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효녀는 우깁니다
어렸을 때
아빠를 따라 결혼식장에 갈 때마다 생각했다.
'결혼식을 하면 신부는 저런 옷을 입고, 저런 길을 걷고, 저렇게 사진을 찍어야 하는구나...!'
그때 나는 또래 틈에 얼굴을 들이밀고 얘기를 나누는 어린이 필수 미션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날 주목하는 모든 사람이 무서운 마당에 예식이라니.
심지어 그 시절엔 함 문화도 있었고, 사회자 멘트는 뭐랄까, 주로 노빠꾸였다. 무언가를 어렴풋이 이해할 무렵부터, 나는 '저 무례한 요구에 싫단 말도 못하고 응해야 할 미래의 나'가 너무 걱정돼 어쩔 줄을 몰랐다.
그래도 나는 늘 결혼을 꿈꿨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지치지도 않고, 매번.
따뜻한 집, 보글보글 끓는 차돌된장찌개, 루시드폴 노래를 틀어놓고 같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밤에 산책을 하고- 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꿈이었다. 그러나 그 꿈을 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늘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장면에 이르러 몸서리를 쳤다. 결국엔 결혼'식'이라는 관문을 지나야 한다는 게 내 환상의 가장 큰 난관이었다.
내 성향 외에 또 다른 문제도 있었다. 난 늘 하객이었으니 내가 할 일이라곤 고작 박수를 치고 밥을 먹는 게 전부였으나 결혼식을 앞둔 친구들의 사정은 아무래도 좀 더 복잡해 보였던 거다.
내가 해맑게 "준비 잘하고 있어?!" 하고 물을 때면 그 애들은 언제나 조금 불쌍한 표정을 하고 말했다.
모르긴 몰라도 굉장히 고단한 모양이었다. 하기야, 내 눈에 포착된 결혼식 절차만 해도 양가인사부터 상견례, 예물예단, 청첩장 모임, 웨딩사진 촬영, 청첩장 제작, 본식, 신혼여행, 답례품까지 한숨에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많았으니.
게다가 좀 더 알고 보니, 웨딩사진 속 다양한 헤어스타일도, 식장의 꽃장식과 날리는 꽃잎도, 혼주의 화장과 머리스타일마저도 저절로 되는 게 없었다. 모든 게 신랑신부의 선택이고 계약이었던 거다. 차라리 그냥 빵긋빵긋 웃으면서 하객들 사이로 걸어 들어가는 게 더 쉬워 보일 지경이었다.
이쯤 되니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를 위해 필요 이상의 돈과 심력을 쓰는 건 아무래도 낭비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결혼식의 목적이 공표와 축하라면, 굳이 예식의 형태를 빌릴 필요가 없었다. 정작 오래도록 얼굴을 마주하고 목이 쉬도록 축하해 주는 자리는 식장이 아니라 청첩장 모임이었다. 진심으로 축하해 줄 사람들과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게 적어도 나에겐 더 가치있어 보였다.
그렇다고 이 세상의 결혼식이 몽땅 의미가 없다거나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다. 그냥 나라는 사람에게 공허하고 버거운 과정일 뿐, 난 신부가 부모님과 인사를 나누는 순간에 신부보다 좀 더 많이 울고, 최선을 다해 구도가 엉망진창인 사진을 찍어주며 진심의 진심을 다해 축하해준다. 그저 내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식장에 설 용기도, 결혼식에 대한 환상도, 느끼는 필요성도 없으니 굳이 보통의 결혼식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다행히 요즘엔 세상이 바뀌어서 함 문화가 사라졌고, 결혼식 문화도 보다 정제되는 동시에 다양한 선택지들이 생겼다.
스몰웨딩이라던가, 하우스웨딩이라던가, 가족웨딩이라던가, 직계가족웨딩이라던가, 마이크로스몰 어쩌구저쩌구.
그러나 그마저도 일말의 수고를 들여야 한다는 점과 결국 식의 형태를 띤다는 점에서 썩 마음에 들지 않던 어느 날 난 우연히 환상적인 단어를 접했다.
'노웨딩'이었다.
말 그대로 결혼식을 하지 않는 거였는데, 그러고 보니 식을 꼭 해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난 쾌재를 부르며 결혼식을 하지 않기로 혼자 결정했고 (?)
장녀로서 부모님이 뿌린 축의금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눈치만 보던 중
동생이 먼저 결혼을 하면서 그 고민이 어느 정도 해결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