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사장님, 당신의 술집이 위험하다

AI와 경제 양극화가 낳은 '중간 주점의 비극'

by 잇쭌


프롤로그: '보통의 술집'이 사라지는 이유



주변 상권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우리네 삶의 기쁨과 애환이 뒤섞여 있던, 지극히 평범하고 익숙했던 '보통의 술집'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채우는 것은 극단적인 컨셉을 가진 곳들입니다. 한쪽에서는 "단돈 4,900원 하이볼"을 내세우며 빠른 회전율을 자랑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예약 필수, 1인당 10만 원"의 오마카세 바가 조용히 영업합니다.


저는 이 현상이 단순히 '트렌드'를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양극화와 첨단 기술(AI)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축이 주점 산업이라는 작은 거울에 투영된 결과라고 봅니다. 소비자들이 '보통의 경험'에 더 이상 비용을 지불하지 않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목도하는 '중간 주점의 비극(The Tragedy of the Middle Bar)'입니다.



1. 경제학적 사망 선고: 모호함은 죄가 된다



과거의 '중간 술집'은 안정적인 중산층의 두터운 지갑을 먹고 살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고물가와 불확실한 미래 속에서 소비자의 지갑은 닫혔고, 특히 MZ세대는 술을 '가장 먼저 줄여야 할 비합리적인 지출'로 규정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이제 주점 방문에 대한 지출을 두 가지 명확한 가치 중 하나만 선택합니다.


초가성비(Hyper-Gass-eong-bi): 가격 대비 만족도를 극대화. 저렴하다면 서비스와 공간의 질을 포기할 의향이 있습니다.


초가심비(Hyper-Luxury): 심리적 만족도와 희소성에 투자. 돈을 쓰는 김에 '나만의 가치'와 '지위'를 증명하는 경험을 원합니다.


이 두 극단 사이에 낀 '중간 주점'은 모호합니다. 특출나게 싸지도, 특출나게 가치 있지도 않은 그 모호함이 결국 손님들의 발길을 끊게 만들었습니다.



2. 한쪽 끝: AI와 결합한 '초가성비'의 효율 전쟁



저가 시장에서 생존하려면, '인건비와 로스율을 극한으로 낮춘다'는 냉혹한 공식만이 통합니다. 이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숨겨진 무기가 바로 AI와 자동화입니다.



① 단일 품목과 자동화 시스템


성공적인 가성비 주점은 메뉴를 단순화합니다. '하이볼'이나 '셀프 탭 맥주'처럼, 제조 난이도를 낮춘 단일 품목에 집중하는 것이죠.


AI 기반 효율화: AI는 과거 판매 데이터를 바탕으로 식자재와 주류의 정확한 발주 물량을 예측하여, 재고 폐기율(로스율)을 최소화합니다. 이는 경쟁사 대비 1~2%의 마진을 더 확보하는 생존 경쟁력이 됩니다.


사례: 최근 늘어나는 키오스크 주문 기반의 무인 주류 판매점이나 자동 믹싱 기계를 갖춘 매장은, 복잡한 인력 운영 없이도 규격화된 상품을 빠르게 제공하여 인건비 부담을 획기적으로 낮춥니다.



② 논알콜 시장의 가세


술을 마시지 않는 고객도 포용해야 하는 시대, 고품질의 논알콜(NOLO) 음료는 초가성비 주점의 효자가 됩니다. 원가 부담이 낮으면서도 '건강과 분위기'라는 가치를 함께 판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다른 쪽 끝: 희소성과 경험의 초호화 성채



반대편 극단에서는 '가격의 방어선'을 쌓고, 희소성과 지위를 판매합니다. 이곳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 '특별한 경험'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최상위 소비자를 겨냥합니다.



① 바 오마카세와 지적 유희


주점은 이제 단순한 술자리가 아닙니다. '바 오마카세(Bar Omakase)'는 바텐더의 전문 지식과 스토리에 따라 술과 안주를 페어링해 주는 '지적 유희'를 판매합니다. 바텐더는 술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희귀 주류와 고객의 취향을 연결하는 '큐레이터'가 됩니다.



② AI 기반의 '나만을 위한 공간'


이들은 공간이 주는 압도적인 경험을 판매합니다. 예약제, 비밀스러운 입구(Speakeasy)는 기본이죠.


AI의 역할: AI는 고객의 과거 소비 패턴, 선호하는 분위기, 심지어 SNS 키워드를 분석하여, 방문 시 맞춤형 조명, 음악, 서비스 동선을 설계함으로써 '당신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느낌을 극대화합니다. 고객은 '나의 취향이 존중받고 있다'는 경험에 기꺼이 높은 비용을 지불합니다.



4. 사장님을 위한 질문: 당신의 술집은 어디에 서 있습니까?



'중간 주점'의 비극은 모호함이 시장에서 제거되는 시대의 징후입니다. 이제 더 이상 '적당한 가격에 적당한 서비스'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장님께 드리는 질문입니다. 당신의 술집은 이 양극화된 지도에서 어디에 서 있습니까?


극한의 효율화 모델(가성비)을 선택할 것인가: AI 기반 SCM 도입, 초단일 품목 전문화, 최소 인력 운영 시스템을 구축하여 '가성비 전쟁'의 승자가 될 것인가?


극한의 전문화 모델(프리미엄)을 선택할 것인가: 희소한 주류 컬렉션, 어디서도 맛볼 수 없는 칵테일 등 '인간의 손맛과 지식'을 팔아 높은 가격을 정당화할 것인가?


주점 시장의 변화는 우리 사회의 소비 구조가 얼마나 비정하게 재편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은 표본입니다. '보통'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시대, 술잔 앞에서도 냉철한 전략확고한 가치만이 사장님의 소중한 공간을 지켜줄 것입니다. 이제 모호함과의 결별을 선언해야 할 때입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고객의 '화'는 '감정'이 아니라 '버그 리포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