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뭐죠?
엄마와 전화통화 했을 때, 엄마는 나에게 5년뒤 10년뒤 계획이 있냐고 물어 보셨고, 계획을 좀 세워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을 듣고 5년뒤의 계획을 세우는 내모습을 몇초간 그려보았고, 곧 그런 상상속의 나를 아주 신랄하게 비웃었다. 첫째로, 내가 계획을 세워서 정말 안맞는 사람과 얼렁뚱땅 결혼하고 (그때는 계획을 아주 많이, 그것도 부모님과 합력하여 세웠는데 돌아보니 그런 얼렁뚱땅이 없다) 몇년 뒤 감정이 바닥을 치면서 아무 계획없이 낭떨어지에서 추락하는 심정으로, 내일 죽어도 전혀 아쉬울것 없는 정신상태로 이혼을 하고, 그리고 그 이혼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살던 도시를 떠나고 전혀 기대없던 회사서 러브콜을 받고, 결국엔 오히려 감정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그 전보다 훨씬 낫다고 여기는 지금까지 이르게 된 지난 10년을 빠르게 스캔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번째로, 이 판데믹을 미리 계획해서 이럴 경우 이렇게 해야지 라고 대비를 해서 지금 그 계획대로 잘 살고있을 사람이 전 세계에 몇명이나 될까? 전 세계 소규모 사업체들이 상상못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친구들 몇몇이 회사에서 레이오프가 되고, 일자리는 줄어들고 하는 지금의 상황을 계획하고 대비했던 사람이 몇명이나 될지? 아무리 생각해도 5년, 10년 아니 1년뒤의 계획이라도 계획을 세운다는것은 의미없다고 생각했다. 재미로 앞날을 그려볼 수는 있겠으나 구지 장기 계획이라는 것에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아무런 이유를 모르겠다.
그리고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이제까지 내 인생이 계획대로 된 게 하나도 없어. 계획보다 잘되었거나 전혀 쌩뚱맞은 길을 가게 되었거나, 하여간 뭐가 되었든 5년, 10년 후 계획을 세우는것만큼 의미없는것이 또 있을까. 엄마는 나보다 인생을 오래 살았으면서 왜 그런 소리를 할까 라고 잠깐 답답해 했다가, 결국 엄마도 나보다 25년을 더 살았을 뿐이구나 하는것을 깨닫고 금방 생각을 고쳤다. 25년을 더 살았다고 해서 결코 현명해 지지 않는다. 됐다. 내가 엄마를 왜 판단하나, 결국 엄마의 그 오랜 젊음과 많았을 기회를 아주 당연하게 내가 바닥까지 다 빨아먹고 나서, 마치 내가 원래 잘나서 지금의 일과 생활을 영위하는거라고 착각하고 있는 꼴이면서, 어이없게도 엄마는 왜 그렇게 뭘 몰라 라고 싸가지없는 소리를 하니.
나와 약혼자는 계획대로라면 지난 5월초에 결혼식을 올리고 정식으로 부부 등록도 했어야 했다. 이 판데믹으로 모든것이 막판에서야 취소가 되었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결혼을 다시 한다는 것이 내 가슴을 답답하게 했다. 그리고 다시 그 결혼이라는 굴레, 제도권 안으로, 부모 형제 일가친척이 억지로 한 가족이 되어야 하는 그 어색함과 불편함을 다시 마주하는것이 싫었다. 다행인 것은 우리 가족 친지는 모두 한국에 살고 있는 토종 한국사람들이고, 약혼자의 일가친척 친지는 모두 토종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서로 자주 만날 일이 없으니 그나마 숨쉴 구멍은 있었는데도 나는 아무도 모르게 숨이 막혔다. 또 분위기나 남의 말에 떠밀려 얼렁뚱땅 결혼하는것은 아닐까 겁이 났다.
애초에 계획에 없었던 두번째 결혼이지만 나는 또 이 두번째 결혼을 계획해야 했다. 그리고 또 (한국 가족들로부터) 계획을 세우라는 압박을 받아야 했다. 예식부터 부부등록, 둘이 합쳐 집은 언제 사니, 아이는(사십이 넘은 이나이에!) 어떻게 할 꺼니 등등. 나는 정말이지 아무 계획이 없다. 다만 의지가 있을 뿐이다. 내 최선을 다해서 저 사람을 섬기고 존중하겠다는 의지. 저 사람 앞에서만큼은 이기적이 되지 않겠다는 의지. 매일 친절하겠다는 의지.
인생의 계획 같은것은 없다. 그리고 난 그게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묻지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