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먹었던 점심 메뉴도 가물가물한 요즘. 22년 전 억울했던 기억이 아직도 그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하루 종일 버스도 몇 대 안 다니고 전교생도100명이 채 되지않는 작은 시골 초등학교, 새롭게 부임하신 6학년 담임 선생님은 이전 선생들들과는 무언가 달랐다. 무슨 교육 욕심이 그렇게도 많은지 뛰어 놀기만 좋아하던 촌놈들에게 무리하리 만큼 가르쳤다. 책, 한문, 전 세계 나라, 역사...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많은 것들을 가르친 만큼, 회초리도 많이 드셨다.
착~착~
숙제를 안 해서 맞고, 못 외워서 맞고 이틀에 한 번 꼴로 맞았다. 요즘 이렇게 처벌 했다면 부모들이 찾아오고 난리가 났을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시골 학교 선생님의 말은 항상 옳고 바른 거였다.
하루는 선생님께서 기존에 쓰시던 것보다 길고 두툼한 회초리를 가져오셨다. 학생들에게 보란 듯이 회초리를 허공에 휘잉~ 휘잉~ 몇 번 휘두르더니 만족스러운 얼굴로 수업을 시작했다. 친구들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날도 무슨 잘못을 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또 매 맞을 일이 생겼다. 새로운 회초리의 두려움에 나는 어그적 어그적 걸어 나와 친구 두 명 뒤에 조용히 줄을 섰다. 첫 번째 친구가 맞고, 두 번째 친구가 맞고 생각보다 센 강도에 마음이 초조해졌다. 드디어 내 차례,
스윙~짝, 스윙~짝, 스윙~짝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며 야들야들한 손바닥 위를 가차 없이 내리쳤다. 이상했다. 분명 앞에 친구들은 이렇게 세게 맞지는 않았는데, 왜 나만 세게 맞은 것 같지? 혹시 너무 긴장해서 그런가? 기분 탓이겠지 생각하고 그냥 잊고 넘어갔다. 하지만 그 뒤로 몇 차례 더 맞고 나니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더 세게 맞고 있다는 사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해봤지만 다들 자신이 제일 세게 맞았다며, 결론 안나는 이야기만 오고 갔다. 하지만 회초리가 바람을 가르며 나는 소리에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나는 선생님께 물어볼 용기가 없었다. 왜 나만 그렇게 모질게 때리셨는지. 내가 그냥 더 미웠을까? 뭘 더 잘 못했을까? 답 없는 고민만 남기고... 소심한 시골 소년의 억울함은 이렇게 감슴 깊은 곳에묻히는 듯 싶었다.
대학을 입학하고 초등학교 친구들과의 모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우리를 가장 괴롭히고 때리셨던 6학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자는 의견이 나왔고 속전속결로 약속까지 잡게 되었다. 약속 날, 왜 나에게만 그렇게 세게 매를 치셨는지 꼭 물어보겠다고 생각하며 모임 장소로 향했다. 혹시 선생님은 그런 기억조차 없지는 않을까 걱정 되긴 했지만 대학생이 된 난 더 이상 13살 부끄러움 많은 촌구석 꼬마가 아니었다.
선생님과 인사를 하고 옛 추억 거리들로 분위기가 좋아질 때쯤 조심스럽게 원망스러웠던 그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과연 선생님의 반응은 어떨까? 기억하고 계실까? 조마조마했다.
선생님께서는 환하게 웃으며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성길아 사실 그 회초리 있잖아.. 성길이 아버지가 만들어 주신 거야"
"네? 아빠가요?"
"그래, 아버님이 회초리를 나한테 주면서 우리 성길이가 잘못하면 아주 세게 때려 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거든"
"뭐라고요? 정말 우리 아빠가요?"
선생님을 향한 깊고 오래된 원망은 어디로 갈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혼란스러운 마음에 멍하게 자리에 앉아 있다보니 어느새 모임이 끝나있었다. 홀로 자취방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빠~ 나 6학년 담임 선생님한테 아빠가 회초리 만들어 줬어?"
" 선생님 그러시던?" 그랬지, 성길이 초등학교 다닐 때"
"왜 그랬어? 아빠 때문에 선생님한테 나만 세게 맞았잖아"
20살 때만 해도 "아빠가 나 잘되라고 그러셨구나" 차가운 머리로만 생각했다. 15년이 지나고 그 당시 장면 장면들을 되새김질하며글을 쓰고 있는 지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지금,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아빠의 마음으로 조금은 다가갈 수 있었다.
"스윙~ 짝" 그 소리는 아빠의 사랑하는 아들을 향한 따뜻하고 애틋한 마음의 소리 였다는 것을.
톽, 톽
담임 선생님의 회초리 타작소리를 매일매일 이어졌다.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을 알려주셨다. 무슨 욕심이 그렇게도 많으신지 어린 우리들에게 정말 많은 것들을 끊임없이 가르쳐 주셨다. 그중 6학년 우리 담임 선생님은 주저 없이 회초리를 드시는 걸로 유명했다. 시골 초등학교에서 자란 촌뜨기들이 중학교 올라가서 기죽지 말라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시려는 욕심은 지금 와서야 알았지만 그 당시에는 무자비하게 회초리를 드시는 선생님이 무섭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