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 자체가 감동이 되는 도시, 카우나스>
11장.
<걷는 것 자체가 감동이 되는 도시, 카우나스>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빌뉴스의 활기찬 음악을 뒤로하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한 시간 남짓 달려 도착한 곳은 리투아니아의 두 번째 도시, 카우나스. 하지만 나를 맞이한 것은 도시의 소란스러움이 아닌, 차분하고 묵직한 고요였다. 햇살은 환하게 쏟아졌지만, 바람조차 서두르지 않는 듯 모든 것이 제자리에서 느리게 흐르고 있었다. 정적이 아니라 침착함, 쓸쓸함이 아니라 단단한 평온. 이곳은 ‘소리 없이 말을 거는 도시’였다.
예술가의 손길이 닿은 에어비앤비에 짐을 풀었다. 1층의 작은 공방 위에 자리한 공간은, 사진보다 더 넓고 정갈했다. 하얀 리넨 커튼 사이로 스미는 오후의 햇살이 벽에 걸린 수채화와 콜라주 작품 위로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마치 이곳에선 말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가만히 머물러만 있어도 충분하다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나는 곧장 도시의 심장이라 불리는 ’ 자유의 거리(Laisvės alėja)‘로 향했다. 1.7km에 달하는 이 긴 보행자 전용 도로는 길이라기엔 너무 넓고, 광장이라기엔 너무 길었다. 차가 없는 길 위에서 발걸음 하나하나가 음악이 되었고, 조개 문양으로 장식된 보도블록은 마치 도시가 품은 기억들을 차곡차곡 꺼내 보여주는 듯했다. 벤치에 앉아 쉬거나, 나란히 늘어선 린든 나무 아래를 걷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걷는다는 행위 자체가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자유와 존엄임을 깨달았다.
길의 끝에 다다르자 우아한 돔이 솟은 세인트 미카엘 대성당이 눈에 들어왔다. 한때 러시아 제국의 위용을 드러내던 군인들의 성당은 이제 누구에게나 조용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회색과 흰빛이 어우러진 내부는 도시의 고요를 그대로 닮아 있었고, 노년의 여성들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말보다 깊은 존중과 역사의 무게를 느낄 수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카우나스가 자신을 과시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것을 말해주는 도시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곳을 지켜온 것은 활기 넘치는 젊음이 아닌, 오랜 삶의 풍파를 견뎌낸여성들이었다. 그들의 발걸음에는 영혼의 깊은 진동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의 소란과 웅장한 역사 한복판에서, 나는 이 여행의 가장 따뜻하고 본질적인 순간을 마주했다.
차가운 돌바닥 위에 덩치가 꽤 큰 한 소년이 무릎을 접고 앉아 있었다. 소년의 손에는 ‘칸클래스(Kanklės)’라는 발트 전통 악기가 놓여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영혼을 담은 이 악기는, 우리나라의 가야금이나 서양의 크로마하프를 닮은 듯했으나, 그 소리는 오직 이 땅의 바람만을 머금고 있는 듯했다.
소년이 수십 개의 현을 뜯기 시작하자, 맑고 단순한 음률이 도시의 복잡한 소음 위로 얇게 내려앉았다. 그 소리는 결코 격렬하거나 화려하지 않았지만, 흙과 나무의 시간을 품은 듯 깊고 진중하여 가볍게 흘려들을 수 없었다. 마치 고요한 호수 아래서 잔잔하게 피어오르는 물방울처럼, 그의 연주는 리투아니아 민족의 오래된 숨결을 노래하고 있었다.
소년의 곁에는 그의 아버지가 조용히 서 있었다. 아버지는 연주 내내 아들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았는데, 그 눈빛은 그 어떤 화려한 칭찬의 말도 없이 순수한 사랑과 존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은 전통을 지키는 아들에 대한 긍지였고, 소년이 만들어내는 그 작은 소리 자체를 숭배하는 침묵의 고백이었다.
마지막 현이 울음을 멈추자, 아버지는 말없이 몸을 숙여 소년의 굵어진 등을 오래도록 토닥였다. 그 손길은 투박했지만, 수천 마디의 언어보다 깊은 격려와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남겨둔 채, 어깨를 나란히 하고 천천히 길을 걸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한참 동안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소리를 지키는 것,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 그것은 단순히 박물관에 유물을 보존하는 행위를 넘어, 한 세대가 다음 세대에게 영혼을 전달하는 가장 깊은 사랑의 방식일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 칸클래스의 잔향처럼, 리투아니아의 정신은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카우나스는 내게 속도보다 결이 중요하다고, 보이는 것보다 함께 걷는 것이 더 가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지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언제나 조용한 쪽에 있다고 속삭였다. 이 도시에서 나는 말이 아닌 발걸음으로, 마음을 다독이고 있었다.
걷는 것, 그것은 곧 삶을 걷는다는 말의 진짜 의미였다.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