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장 장] 강과 헌법 – 빌뉴스의 심장을 찾아서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by 박은아

[7장] 강과 헌법 – 빌뉴스의 심장을 찾아서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7장

리투아니아 <강과 헌법 – 빌뉴스의 심장을 찾아서>

빌뉴스에 도착한 여행자라면, 도시의 궤적에서 잠시 이탈해 꼭 방문해야 할 비밀스러운 영역이 있다. 이름마저 신기한 그곳, 바로 ’ 우주피스(Užupis)‘다. 리투아니아어로 '강 건너편'이라는 뜻을 가진 이 작은 땅은, 빌네레(Vilnelė) 강에 둘러싸인 약 0.6제곱킬로미터 면적의 특별한 공동체다. 약 7,000명의 주민 중 1,000여 명이 예술가라는 통계가 말해주듯, 이곳은 예술이 공기를 지배하는 '자유 공화국'이다.

1997년 4월 1일, 이곳의 예술가들은 독립 공화국을 선언하며 세계를 향해 자신들만의 깃발을 올렸다. 비록 실제 국가는 아니지만, 독자적인 헌법과 국기, 심지어 열한 명 규모의 소규모 군대까지 갖춘 문화 예술 공동체로서, 매년 만우절에 성대한 축제를 연다. 우주피스는 권력과 통제에 복종하지 않고, 오직 예술과 인간의 자유를 최우선으로 두는 이상향으로, 흔히 ‘빌뉴스의 몽마르트르'라고 불린다.

우주피스를 감싸 안은 작고 조용한 강이 있다. 그 이름은 빌니아(Vilnia). '물결치다', '거센 흐름'이라는 뜻을 가진 이 강은, 이 도시 빌뉴스(Vilnius)의 기원이자 이름 그 자체가 되었다. 도시는 이 강에서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이 강을 따라 맥동하며 살아왔다. 우리가 내려가 걸었던 그 개천 같은 물길은 사실 빌니아 강의 한 갈래였다. 풀숲을 헤치며 느릿하게 흘렀고, 바람보다 더 고요하게 흘러갔다. 햇살이 반사되는 잔잔한 수면, 그리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던 물소리. 그 침묵은 언어보다 먼저 다가와 도시의 깊은 체온을 전달했다.

빌뉴스의 정체성은 이 강에서 비롯된다. 말보다 물소리가 더 오래 남는 곳. 침묵이 사람의 체온보다 먼저 다가오는 곳. 누군가 이층 베란다에서 손짓으로 안내해 준 그 방향을 따라 강변을 걷던 나는, 도시의 맥박을 따라 흐르는 듯한 깊은 연결감을 느꼈다. 강이 있었기에 도시는 부드럽게 흐를 수 있었고, 그 흐름 위에서 우리는 작은 안도와 연결감을 얻었다.

우주피스(Užupis). 눈부시게 뜨거운 햇살 아래, 이곳의 헌법이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되어 벽에 빼곡히 붙어 있었다. 한국어를 발견한 순간, 낯선 도시 한복판에서 도시가 나에게 건네는 아주 개인적인 친절처럼 아련했다.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사람은 게으를 권리가 있다.”,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권리가 있다.” 진지한 듯 장난스럽고, 장난스러운 듯 진지한 문장들. 그 단순한 언어 속에서, 나는 자유의 본질이 무언가를 소유하거나 성취하는 것이 아니라, ’ 존재하는 방식’을 스스로 결정하는 데 있다는 깨달음을 얻는 듯했다.

강가의 고요는 그 깨달음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풀숲 같은 개천을 따라 걸으며 나는 그곳에서 특별한 기념비나 화려한 풍경을 찾지 않았다. 오직 고요. 풀과 바람, 그리고 햇살뿐이었다. 아무것도 찾지 않았지만, 나는 도시와 하나의 리듬을 공유하는 듯한 깊은 연결감을 느꼈다.


헌법의 문장이 가슴에 깊이 새겨질 무렵, 문득 ‘나는 지금 충분히 게으를 권리를 누리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했다. 삶의 모든 순간을 계획하고 성취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그저 빌뉴스의 햇살과 물소리를 허락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도시가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었다. 그러나 그 완벽한 고요를 깨뜨리는 하나의 감각이 불현듯 다가왔다. 아주 익숙하고 구수한, 인간의 본능을 자극하는 그 향기. 다음 순간, 나는 그 향기의 유혹을 따라 우주피스의 강변을 벗어나고 있었다. 과연 그 향기는 나를 어디로 이끌었을까? 그리고 그곳에서 나는 빌뉴스의 또 다른 어떤 진실을 마주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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