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멋진 일을 만나다] ③ 쓱싹쓱싹! 제로웨이스트
하루에 0.94kg, 한 달에 28kg, 일 년에 343kg. 서울시민 한 명이 배출하는 쓰레기의 양이라고 한다.(2015년 기준) 우리는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알고 있다. 쓰레기를 줄이는 건 좋은 일이고, (언젠간) 동참하면 좋은 일이라는 것. 그러나 늘 이런 생각이 불쑥 따라붙는다. 내가 저 많은 쓰레기 중 아주 조금 줄인다고 해서, 과연 뭐가 달라지긴 할까?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그 작은 변화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것이 달라질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지구의 땅과 공기의 냄새가 달라지는 건 시간이 더 걸릴 일이긴 하다. 근데 그전에 먼저 우리 자신이 달라질 수 있다면? 생활 습관이 달라지고, 소비 패턴이 변화하며, 삶의 질이 달라진다. 물론 좋은 쪽으로. 심지어 똑같이 반복되던 일상 속에서 도무지 찾을 수 없던 재미를 찾게 될 수도 있다. <쓱싹쓱싹! 제로웨이스트>라는 이름으로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를 대략 4개월간 실험해본 팀의 이야기이다.
*인터뷰에는 <쓱싹쓱싹! 제로웨이스트>를 기획하고 운영한 그림, 복순, 새벽 님 그리고 제로웨이스트 프로젝트에 참여한 씽, 소년 님이 함께 했습니다.
세 분은 같은 회사에서 일한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이런 일을 벌이시게 된 거예요?
그림) 같은 비영리 단체에서 일하고 있어요. 점심 먹고 남은 시간에 셋이 모여서 수다 떨다가 서로의 취미라든지 관심사를 나누게 됐거든요. 기타 연주, 일본어 같은 걸 서로 가르쳐주기도 하고, 여행 이야기도 하곤 했고요. 그러다가 뭔가 사익과 공익을 결합해서 좀 의미 있으면서 재밌는 일을 좀 해보자, 그렇게 된 거죠.
근데 전혀 쓰레기와는 관련이 없어 보이시는데, ‘제로웨이스트(Zero Waste)’라는 걸 하게 되신 이유라도?
복순) 그전에 제가 비슷한 도전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환경에 관심이 많은 친구랑 얘기하다가 해외에서 어떤 사람들이 플라스틱을 하나도 쓰지 않으면서 여행을 하고 기록한다는 사례를 들은 거죠. 그래서 우리도 한번 해볼까 해서 락앤락 통에 숟가락, 젓가락, 수세미, 세제까지 챙겨서 태국 여행을 갔어요. 근데 결과는 실패였죠. 일단은 여행하면서 설거지하는 것도 힘들고, 노점상들한테 여기에 담아 달라고 해도 싫어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림) 저 같은 경우에도 예전부터 환경에 관심이 많았어요. 관련 일도 하기도 했고, 취미가 등산, 스쿠버다이빙 이런 거예요. 자연에서 하는 것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환경에도 관심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복순의 얘길 들었을 때 재밌겠다 싶었죠. 그럼 이번에 한번 시도해볼까? 이렇게 된 거죠. 그때부터 쓰레기 줄이기에 대해 알아보다가 저희도 그때 처음 제로웨이스트라는 개념을 알게 된 거예요.
제로웨이스트라는 개념이 외국에서는 활발히 진행 중인 운동으로 알고 있는데,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른 건가요?
그림) 제로웨이스트 자체가 생활 속에서 쓰레기 배출을 최소화하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나오는 건 자원을 재활용해서 순환하자, 그런 기본 개념을 가지고 있고요. 사람들마다 각각의 방법론을 가지고 모두 조금씩 다른 형태로 하고 있는 운동인 거죠.
그럼 쓱싹쓱싹 팀이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해 정한 방법은 어떤 거였나요?
복순) 사실 저희가 열혈 환경운동가도 아니고, 선뜻 제로웨이스트를 선언하기는 부담스러웠어요. 그래서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 한 거죠. 일단 처음 4주간은 ‘관찰기’ 기간이었어요. 내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많은 쓰레기를 만들고 있는지 각자 정말 관찰만 하고 파악해보는 거죠.
새벽) 그게 끝나면 ‘도전기’로 넘어가서 각자 일상 속에서 자신들만의 기준으로 쓰레기를 줄여보는 노력을 4주간 해보는 거죠. 그 사이에 워크숍을 열어서 필요한 정보도 공유하고, 참여자도 모집하고요. 제로웨이스트 캠페인을 하거나 여행을 떠나서 실천해보는 식으로 계획을 짰어요.
안 그래도 여러분이 올린 ‘쓰레기 관찰기’를 무척 재밌게 봤어요. 어떤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던가요?
복순) 저는 물 대신 쓰는 게 되게 많더라고요. 물티슈, 휴지, 핸드타월 같은. 대충 내가 이런 걸 좀 자주 쓴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이만큼이나 될 거라고는 몰랐던 거죠.
새벽) 소주병? 항상 껴있더라고 소주병이..(웃음) 사실 다양했어요. 거의 포장재 종류가 많았어요. 먹거리에서 가장 많이 나왔고요. 스티로폼, 고기 같은 것에도 항상 랩이 있고, 과자 같은 건 상자가 있다든지.
그림) 저는 일단… 인스턴트 음식으로 점철되어 있는? 그리고 역시 없어지지 않는 맥주캔…(웃음) 그 시기에 야근을 많이 해서 생각보다 쓰레기가 많이 나오진 않았는데, 그럼에도 제가 인스턴트 음식을 되게 많이 먹고 있더라고요. 제가 요리를 원래 싫어하는 사람이 아닌데, 한 5년째 슬럼프가 장기화돼서...
그렇게 관찰해보니 어떻던가요?
새벽) ‘도전’부터 하려고 했으면 못했을 수도 있는데, 그전에 일단 관찰을 하는 거니까 부담이 덜했죠. 자신의 생활패턴을 한 번쯤 지켜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요. 먹는 것에서부터 버리는 것까지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 쓰레기잖아요. 근데 정말 알고는 있었지만 불규칙하더라고요. 먹는 것도 그렇고 모든 것이. 근데 관찰만 하는 데도 약간 조여 오는 압박과 죄의식이 생기더라고요. 계속 쓰레기가 보이니까.
먹는 것부터 약봉지까지 고민하게 되었던 시간 (사진 — 좌 ©새벽 우 ©복순)
복순) 저는 일단 재밌었어요. 내가 만든 쓰레기를 주의 깊게 관찰해보는 경험을 비유하자면, 마치 사육사가 자신이 돌보는 동물의 배설물을 살펴보면서 건강상태를 체크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내가 요즘 뭘 먹고 사는지, 뭘 하며 사는지 알 수 있으니까요. 인상 깊었던 건 기록을 해보니까 내가 인식하지 못했던 이런 쓰레기들도 만들어내고 있구나, 라는 것을 머리가 아니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같이 할 수 있어서 더 재밌었어요. 서로의 쓰레기들을 보면서 할 수 있으니까. 저희는 세 사람이 다 각자 하고 싶은 스타일로 하자고 했거든요. 그래서 다 방법이 조금씩 달랐는데 그래서 보는 재미가 있었죠.
그림) 사실 쓰레기가 사람의 라이프스타일을 그대로 반영을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온라인에 공개하기가 부담스러운 거예요. 내가 뭐 먹고, 어디 가고 그런 게 전부 나오니까. 그리고 저는 제가 먹었던 걸 엑셀 파일로 쭉 정리를 해봤거든요. 그랬더니, 대충 통계가 나오더라고요. 그럼 여기서 다음 달에는 이거는 줄일 수 있겠다, 이 정도는 해볼까, 이런 식으로 모니터링 결과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계획이 세워지더라고요. 그래서 목표 설정이나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준비하는 과정으로서 관찰기가 참 도움이 됐어요.
그래서 어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웠죠?
그림) 아, 사실 전에도 '면생리대 쓰기' 이런 걸 해보긴 했었거든요. 근데 그게 시간이 지나면서 귀찮으니까 흐지부지되곤 했었기 때문에, 이번에 프로젝트를 하면서는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작은 습관들 몇 가지는 확실하게 좀 만들어보자는 목표가 생겼죠. 예를 들어 텀블러나 손수건 들고 다니는 것 같은 기본적인 습관은 확실히 몸에 베개 한번 해보자라는 거였고. 그리고 제가 항상 페트병에 든 생수를 사 먹거든요. 근데 이거는 정수기를 장만해서 페트병이 안 나오도록 해본 거죠.
새벽) 근데 그 정수기 택배 왔을 때 쓰레기 엄청 나왔어요!(전원 웃음)
복순) 같이 하면 이렇게 서로의 쓰레기를 폭로하는 재미도 있고, 혼자 하면 하다 말 수도 있는데, 서로 잔소리하면서, 자극이자 놀이처럼. 그게 사실 제일 좋았어요.
소년님 관찰기 보면 택배 상자 많이 나왔다고 죄책감 느끼시던데, 그래도 재활용되는 물건은 부담을 조금 덜 느껴도 되지 않을까요?
소년) 그런 생각 많이 들어요, 하다 보면. 점점 자기 합리화의 최고봉이 되는 느낌? 이거는 누군가가 쓸 수 있어, 이거는 재활용이 되는 쓰레기야! 이러면서.
복순) 이렇게 합리화를 하다 보니, 저는 이게 베지테리안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채식주의자라고 뭐 다 안 먹는 건 아니고 계란, 우유는 먹는 단계가 있고, 고기는 안 먹지만 생선은 먹는 단계도 있고 하잖아요. 이런 거처럼 제로웨이스트도 단계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어요. 예를 들어 플라스틱은 안되지만 종이는 버려도 되고, 이런 거요.
씽) ‘플라스틱 프리 줄라이(Plastic Free July)’라고 호주에서 하는 캠페인이 있더라고요. 7월 한 달 동안 하는 캠페인인데, 그것도 본인이 도전하고자 하는 항목을 선택할 수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 나는 테이크 아웃 컵만 안 쓰는 정도로 할 거야, 라든지 나는 아예 플라스틱을 안 쓸 거야 등등. 저희가 마침 제로웨이스트를 하고 있던 7월에 딱 열려서 되게 재밌다 싶었죠.
그림) 그래서 거기 사이트 메뉴에 ‘일회용품 안 쓰기’ 챌린지 눌러놓고는, 결국 쓰긴 했죠.(웃음) 그리고 30일이 끝나면 도전 잘 했냐고 메일이 오는 데, 뜨끔 했던 기억이…
관찰기가 끝나고 줄이려는 노력을 해보는 도전기를 가지셨잖아요. 얼마나 줄여지던가요?
새벽) 저는 관찰기를 겪고 나서 ‘인스턴트 음식을 줄이고, 건강한 음식을 먹자’라는 게 목표가 됐어요. 그래서 어떤 한 가지를 정해서 ‘이 쓰레기는 줄여야 돼’ 이런 건 아니었지만, 전체적으로 쓰레기 양을 보면 줄긴 줄었어요. 그 시기에 라면도 안 먹었거든요, 라면 너무 먹고 싶었는데. 꼭 제가 다이어트하는 것 같았다니까요. 과자도 안 먹고 커피도 엄청 좋아하는데 웬만하면 줄이거나 끊어봤어요. 제가 카페인도 하루에 섭취하는 양이 너무 많은 것 같더라고요. 이번 기회에 건강 패턴도 바꿔보면 어떨까 싶어서. 되도록 밥도 집에서 해 먹었고요. 덕분에 살이 쪘어요. 다이어트가 아니라, 건강하게 잘 챙겨 먹자라는 거여서. 소비 자체도 바꿔보려고 재래시장 갔거든요. 좀 귀찮아도, 이번 주에 사야 될 것들을 미리 적어놨다가 사 오고. 이런 식으로 한 달 동안 평소에 하지 않았던 개선된 삶을 조금은 살아보지 않았나 싶어요.
복순) 제가 줄여보려고 한 거는 첫 주에는 ‘핸드타월’. 제가 정말 습관처럼 쓰더라고요. 물티슈, 휴지 이런 것들도 기존보다 덜 쓰고 손수건으로 대체해서 쓰려다 보니 사용량이 많이 줄어들기는 했어요. 만약에 손수건을 깜박하고 안 가져왔는데 손을 씻었으면 핸드타월 쓰기보다는 그냥 손을 털 던 지 그런 식으로 의식적으로 노력해봤어요. 둘째 주에는 일회용 컵 대신 텀블러 쓰기를 해보자 했는데, 처음부터 습관이 안 되다 보니까 텀블러를 두고 온다든지 그랬어요. 그래도 의식하면서 써보려고 했더니 일회용 컵 사용량도 이전보다는 줄었어요.
그림) 도전기 때 저는 이것저것 많이 시도해봤던 것 같아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정수기를 사서 써 본다든지. 인스턴트커피도 되게 많이 먹었거든요. 근데 모카포트 집에 있던 거 다시 꺼내 써봤는데 커피 맛이 훨씬 좋아지고 하니까 삶의 질도 훨씬 좋아진 느낌이에요. 우유팩 같은 거는 다 먹고 한살림 회원인 선배한테 갖다 줘요. 가져가면 휴지로 바꿔주는 데, 30개씩은 가져가고 그래야 되니까 선배한테 몰아주기로. 그 외에도 쓰레기통에 비닐봉지 씌워서 쓰잖아요. 그거 다 차면 묶어서 종량제 봉투에 넣는데, 그것도 낭비니까 바로 종량제 봉투를 쓰레기통에 씌워서 쓴다거나. 이메일 명세서 신청하기 같은 소소한 것들도 해봤어요.
습관을 바꾼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요.
복순) 정말 일회용 컵을 덜 쓰고 쓰레기를 더 만들지 않는 방법들을 내가 불편하거나 부담감을 갖거나 억압받는 기분으로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할 수 있을까. 그게 도전기를 하면서 계속 드는 고민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전기도 쉬운 건 아니지만,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을 찾아보고 실험해보고 얘기해볼 수 있고, 해보고 ‘망했어요’라는 말을 편안하게 해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한 가지 바람은 ‘망했어요’로 끝나지 않고 내가 체득하고 편안하게 내 감각 중에 하나가 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림) 물론 뜻밖의 이유로 실패한 것도 많았어요. 클렌징 오일이나 클렌징 폼, 바디용품들 다 플라스틱 병에 담겨있잖아요. 그래서 이거를 좀 해결하여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코코넛 오일이 만능이라는 거예요. 클렌징 오일로도 쓰고 두피 마사지로도 쓰고, 팩도 할 수 있다고. 그래서 오일을 하나 사서 클렌징을 해봤는데… 얼굴에 엄청 뭐가 나는 거예요.(웃음) 또 하나는, 청소도 물티슈로 다 닦고 버렸었는데, 걸레를 써보기로 한 거죠. 근데 걸레 빨기 너무 귀찮아서 청소를 안 하게 되더라고요.(또 웃음) 덕분에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것 중에 내가 앞으로 지속할 수 있는 것, 지속하지 못할 것, 하기 어려운 건 어떤 식으로 보완해서 할 수 있을까를 정리해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새벽) 제가 원래 물건들을 잘 못 버리는 편이기도 하거든요. 뭐든지 분명 필요한 때가 있다고 생각해서요. 버리고 나면 나중에 꼭 '아 그거 버리지 말걸' 이런 생각 들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인지 도전기 할 때는 괜히 뭐든 생겨도 안 버리고 나둬보면서 대체 이걸로 뭘 만들까를 고민하게 됐어요. 버리기보다는 업사이클링을 하게 된 거죠. 한번 쓴 일회용 컵에 염화칼슘 넣어서 제습제도 만들어보고, 페트병은 뒀다가 쌀이랑 잡곡류 보관용으로. 택배 상자에서 나온 스티로폼도 아직 그 자리 그대로 있어요. 언젠간 쓰겠지 하면서.
그럼 그건 쓰레기인가요, 아닌가요?
새벽) 아직 안 버렸으니까 쓰레기가 아니죠. (웃음)
얼마 전에 부산으로 제로웨이스트 여행 겸 개더링 하고 오셨잖아요.
그림) 원래는 먼저 서울 퀴어축제에 가서 시민들에게 저희 프로젝트도 알리고 제로웨이스트 운동도 알리는 캠페인을 하려고 했어요. 손수건도 나눠주려도 준비해 갔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망했어요. 그러고 나서 부산 여행을 다 같이 가서, 여행 일정 중에 부산 록 페스티벌에 참가해 개더링을 하게 됐죠.
개더링에서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복순) 페스티벌 현장에 돗자리 펴놓고, '제로웨이스트'라고 표시해두고, 손수건 무료로 드린다고 했어요. 많이들 오셔서 물어보시면 저희가 손수건 드리면서 설명을 해드리려고 했는데…
그림) 너무 밴드가 시끄러워가지고 말소리가 하나도 안 들렸다는…(웃음)
복순) 그래도 안 들리는 와중에 다들 집중해서 들어주려고 하셨어요. '이거 핸드타월 대신에 쓸 수 있는 손수건이고, 우리는 쓰레기 줄이고 덜 쓰는 프로젝트 하고 있는데, 블로그 주소가 있으니까 들어와서 보시라.' 이런 식으로 간단히 설명했어요. 재미있었던 건 락페였지만 무료 공연이다 보니 지역 주민들이 많이 오셔서 나이 대가 정말 다양했다는 거예요. 아줌마 아저씨들도 물어보고, 젊은 사람들도 물어보고. 어떤 분이 손수건을 받아가신 후에 소시지를 구워서 갖다 주신다거나, 과자를 챙겨주시기도 하고요.
새벽) 인상 깊었던 풍경은, 손수건을 받아간 아저씨가 어느새 그걸 목에 락페 아이템처럼 착용하고 저희 앞에서 흥겹게 춤을 추시더니, 나중에는 그분 지인들까지 데려오시더라고요.
복순) 제일 고마웠던 거는 대구에 사시는 분이 일부러 찾아와 주신 거예요. 그분은 제로웨이스트에 원래 관심이 있고, 이미 모임을 갖고 계시는 분이셨어요. 저희 블로그에도 종종 오시는데 부산 락페에 가서 캠페인 한다고 했더니 아이들이랑 같이 오신 거죠. 우리랑 만나겠다고요. 시간도 많이 없고 음악 소리가 너무 커서 많은 이야길 나누진 못했지만 정말 힘이 됐어요.
여행 중의 제로웨이스트는 어땠어요? 일상이 아닌 곳에서는 또 다른 어려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
그림) 굶었어요 그냥.(폭소) 해변에서 통닭 너무 먹고 싶은데 쓰레기 생길까 봐 못 먹고…
새벽) 닭강정이 먹고 싶었는데 포장이 돼서 판매하잖아요. 저희가 가져간 용기에 담아달라고 했더니 안된대요. 그래서 포기하고, 어묵을 샀어요. 어묵 살 때도 저희 용기에 담아 달라고 했더니, 이런 관광객 처음 봤다면서. 길거리 꽈배기 사 먹을 때도 ‘여기에 담아주세요’ 했더니 아주머니가 엄청 웃는 거예요. 저희 꽈배기를 튀기는 모습 옆에 락앤락 통이 올려져 있는 그 풍경도 웃겼어요. 아줌마가 꽈배기 담아주실 때도 막 웃고. 그래도 저는 그 경험이 좋았어요. 웃기고 조금 쑥스럽지만 이렇게라도 시도해볼 수 있었다는 게.
그림) 근데 저는… 정말 해변에서 통닭은 먹고 싶었어요.(폭소) 그래도 술은 포기할 수 없어서 맥주캔은 좀 나왔죠. 이건 정말 어쩔 수 없었어요.
소년) 여행하면 먹는 게 반 아닌가요. 와 대단하네요.
새벽) 맞아요, 여행하면 먹는 쓰레기가 가장 많이 나오는 데, 테이크아웃을 아예 안 하기로 하니까 식당 가서 먹은 거 외에는 거의 먹은 게 없는 여행이었죠. 식당에서 먹을 때도 종이로 포장되어 있는 젓가락을 주시면, 그거 반납하고 저희가 가져간 젓가락으로만 먹고. 나중에 세면대 가서 씻고 그랬어요. 그래도 이번 여행이 일상이 아닌 곳에서 쓰레기를 과연 얼마만큼 줄여볼 수 있을까. 그런 부분들을 알고 싶었고, 익숙하지 않은 동선에서 우리가 어떻게 대처할 수 있나 그런 걸 알고 싶었던 건데, 나름 성공한 것 같아요.
엄청 노력하셨네요. 그렇게 해보면서 앞으로도 이런 건 가능하겠다 싶은 거 있었나요?
그림) 굶으면 된다 뭐 이런 거?(웃음)
새벽) 이젠 평소에도 평일 점심시간에 나갈 때나 주말에 산책 나갈 때도 항상 에코백에 손수건과 텀블러 넣어서 나간다라는 게 규칙이라면 규칙이 됐거든요. 여행 갈 때도 텀블러와 손수건만이라도 항상 가방에 넣어두면 다른 쓰레기는 발생하더라도 일회용 컵 하나는 줄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복순) 저는 인상 깊었던 게 이번 여행 떠나기 전에 짐 챙기는 일이었어요. 그 전에는 아무런 생각이 없으니까 여행 가면 즉흥적으로 만드는 쓰레기가 엄청 많았는데, 이번에는 적어도 '여기 여기에서는 이런 걸 하고 이런 걸 쓰게 될 텐데, 뭐가 필요할까' 한번 생각해보고 '이런 걸 챙겨야겠다'라고 미리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일상에서 내가 오늘 이런 걸 챙기면 이런 쓰레기를 만들지 않을 수 있겠다고 생각해보면서 내 생활패턴을 한번 생각해보고 필요한 것들을 챙겨보는 것처럼, 여행에서도 반찬통, 텀블러, 젓가락 같은 거 챙기면서 내가 여행을 어떻게 할 건지 생각해볼 수 있게 하는 여행이었죠.
새벽) 근데 가방에 반 이상이 락앤락 통이었어...(웃음)
복순) 혹시 몰라서 큰 거 작은 거 다 챙겼거든요.
그림) 막 나중엔 새벽이 락앤락 통 버리고 가겠다 그래서 말렸어요.
새벽) 배낭여행 가면 짐 늘어나는 게 싫어서 엽서 하나도 사기 싫어하는 타입인데, 이건 뭐 가방을 아무리 밀어 넣어도 락앤락 때문에 꽉 차있고.
씽) 저도 요새 출근할 때 배낭을 이렇게 큰 거 매고 다니잖아요. 가방에 한 번도 꺼내지 않은 락앤락 통이 가득 차 있고.(웃음)
저도 얘길 들으면서 한번 해볼까 라고 상상을 해보는데, 제일 고민되는 게 짐이 늘어나는 거더라고요. 어깨가 되게 안 좋아서 그냥 평소 짐만 들고 다니는 것도 힘들어하는 편인데, 말씀하신 것처럼 텀블러 챙기고, 손수건 챙기고 락앤락 통까지 챙기다 보면 일단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림) 아니면 우리 비싼 캠핑 용품을 좀 살까요? 티타늄으로 된 컵이 있던데…. 티타늄 진짜 가벼워요! 진짜! 초경량!
이거 이거, 쓰레기를 줄이겠단 명목으로 자꾸 뭔가 사는 거 아닌가요?
새벽) 근데 이건 있어요. 오래 쓸 수 있는 하나를 제대로 사게 되는 거 같아요.
복순) 사실 싸거나 필요하면 그냥 그때그때 사고 버리잖아요. 근데 쓰레기 고민을 하면서 살 때도 신중해지고, 사고 나서도 좀 오래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자연스럽게 ‘좋은 소비’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된 거 같아요.
아예 쓰지 말자는 게 아니라, 소비를 하더라도 합리적이고 계획적으로 하게 되겠네요.
그림) 사실 ‘쓰레기 줄이기’라고 하면 정치적으로는 전혀 민감하지 않은 이슈 같잖아요. ‘쓰레기 줄여야 돼’라고 하면 그거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근데 이게 가만히 생각해보면 생활 습관뿐만 아니라 소비 습관을 완전히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작업이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굉장히 정치적일 수 있다는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비라는 행위는 너무 당연한 건데, 이거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는 것도 좋지만, 이걸 좀 더 확장해보아도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면 제로 웨이스트라는 것도 유통시스템이 어느 정도 받쳐줘야지 우리가 계속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 운동으로 확장해볼 필요도 있겠다 싶어요.
소년) 맞아요. 되게 자연스럽게 이어지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물건들은 일부러 사용 기한을 짧게 만들기도 한다고 하잖아요. 소비를 하기 위해서 쓰레기가 나오는 구조로 만드는 거죠. 그래서 더 사는 게 고민되고. 아까 계속 이것도 사고 저것도 사겠다고 얘기는 했지만, 사실 그게 소비를 더 하겠다는 거라기보다는, 좋고 오래 쓸 수 있는 걸로 교체하는 일인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여러분의 이야기를 종합해보면, 쓰레기를 줄이면 생활을 돌아보게 되고, 착한 소비를 하게 되고. 그리고 혹시 뭐 또 좋은 점이 있던가요?
그림) 인스턴트를 먹다가 이제 원두를 먹으니까, 지출은 오히려 더 많아진 셈일 수도 있긴 한데, 삶의 질은 확실히 좋아졌어요.
새벽) 약간의 절제가 생기죠. 자신 스스로에 대한 자제력과 패턴 변화. 일종의 자기 자신과 하는 게임이죠.
그림) 도덕적 만족감을 느끼잖아요. 아 나 이 정도는 했어. 근데 여기서 끝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작은 것부터 실천하자, 이런 말 많이 하잖아요. 근데 이게 말이 쉽지 사실은 익숙하지 않았던 뭔가를 매일 한다는 건 쉽지 않은데, '제로웨이스트'라는 걸로 일상에서 해볼 수 있는 데일리 프로젝트를 보여줬다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소년) 저도 그냥 한번 따라 해 본 거거든요. 구상하신 방법들이 좋았던 게 혼자서도 되게 간단하게 따라 할 수 있고, 하는 게 되게 재미있어 보인다는 거였어요.
씽) 제가 옆에서 뽐뿌질을 좀 했죠.
복순) 씽님이 관찰기를 너무 재밌게 올리시긴 했어요. 쓰레기 막 일부러 날려서 예술혼 담아서 사진 찍고.
소년) 맞아요. 말로는 뽐뿌질 절대 안 했는데, 옆에서 계속 뭔가 부스럭부스럭 거리면서 가방에서 뭔가 막 꺼내고. 이상한 사진을 올리는데 사람들이 댓글 달아주고. 그러니까 오, 재밌어 보이는데? 나도 하고 싶은데? 그렇게 된 거죠.
새벽) 보통 제로웨이스트 하면 사람들이 도전을 먼저 생각하는 거 같은데, 소년님이랑 씽님이 같이 하시는 거 보면서 오히려 ‘아 사람들이 관찰기에서 이렇게 재미와 흥미를 느낄 수 있겠구나’라는 걸 알게 돼서 놀라웠어요. 이런 게 재미구나 싶고.
이걸 정말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네요.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복순) 저도 이 프로젝트, 이 실험이 종료됐을 때 내 삶에서 지속할 수 있는 게 뭘까를 생각해봤어요. 지속하기 위해서 저한테는 재미와 의미가 되게 중요하거든요. 공익활동이 뭔가 계속해야만 하는 의무감이나 부채감이 아니라 스스로 좋고 재밌어서, 그래서 하는 방식으로 계속할 수 없을까 하는 그 고민이 있어요. 프로젝트가 끝나면 사실 "실험 종료, 끝!" 이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방식으로 변주할 수도 있고. 이건 아직 정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하고서 평가회의 한번 해보자 얘기했었거든요. 그때 그런 얘기들을 나눌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림) 일단은 블로그나 빠띠 같은 커뮤니티에는 축척된 데이터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유지를 할 건데, 이제 뭔가 자율적으로 운영을 해야겠죠. 최소한의 약속을 해서 한 달에 한 번은 자료를 모아서 올린다거나 하는 식으로 유지가 될 것 같고. 그러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으면 제안하고 또 같이 해보는 걸로, 지금은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씽) 저는 비록 도전기는 제대로 못 하고 있지만, 이미 텀블러랑 손수건 챙겨 다니는 것, 뭐 먹을 때도 웬만하면 포장음식 먹지 말고 가서 먹자라고 말하는 것 같은 변화가 생겼어요. 그리고 이렇게 또 누군가가 이 행동을 팔로워 하는 사람이 생기고 있는 게 좋아요. 계속 팔로워가 생겨나니까 그다음을 고민하게 되는 거고, 그 자체가 성과 아닌가 싶고.
맞아요. 한 명, 두 명 이렇게 팔로워가 생기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그림) 그럼 다단계로..?
소년) 다음에 지인 한 명씩 데리고 만날래요?
그림) 도전 3기 어떠세요?
저요? 저 벌써 3기 된 거예요? 아, 근데 저는 정말 생활 패턴을 고치기 어려운 타입이라, 자신이 없거든요. 마음의 여유도 좀 있어야 될 거 같고.
새벽) 뭔가를 준비하기 전에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될 것 같잖아요. 근데 그런 생각을 버려도 좋은 게, 하다가 실패해도 괜찮아요. 저희는 오히려 사례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했었어요. 실패한 사례들이 좀 있어서 왜 실패했는지도 얘기해보는 거죠. 바쁘면 바빠서 실패한 거고, 배고프면 먹어서 실패한 거고.
복순) 저도 자주 망했다고 하는데. 근데 사실 왜 실패했는지 얘기해보면, 시간이 없다거나 내가 내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거나 그래요. 그런 자신의 상태를 제로웨이스트를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는 거죠. 근데 그게 사실 나만의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잖아요. 구조적인 문제일 수 있으니까. 그런 것도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다음 만남은 이런 거 어때요? ‘변명의 모임’ 같은 거. 왜 실패했는지 열심히 그 이유를 찾아와서 실컷 변명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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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이혜민은 출판사 겸 기획사 ‘900km’의 에디터이자, 대표입니다. 누군가의 작은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우리 삶의 대안적인 방향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결혼행진>을 쓰고 펴냈습니다. facebook.com/900k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