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냥빚도 갚는다
속담에 그렇다고 한다. 말 한마디로 천냥빚을 갚는다고.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이라는 책은 이 속담을 길게 책 한권으로 풀어놓은것 같았다. 나는 내가 이 책을 좀 일찍 읽었더라면 인생을 덜 힘들게 살았겠다 라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나의 잘못을 고치고자 깨달아서가 아니다. 내 잘못이 아니었구나, 내가 맞는거였구나 라고 나 자신에 대한 인정을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은 자세히 쓰지 않겠다. 적어도 나에겐 평생에 성경 다음으로 단 하나 기억에 남는 자기계발서이니 혹 누군가 이 글을 읽는중에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한번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나는 상황상 미국에 있어서 영어로 된 원작을 읽었는데, 아무래도 오래전에 쓰여진 책이다 보니 문체가 좀 어렵고 예시로 든 상황도 요즘 시대에 딱히 맞진 않는다. 하지만 그런건 아무래도 다 곁가지일 뿐이고,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참 대단하니 읽어보실만 하고도 남는다.
나는 말싸움과 몸싸움을 싫어하고, 천성이 누군가와 직접적으로 대립하여 갈등이 생기는 것을 대단히 피곤해하고 싫어한다. 그러다 보니 어릴때부터 학용품 뺏기기를 비롯해 더 커서는 금전적인 손해도 봤고 내 시간을 아무렇게나 쓰려던 사람들도 많았으며, 아는 사람이나 직장 동료 때로는 친구들에게까지 이용을 당하거나 잘못을 덮어쓰기 일쑤였다. 지금은 나이가 들어 경험이 생기니 그럴 상황을 만들 사람을 내가 미리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가까이 두지 않는다. 사람이 늘 당하다보면 그쪽으로 본능이 발달하는지, 나 자신을 방어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내가 안타까워 던진 말들이겠지만 한국에서 자랐을때 어렸을때부터 내가 매우 자주 들은 말은 "가서 따져!" "너는 그걸 듣고 가만히 있니" "욕을 시원하게 해줬어야지" "이러이러하게 이야기했어야지 왜 참았어 "너는 참 순해" 같은 말들 이었다. 나는 이런 류의 말을 듣는게 참 싫었다. 가서 따지기가 너무 싫고, 그런 일이 있을때 전투태세를 하는것은 나에게 정말 힘든 일이었다. 같은 말이라도 쎄게 말을 못하고 늘 고분고분 좋은 말로 했고 그게 통하지 않으면 피하고자 애를 쓰는 쪽을 택했다. 상대가 아무리 무례하게 나와도 나는 받아치치 못했고 끝까지 예의를 지키며 할말을 하려고 했는데, 내가 무슨 대단한 성인군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겁이 났고, 다른 사람 앞에서 화를 내며 맞써 사우는게 나에겐 참 치욕스럽고 죽기보다 싫었다. 무엇보다 화를 내고 싸우는데에 나는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런 상상만으로 스스로에게 짜증이 너무 나서 견딜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곤 한다. 어차피 나는 그들을 이길수 없다는 체념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한번이라도 이용당하거나 나를 쉽게 봤던 상대에게는 맞서 싸우기 보다는 마음의 문을 빈틈없이 닫아서, 나의 작은 틈도 그런 사람들에겐 허락하지 않았다. 영어로는 passive-aggressive 라는 표현이 있던데, 이건 앞에서 당당히 공격하지 않고 말로써 은근히 뒤통수 칠때 쓰는 말이라 내 경우와 정확히 맞지는 않는것 같다.
다 커서 미국으로 오니 그런 일은 많이 줄었다. 다른 나라로 이사오니 나의 약함을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였다는것도 안도감을 주었다. 또 직장을 옮길수록, 또 더 좋은 조건으로 갈수록 나에게 덤비려고 하거나 이용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 어릴때는 사람들이 뒷일을 생각 안하고 막대하는듯 했는데, 사회생활을 하면 할수록 그렇게 막무가내인 사람은 많지 않다. 미국이라는 문화의 차이인건지는 잘 모르겠다. 어릴때는 한국에 있었고 늘 당하고 살았고, 좀 커서는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해본 적이 없기때문에, 이게 나이를 먹어서 사회로 들어오니 나아진 건지, 한국과 미국의 문화 차이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사람 사는것 어디나 비슷하다는 말처럼, 국적을 불문하고 그런 사람들은 꼭 있게 마련이다. 다만 이제는 드물 뿐이다.
나는 그냥 이렇게 살래. 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매니저가 된 후에도 팀원들에게 항상 좋은말로 했다. 듣기 싫은 말도 최대한 듣기 좋게 포장해서 했다. 잘하면 과하게 칭찬하고 잘못한 경우에는 사실만을 객관적으로 지적하고 책망하는 말은 일절 하지 않았다. 나와 정 반대의 성격의 보스를 만나 잔소리가 귀에 딱지가 앉게 들었다. 정확이 내가 뭐라고 팀원에게 말했냐고까지 물어보기도 했다. 너무 친절한 내가 탐탁지 않았나보다. 내 보스는 항상 책망하고 칭찬보다는 질책과 지적을 주로 하는 성격이며, 내가 어릴때부터 가장 피하고 싶어했던, 만만하면 막대하고 요구하기 전까지는 당연히 해줄것도 안해주는 스타일이다. 그가 내 보스라서 내가 피해의식때문에 더 과소평가 하는것은 아닌가 몇번을 객관적으로 생각해보려 했는데 포기했다. 지금 내가 주관적이라도 상관없는데 저사람은 그런 사람이다. 나는 저런 사람을 아주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회사 대표는 소시오패스 성향이 조금은 있어야 성공한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것 같은데, 그렇다면 저사람은 성공하겠구나.
어쩌다가 이 책 -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 - 을 읽게 되었다. 누군가에게는 자기계발서인데, 나에게는 그보다 먼저 너무 큰 위로였다. 자라오면서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내가 세상을 잘못 살고있다고 생각했다. "밑에 사람은 쪼아야 성과가 나오고, 나를 지적하는 상사에게는 요목조목 짚어가면서 반박해야 만만하게 안보고, 만만하고 친절하면 어딜 가든 이용이나 당하고, 화를 낼때는 내야 하며, 내 잘못이 아닌 일로 지적을 받을때는 발끈하며 책임을 다른이에게 확실히 전가해야 하고, 어디가서 잘못된 물건이나 서비스를 받으면 화를 내며 따져야 한다." 이것이 내가 자라면서 사람들이 나에게 했던 말들이고, 수십년을 살아오면서도 도저히 습득이 되지 않았던 덕목들이었고,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이 바보같고 겁쟁이라서 이렇게 쪼다처럼 살고있다고 생각했다. 아니 그냥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몰아갔기 때문에 그런가보다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가 맞다고 한다. 나에게 어릴때부터 심지어 우리 엄마까지도 그렇게 착하기만 하면 안된다고 그렇게 가르치려했던 그 모든 사람들이 다 틀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근거와 논리가 아주 정연하고 하여튼 나에겐 하나같이 다 맞는말 뿐이었다. 거기에 더해서 이 책은 맞서 싸우지 않고서도 사람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여러 예시를 들어가며 설명해 준다.
착하다는 말의 정의는 뭘까. 내가 생각하는 정의는 참을성이 많고 소심하며 지나치게 남을 생각하고 무엇보다 겁이 많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착하다. 이 책에서는 정확히 착한게 덕목이라기 보다는, 참을성이 많고 조심성있고 사려있게 의사소통을 하라는 말이다. 나는 착하다는 것에 대해 전혀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착하다는 말을 할때에는 항상 조심했는데, 그 말이 칭찬처럼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말은 소심한 겁쟁이이고 자기것 하나 챙길줄 모르는 맹탕이라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성공한 소통을 할 수 있고, 맞서 싸우는 성격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가지고 이룰 수 있으며 결국에는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을 할수 있다는 말이다.
책을 많이 읽는것이 딱히 인생의 도움이 되냐 하는 것에 회의가 드는 시대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많이는 아니지만 내가 읽었던 책들중에 인생에 정말 도움이 되었던 책은 1% 나 될라나 모르겠다. 그런데 나같은 성격의 사람이 이 책을 고등학교때 아니 대학교때라도 읽었었더라면 나는 좀 덜 힘들어했을텐데. 늦게라도 읽은게 잘한 일이다. 무지하게 옛날 분이고 이미 돌아가셨지만 데일 카네기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