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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세이 Feb 05. 2024

교감 선생님을 심란하게 하는 교사

교감님, 왜 자꾸 커피 들고 찾아오세요..?

 “아유, 그 거리를 도대체 어떻게 다니려고 그래. 이세이 선생님 볼 때마다 심란해 죽겠어!”


 내 야심 찬 출퇴근 계획을 들은 후, 교감 선생님은 틈만 나면 날 찾아와 복잡한 표정을 지으셨다. 당신도 왕년에 그런 경험이 있는데 할 일이 못된단 거였다. 게다가 난 이미 소소한 스트레스성 질환과 창백하고 넋 나간 민낯으로 교감 선생님의 관리 대상이었다. 그런데 이젠 출퇴근 시간마저 다섯 시간이라니. 교감 선생님의 상상 속 나는 이미 구급차 들것에 실려 있는 게 분명했다. 


 “아유~ 어떻게든 되겠죠. 교감 선생님, 저 골통 같아요?!”

 “응! 아유, 진짜~!”

 아무리 그래도 냅다 ‘응’이라니. 나는 교감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켈켈 웃었다. 제 앞날도 모르고 철없이 웃는 나를 보면서 교감선생님의 머리는 좀 더 지끈거리셨을 거다.


 “선생님, 저는 딱 세 달 봅니다.”

 동료 선생님도 사뭇 진지한 얼굴로 나의 필패를 점쳤다. 동료들은 다들 어쩌다 그런 결심을 한 거냐며 갖가지 말로 호들갑을 떨었고 그러다 몸과 정신의 건강이 죄다 엉망이 되고 말 거라며 부지런히 염려했다. 나는 한동안 지인들에게 내 소식을 전할 때마다 “왜?”와 “어쩌다?”라는 질문을 받았고 외운 듯 줄줄줄 내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말에 설득되는 사람은 없었으므로 나는 적당히 울상을 짓고, ‘뭐 어떻게든 되겠지’를 연발하며 그들의 염려를 헤쳐나갔다. 사실 정작 그걸 직접 해내야 하는 나는 별 생각이 없었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안 해도 될 걱정까지 긁어모아 한 덕에 이젠 걱정할 기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즈음 아빠는 자꾸 한숨을 푹푹 쉬었다. 처음엔 그 출퇴근을 어찌 해낼 거냐는 염려였으나 곧 당신이 서울에 번듯한 집 하나를 마련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 모든 건 내 선택이었고 난 서른씩이나 넘은 어른이었으므로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아빠의 엉뚱한 자책에 나는 괜찮다며 씩씩하게 대꾸했지만 전화를 끊고서는 별 수 없이 이불 모서리로 눈물을 쿡쿡 찍어 없앴다. 그런 종류의 자책은 사랑의 부산물이었다. 


 내겐 다른 선택지들이 있었다. 우선 살던 전셋집을 그대로 연장해서 사는 방법이 있었다. 그럼 머리 아프게 이사를 준비할 필요도 없었고, 출퇴근은 도보로 충분했을 거였다. 드물게 있는 술 약속이 2차와 3차로 이어져도, 카페 마감 시간을 통보받고 쫓기듯 일어나도 집에 돌아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그즈음엔 온 세상에 전세 사기 소식이 파다했다. 몇 년 전 시끌시끌한 전세난 속에 꽤 비싼 전세금을 주고 이사를 온 나에겐 하루하루가 걱정과 싸우는 나날들이었다. 난 그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틈만 나면 집주인의 부와 성공과 건강과 안녕을 기원했다. 그러나 그런 대책 없는 방구석 108배는 해결책이 아니었다. 그 싸움은 전세금을 돌려받고 그 집을 탈출해야만 끝나는 거였다.


 굳이 그 집을 떠나 경기도로 터전을 옮기겠다면 학교도 함께 옮겨버리는 방법도 있었다. 전출이 부담스럽다면 2년간 경기도로 파견을 가는 선택지도 있었다. 그러나 경기도 땅은 너무 광활해서 자칫하면 출퇴근 거리가 애매하게 멀어질 수도 있었고, 지면에 대고는 떠들지 못할 모종의 이유로 그 선택은 하지 못했다.


 그러니 남은 선택지는 경기도에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것뿐이었다. 당시엔 그게 최선 같았다.


 주변의 우려를 해맑게 짓이기며 살던 어느 날, 나는 처음으로 내 선택이 얼마나 무모한지 깨닫게 됐다. 엉뚱하게도 친구와의 식사자리에서였다. 


 그날 친구는 주변의 어느 주말부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부부가 각각 서울과 부산에 사는데, 너무 멀다 보니 뭐 여러 모로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어휴, 일주일에 한 번씩 그 거리를 왔다 갔다 하는 게 보통 일은 아니지. ktx 타도 두 시간 반이잖아.” 

 나는 야무지게 월남쌈을 씹어먹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걸 채 삼키기도 전에 뭔가를 깨달아버렸다.


 “어? 그러고 보니 난 그걸 일주일에 다섯 번씩 해야 하네?”


 “허억... 언니이이이이-” 

 친구는 곧장 나 대신 절규해 주었고 나는 그제야 교감선생님이 날 볼 때마다 심란해하시는 이유를 알게 됐다. 


그러나 이미 내 집에 들어 올 세입자는 구해진 후였고, 이사 준비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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