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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emouse Nov 09. 2020

추억의 장점은 뭘까

그래서 뭐가 달라지지

한국 텔레비젼 방송을 보다가 아주 오래전 내가 대학교때 들었었고 유행이었던 노래와 가수를 보았다. 이수영이라는 가수였다. 이수영 외에도 그당시에 많은 가수들이 있었는데, 그 많은 가수들이 나오는 쇼들을 보고도 아무 생각없이 멍하니 보고 실없이 웃었는데, 이수영이라는 가수를 보았을때 두잔의 와인 때문이었는지 한시간이 넘도록 "그 아이"를 구글에서 또 나의 오래된 이메일에서 찾으려 너무나 애썼고 결국엔 찾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왜 때문인지 20년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수영이 처음 유명해지기 시작했을때였을것 같다. "그 아이"는 나에게 이수영을 아느냐고, 노래 진짜 좋다고, 요새 매일 듣고있다고 나에게 추천을 했었다. "그 아이" 가 나에게 추천했던 가수는 둘이었다. 하나는 이수영이었고 다른 하나는 Roxette 라는 팝 가수였다.


당혹스럽다 이런 순간에는. 미국으로 오고 나서부터 매일 매 시간이 바빴다. 20년전의 나는 미국으로 이사(?) 를 왔다. 딱 20주년이다. 그때는 정말이지 생각이 없이 왔다. 마냥 새로운 세상이 보고싶었고 무엇보다 부모님의 지나친 간섭과 관심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미국으로 갈 기회가 생겼었고 부모님은 단지 미국이라는 이유로, 또 당시 결혼을 약속한 사람과 식을 올리고 같이 가겠다는 말에 아무런 반대도 하지 않으셨다. 정말 솔직히는 부모님 없는 세상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도대체 세상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싶어하는 나를 단지 여자라고, 걱정된다고 발목에 족쇄를 채운듯이 아무것도 못하게 하시던 부모님이 참으로 답답하고 힘들었다. 그리고는 참 길고 고된 이민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니, 나는 한국에 살았어도 고되다고 생각했을것 같다. 인생은 원래 고되니까. 어디에 있든간에 20대부터 40대까지는 웬만하면 정신없고 바쁘고 고되고 배신도 당하고 추락도 하고 올라서기도 하고 그러는것 같다. 누구나 내가 겪은 일이 제일 드라마틱하고 힘들고 그렇지. 특히나 개인적으로는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힘들었던 이혼을 겪고 나서 나는 그래, 그래서, 정말 다 잊어버리고 있었다. 40 초반인데 나는 대학교 동기 이름도 잘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수영을 텔레비젼에서 보고 "그 아이" 생각이 났다.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무리 찾아도 어디서 뭘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미국에 오면서 이름이 바뀌고 소셜 네트워크에서의 이름도 다 바꿔버려서 "그 아이" 도 나를 찾을수는 없었겠지. 그런데 나도 못찾겠네. 찾고싶은 단 한명 "그 아이" 를.


대학교 1-2학년때까지 "그 아이"와 허물없이 참 친하게 지냈다. "그 아이" 가 제대를 하고 나왔을때, 나는 나와 헤어지느니 죽음을 택하겠다는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약속까지 하게 되었다. "그 아이"에게 직접 만나 청첩장을 주었을때 "그 아이"는 나보고 배신자라고 뒤통수치는 인간이라고 장난반으로 말하면서 그날 가지고 나온 자기 아빠 승용차로 남산으로 데리고가서 한국 떠나기전에 서울 실컷 보라고 구경을 시켜주고 또 드라이브 시켜주고 맛있는것도 사주고 하며 아쉬운 내색을 조금 해주었다. 나는 그때, 이자식이 의리가 있네, 역시 멋있구만 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에 오고 몇년이 지나 "그 아이"도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주가 달라서 만날수는 없었지만 통화를 가끔 했다. 정말 친구처럼 반가운 통화 들이었고 "그 아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했을때 진심으로 마음이 아팠고 슬퍼했다. 장례식에 참으로 가고 싶었으나 갈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한국에 갔을때 한번 만난적이 있었고 그 뒤로 는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 이유로 연락이 끊어졌다.


갑자기 텔레비젼에서 이수영이 나왔고 나는 이 모든 옛날 이야기들이 막무가내로 머리에 떠오르는것이 마치 감자기 머리위로 냉수가 폭포처럼 내리는 기분이었다. 나에게 그런 시절이 있었지. 그 옛날처럼 농담을 하고 싶고 술을 진탕 마시고 취해서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며 속에 있는 이야기 다 하고, 좋아하는 노래들을 듣고 따라부르고, 서로의 앞에서 토하고 다음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하며 서로를 놀리고 싶었다. 


한시간여 뒤에, 나는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라고 결론을 내렸다. 나는 당장 내일-월요일 아침부터 영혼까지 팔아야 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고, 나를 사랑하는 지금의 저사람과의 앞날이 기다리고 있으며, 나는 여자이고 "그 아이"는 남자라서, 나는 미국에 있고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우정따위 개나 줘버려야 하는 상황이 왔다. 아니 동성이었다고 한들,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게 뭐지? 내가 원하는건 그 실체가 아무것도 없쟎아.  대학생때의 나 자신을 그리워 하는것 뿐이겠지. 혼자 추억팔이하는것 뿐이지. 그것도 이십년만에. 그렇게 "그 아이"가 중요했다면 왜 연락을 놓쳤지? 나는 그냥 심심해서 "그 아이"를 떠올린 것일까. 도대체 추억이란 실체가 무엇이며 추억을 통해서 내가 결과적으로 얻고자 하는것은 무엇인가. 바빠서 놓쳐버린 친구라면 이제는 친구가 아니라 추억이 맞는거겠지. 이제와서 만난다고 한들 어색한 하루 만남이 다겠지.


"그 아이" 에게. 

추억을 어떻게 다루는지 아는것도 늙어가는 과정중의 하나일듯 하다. 흘려 보내는게 맞지 않나. 과거는 과거대로, 1995-6년의 한남동에서 호기롭게 큰소리치고 술냄새 풍기며 웃고 떠들던 우리 둘은 그때에 남아 있는걸로. 2020년의 나는 와인 두잔에 너를 떠올릴 만큼 술을 못마시고, 더이상 엉뚱하고 철없는 짓따위는 절대 하지 않으며, 모든 사람에게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고, 언제 어디서나 영혼까지 끌어모아 일을 하고, 한살이라도 젊을때 조기 은퇴를 할수 있을까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단다. 빈깡통같은 추억따위 이제 떠올리지 않겠다. 잘 지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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