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미래를 지시하는 삼각형과 연대의 시

[10장] 미래를 지시하는 삼각형과 연대의 시

by 박은아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리투아니아 <미래를 지시하는 삼각형과 연대의 시>


미술관을 나서자, 도시의 결은 미세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낡은 석조 건물에서 금속과 유리, 콘크리트의 반짝임으로 이어지는 풍경. 빌뉴스는 확실히 과거의 상흔만을 껴안고 있지

미술관을 나서자 도시의 결은 바뀌기 시작했다. 낡은 석조 건물에서 금속과 유리, 콘크리트의 반짝임으로 이어지는 풍경. 빌뉴스는 확실히 변모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복판에 삼각형의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금빛으로 수 놓인 외관, 날카로우면서도 안정된 구조. ‘삼각탑(Triangle Tower)’이라는 이름은 금융과 기술, 새로운 미래를 선언하는 듯했다.


그 건물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삼각형은 가장 단단한 도형이자, 동시에 방향을 지시하는 기호다. 안정과 전진. 인간의 삶 또한 그러한가. 견고함은 변하지 않는 뿌리에서 오는가, 아니면 끊임없이 변화로 향하는 용기에서 오는가.


미술관을 나와 네리스 강변을 따라 걷다, 근처 ‘eat & seat’ 레스토랑에 들렀다. 점심시간, 세련된 옷차림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식사하는 풍경은 도시의 성숙함을 말해줬다. 샐러드 바의 신선한 채소, 따뜻한 수프의 향기, 그리고 조용히 웃음 짓는 사람들. 누군가는 노트북을 펼쳐 일을 하고, 누군가는 책을 읽으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겼다.

그 차분한 활기 속에서, 나는 빌뉴스가 단순히 과거의 상처를 덮는 도시가 아니라, 시간과 의식을 층층이 쌓아 새로운 삶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곳임을 느꼈다.

식당의 유리창 너머로 우크라이나 깃발이 펄럭였다. 노란빛과 파랑의 조합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리투아니아와 우크라이나의 공유된 역사적 트라우마를 잇는 다짐이었다. “우리는 기억한다. 우리는 함께한다.” 이 연대의 상징은 미술관의 작품들과 공명했다.


골목을 걷다 벽에 쓰인 문장을 마주했다: “전쟁은 총보다 먼저 말에서 시작된다. 그러므로 말은 다시 시로 태어나야 한다.” 이 문장은 국립 미술관의 캔버스처럼, 언어가 무너질 때 전쟁이 시작되고, 언어가 시로 재탄생할 때 평화가 가능함을 속삭였다.


나는 그 문장 앞에서 내 음반 《Cui Bono –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떠올렸다. 전쟁과 권력의 논리 앞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남는가? 빌뉴스는 답을 주었다. 예술과 언어였다. 국립 미술관의 작품들은 소련의 침묵을 깨는 외침이었고, 우크라이나 깃발은 연대의 시였다. 또 다른 곡 《연금술》은 상처를 금으로 바꾸는 이야기인데, 이 미술관은 그 연금술의 증거였다. 소련의 억압, 나치의 파괴를 지우지 않고, 그것을 예술로 승화시켜 새로운 정체성을 창조했다. 상처는 고통이 아니라 품위로 변모했다.


저녁, 강변의 고요 속에서 나는 체스와프 밀로시의 시를 떠올렸다. “세계는 아름답고, 구원받아야 한다.” 리투아니아 태생의 그는 전쟁과 망명 속에서도 언어를 믿었다. 그의 시는 국립 미술관의 벽처럼, 상처 위에 아름다움을 새겼다. 이 미술관은 소련 혁명박물관(1980)으로 시작되었지만, 독립 이후 자유와 창조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과거를 부수지 않고, 그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쌓았다.


빌뉴스 국립 미술관은 리투아니아의 상흔을 품고, 예술로 치유하며, 미래를 향한 다짐을 새기는 곳이다. 나는 그곳에서 질문을 품고 나왔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 세계를 지켜낼 수 있을까?” 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미술관의 빛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연금술》의 선율처럼, 나는 그 빛을 따라 걸었다.


추가 정보:

• 위치: Konstitucijos pr. 22, Vilnius, Lithuania

• 운영 시간: 화-수 11:00-19:00, 목 12:00-20:00, 금-토 11:00-19:00, 일 11:00-17:00 (월요일 및 공휴일 휴무)

• 입장료: 일반 8€, 할인 4€, 상설 전시만 6€ (매달 마지막 일요일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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