리카락과 쓰레기를 건져올리며 청소한 후 새로운 배수관 설치를 마쳤다. 웬만한 기술자의 두 배에 달하는 노임이었지만, 결과물을 보면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망가진 하수 배관을 철거해고 새 배관을 재설치했다.
끊어진 온수 배관도 복구해 연결했다.


시간이 모자라 벽부형 세면대를 설치하기 위한 배관 작업을 끝내 못한 것은 아쉽다. 만약 처음부터 배관 계획을 세우고 공정을 편성했다면, 인력을 추가해서라도 세면대 배관 일부를 벽에 매립해 벽부형 세면대를 설치하기 위한 배관 공사를 마쳤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에 계획했던 대로 긴다리 세면대로 마감하기로 했다.


돌이켜보면 인테리어 공정 가운데서도 배관 설비는 정말 실력이 좋은 기술자를 만나는 것이 중요했던 것 같다. 일단 배관을 한번 설치해 매립하고 나면 그 위에 시멘트 몰탈, 타일 등으로 마감되고 고정 된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누수라도 있을라치면 다시 모든 마감재를 철거하고 재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용은 물론 공기(工期)를 많이 잡아먹기 때문에 뒤에 오는 모든 공정을 재조율해야 하는 불상사가 일어날 수 있다.


배관 설비 공정은 비단 바닥 아래를 지나가는 수도 배관이나 보일러 외에도 천장에 설치되는 각종 설비도 해당된다. 만약에 천장 매립형 에어컨을 신설하거나 에어 덕트를 설치하고 싶다면 목공이 들어오기 전 필요한 배관을 구축해 뽑아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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