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투아니아 <빌뉴스 국립 미술관: 상처를 품고, 품위를 쌓다>
9장
리투아니아 <빌뉴스 국립 미술관: 상처를 품고, 품위를 쌓다>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예술은 한 도시의 내면, 그 깊은 상흔과 용기를 비추는 거울이다. 나는 여행 중 반드시 그 나라의 미술관을 찾는다. 풍경도 사람도 음식도 기억에 남지만, 미술은 가장 단단하고 정제된 감정의 결을 만들어준다. 나는 나와 마주한 도시의 영혼, 그 진실한 마음을 미술관의 캔버스 위에서 발견하고 싶었다. 빌뉴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올드타운 끝자락, 네리스 강변에 정제된 선과 빛이 유리창에 반사되는 현대식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빌뉴스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Art). 내부에 들어서자마자, 나는 숨을 멈췄다. 익숙한 유럽식 고전 회화의 장엄함 대신, 벽 하나하나에 생명처럼 걸린 작품들이 관람객의 영혼을 응시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히 그림을 걸어둔 장소가 아니라, 리투아니아의 현대사를 품은 성소였다.
1968년 소련 시대의 건축에 뿌리를 두었으나, 2000년대 현대적 개보수를 통해 유리와 빛의 투명성을 덧입은 이 건물은,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리투아니아 그 자체를 닮아 있었다. 이곳은 20세기부터 현재까지 약 46,000점의 현대 미술을 소장하며, 소련 점령(1940–1991), 나치 점령(1941–1944), 그리고 1990년 독립 투쟁의 상흔을 예술로 증언하는 무대였다. 이 미술관은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리투아니아의 정체성을 재구성하는 연금술의 공간이었다.
전시실은 시간의 균열 속으로 관람객을 빨아들였다. 각 방은 리투아니아 현대사의 한 장을 펼쳐놓으며, 예술이 역사적 트라우마와 어떻게 대화하는지를 보여줬다. 림타우타스 빈센타스 기바비치우스의 90주년 기념 전시에서, 소련 체제의 검열 속에서도 자유를 갈망했던 그의 추상적 판화는 억압의 무게를 뚫고 나온 생의 뜨거운 맥박 같았다.
나는 한 초상화 앞에 오래 멈췄다. 눈동자가 살아 꿈틀거리는 듯한 얼굴, 이름 없는 이의 시선은 소련의 강제 노동수용소와 전쟁의 포화를 견딘 자의 웅변적인 고백이었다. 갈라진 대지를 닮은 붓질의 풍경화는 전쟁의 상흔을 봉합하려는 듯 절실했고, 정물화 속 투명한 유리병은 소련의 감시 아래 숨겨졌던 진실을 상징하는 듯 위태롭게 빛났다.
리투아니아 미술 작품들은 단순한 미적 감상을 넘어, 생존과 저항의 기록으로서 깊은 의미를 지닌다. 예술은 이곳에서 ‘취미‘가 아니라, 역사의 폭압 속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부당한 현실에 맞선 민중의 ‘존재의 외침'이었다. 캔버스마다 새겨진 절박함과 생존 의지는, 투명한 유리병조차 그들의 삶의 잔향을 담아내는 성물로 다가오게 했다. 유럽의 다른 도시에서 보았던 미술이 완벽한 형식미를 추구했다면, 빌뉴스의 작품들은 더 절실했고, 더 내밀했으며, 영혼을 담보로 한 투쟁의 기록이었다.
저녁, 강변의 고요 속에서 나는 리투아니아 태생의 시인, 체스와프 밀로시의 시 구절을 떠올렸다. “세계는 아름답고, 구원받아야 한다.” 전쟁과 망명 속에서도 언어를 믿었던 그의 믿음은, 이 미술관의 벽에 그대로 새겨져 있었다. 이곳은 소련 혁명박물관으로 시작되었지만, 독립 이후 과거를 부수지 않고, 그 트라우마 위에 자유와 창조라는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 올렸다. 빌뉴스 국립 미술관은 상흔을 품고, 예술로 치유하며, 미래를 향한 다짐을 새기는 자유의 연금술이 일어나는 공간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질문을 품고 나왔다: “우리는 무엇으로 이 세계의 어둠을 지켜낼 수 있을까?” 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미술관에서 받은 희망의 빛이 내 안에 스며들었다. 나의 음반 《연금술》의 선율처럼, 상처를 품위로 바꾸는 그 빛을 따라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다시, 다음 여정은 어디인가. 리투아니아를 뒤로하고 내가 찾아야 할 다음 '깊은 호흡'은 과연 어떤 도시의 품 안에 숨어 있을까?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