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장] 헌법이 흐르는 강가에서, 피자를 맛보다
발트 3국 여행기ㅡ산다는 건, 어느 플루티스트의 깊은 호흡을 찾아서
리투아니아 <헌법이 흐르는 강가에서, 피자를 맛보다>
우주피스의 ‘게으를 권리‘를 만끽하며 강가를 거닐던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은 것은, 문득 코끝을 스치는 지극히 세속적인 향기였다. 화덕 피자의 구수한 냄새. 그 향기는 예술 공동체의 이상향보다 더 현실적이고 강력한 유혹이었다. 우리는 헌법이 새겨진 벽을 뒤로하고, 우주피스 입구 근처의 작은 화덕 피자 가게로 이끌려 들어섰다.
이탈리아식 화덕 피자는 예술과 자유가 가득한 도시에서 만난, 가장 단순하고 완벽한 기쁨이었다. 얇고 바삭한 도우 위에는 짙은 치즈 향이 농밀하게 배어 있었고, 진한 산미가 살아 있는 토마토소스는 혀끝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그 옆에는 금빛 햇살을 머금은 맥주 한 잔. 얇은 거품이 미지근한 잔의 온도와 어우러지며, 긴 여정으로 지친 여행자의 오후를 가장 따뜻하고 부드럽게 감싸주었다.
바로 뒷자리에는 단단하고 거친 독일어를 쏟아내는 중년 남성이 자리했다. 그의 목소리는 주변의 평온한 풍경을 잠시 흔드는 듯한 작은 소동이었으나, 이상하리만큼 곧 이 도시의 오래된 소음처럼 자연스럽게 흡수되었다. 빌뉴스는 수많은 침략과 지배를 겪으며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섞어왔던 도시. 독일어는 해독할 수 없는 암호와 같았으나, 그 사이사이 뜻 모를 희망처럼 흘러나오는 영어 단어들이 이상하리만큼 친근하고 반가웠다.
독일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뚜렷하게 구별되는 낯선 언어들이 파도처럼 귓가를 스치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이 낯선 공간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듯했다. 아마 해외의 낯선 공기를 숱하게 마셔본 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아무 말도 통하지 않는 언어의 무중력 공간에서, 낯선 소리들을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그 자리가 살아 숨 쉬는 하나의 풍경이 되고, 나 자신이 그 풍경의 가장 자연스러운 일부가 되는 특별한 경험을.
그날의 점심은 단순한 허기를 채우는 식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빌뉴스를 압축한, 가장 온전하고 완성된 장면이었다.
따스한 햇살, 유유히 흐르는 빌니아 강물, 거리에 새겨진 자유의 헌법 조항, 파도처럼 밀려오는 다양한 언어, 후각을 자극하는 화덕 피자의 향기, 그리고 마침내 입안에 들어온 한 조각의 완벽한 피자. 나는 이 모든 감각의 조화 속에서 비로소 빌뉴스를 가장 깊고 온전하게 맛보고 있었다. 빌뉴스는 눈으로 보는 도시가 아니라, 경험하고 느껴야 하는 도시였다. 그리고 그 한 조각 피자를 통해, 이 도시의 게으를 권리와 행복할 권리를 가장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었다.
복잡한 세상의 리듬에 맞추려 억지로 조여왔던 나의 숨통이, 빌니아 강물처럼 잔잔하게 풀리는 순간이었다. 화려한 연주 기술이나 완벽한 계획을 통해서가 아니라, 낯선 땅에서의 우연한 평화와 한 조각의 피자 앞에서 비로소 나는 진정한 나 자신으로 존재할 권리를 되찾았다. 여행은 결국 가장 세속적인 허기와 가장 고귀한 정신적 자유가 만나는 지점이었다. 빌뉴스가 내게 준 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삶을 온전히 사랑할 용기였고, 그 용기는 뜨거운 치즈 향처럼 오랫동안 나의 기억을 감싸 안았다. 나는 이 작은 도시에서 비로소 자유를 맛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