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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iemouse Aug 01. 2018

알래스카 크루즈여행

부모님과 6박 7일 풀타임으로 함께 하기 -.-

가족과 떨어져 혼자 외국생활을 오래 했다. 초반에는 부모님과 동생이 그리워서 울기도 많이 울었고 그럴수록 그저 열심히 해서 자리잡고 잘살자는 의지도 강해졌다. 그리고 십년이 넘어갈 즈음부터는 그 생활도 익숙해지고, 일상이 바빠서였는지 아니면 더이상 한국에 대한 미련이 사라져서 였는지, '어차피 인생 혼자사는거지, 가족이라해도 별수있나' 라는 생각에 그 사무치던 그리움도 무덤덤해졌다. 


그런데 17년째가 되고부터 약 일년여동안, 도대체 무슨 이유였는지 나는 부모님과 동생이 나오는 꿈을 거의 매일 꾸기 시작했다. 꿈의 내용은 늘 비슷했는데, 가족여행을 떠나거나 다같이 등산길을 산책하는 내용이었다. 꿈속의 부모님은 내가 고등학생시절즈음의 모습으로, 젊으셨고 늘 생기넘치셨다. 나는 그 꿈들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잠드는것이 기대가 될 정도였다. 막상 몇년에 한번씩 만나는 부모님은 많이 늙으셨는데, 꿈에서만큼은 40후반의 매력있고 생기있는 모습으로 만나뵐 수 있었다. 꿈에서 만나면 그리 반가우면서도, 막상 걱정도 조금 되었다. 도대체 왜 이런 꿈을 매일 꾸는 걸까. 지금이라도 나중에 후회하지말고 부모님과 시간을 더 보내라는 하나님의 배려인가. 


그리고 우연히 티브이에서 알래스카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전혀 사람 손이 닿지 않았던듯 보이는 자연에 금방 매료되었고, 한국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빙하라는것을 눈앞에서 마주할수 있다는 사실때문에 홀리듯 여행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나는 꼭 부모님과 저기를 가야겠다. 그것도 올해 안에. 



알래스카는 크루즈로 가는것이 편하긴 하다. 단 여름에만 갈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차를 빌리는것도 방법이지만, 일단 관광의 하일라이트인 빙하가 배나 헬기로만 접근이 가능하고, 운전과 네이게이션의 수고, 매번 숙소와 식당 검색 등의 번거로움을 한번에 줄일수 있다. 그리고 나는 한국에 사시는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 했기 때문에, 나 혼자 운전하고 길찾고 숙소, 식당까지 검색 하는것이 엄두가 나지를 않았다. 


부모님은 물론 매우 들뜨시고 좋아하셨다. 2018년 7월, 서서히 기록적인 폭염이 몰려올 무렵, 알래스카라는 단어만으로도 설레어 하시는 전화기너머의 부모님 목소리만큼 나를 기쁘게 하는것도 없었던 것 같다. 회사에서 거의 번아웃 상태로 일하던 나에게도 알래스카라는 단어가 주는 청량감은 정말 좋았다. 들뜬 마음으로 크루즈 여행사를 검색했는데, 운영하는 회사들이 웬만한 대기업 수준들이고 리뷰도 다들 나쁘진 않아서, 별4개정도 되는 선에서 가장 싼 가격이 나오는 사이트에서 덥썩 결제를 했다. 발코니가 딸린 방이라 가격은 좀 나갔지만 셋이서 한방을 쓰니 조금 가격을 낮출수 있었다...고 해도 예상보다 훨씬 비쌌다. ㅠ.ㅠ 다른 일정은 신경쓰지 않았고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빙하인 Glacier Bay National Park 이 일정에 포함된 노선으로 골랐다. 



배에 타고 나서부터는 일단 부모님과 꿈같이 일주일을 꼬박 같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설레었다. 꿈에 그리던 부모님이고, 부모님 역시 같은 마음으로, 1-2년에 한번 꼴로밖에 볼수 없는 딸과 일주일을 한방에서 자고 삼시세끼 같이 먹고 좋은데를 구경한다니 우리 셋은 그저 너무 설레고 웃음이 끊이지를 않았다.



알래스카 도시들(이라고 해도 아주 작은 마을이다)인 주노, 스캐그웨이, 케치칸 에서는 배에서 내려 하루 종일을 둘러보고 킹크랩과 연어도 맛보고, 시내투어에 죠인하기도 하고, 하이킹도 하고 대머리 독수리도 실컷 보았다. 그중에 최고는 아무래도 빙하였다.




날씨는 생각보다 따뜻해서 섭씨 17-8도 정도 되었다.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것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알래스카에는 대자연 이외엔 뭔가 익사이팅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냥 하루종일 대자연을 감상하고 숨쉬고 그리고 멍때리는것이 알래스카 크루즈의 가장 큰 매력이라면 매력인듯 하다. 그러다 보니 4일이 넘어가면서부터 나는 서서히 배안에 있는 것이 답답해지고 망망대해에서 배안에 무슨 일이 생겨도 도망을 못친다는(?) 아주 쓸데없는 생각에 지배당하면서 사실 짜증이 좀 나고 힘들었다. 폐쇄공포증 비슷한 것인지 잘 모르겠는데 나는 크루즈가 안맞는것 같다... 너무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은 그새 또 늙으셔서 자주 깜빡깜빡 하시고, 배 안이 너무 넓은데 전화는 안되니 약속장소, 시간에 못만나면 불안해지고 또 짜증이 났다... ㅠ.ㅠ 오랜만에 만난 부모님에게 짜증이라니, 이런 불효자식이 또 어디있나 자책하면서 마음을 많이 다스리려 애썼다.


Ketchikan, Alaska


Mendelhall Glacier, Alaska


Skagway, Alaska


마지막날 시애틀에 배가 도착했을때는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드디어 이 배에서 내리는구나. 휴. 다행이다. 그러나 우리 부모님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내리기 싫다고 말하면서 아쉬워했다. 또 나의 못된 성격탓인가, 나만 불편했구나... 크루즈는 우리 부모님을 포함하여 70퍼센트정도는 은퇴한 듯 보이는 최소 60세 이상의 분들이 많았다. 나는 입버릇처럼 일찍 은퇴하는것이 꿈이라고 말해왔는데, 이번 크루즈 여행이 내 생각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은퇴한 분들의 삶이, 그들의 나이를 떠나서, 그냥 어딘가 굉장히 심심해 보이고 그리 신나 보이지가 않았다. 그것은 정말로 그들의 나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냥 아무 자극도 스트레스도 없는 삶이 딱히 백퍼센트 행복하지는 않구나 라고 느꼈다. 


Victoria, Canada


Gum Wall, Seattle


알래스카에서 돌아 와서도 부모님은 일주일여 동안 나와 함께 머물다가 한국으로 가셨는데, 그 일중일 동안에도 난 두어번 더 부모님을 혼내고(ㅠ.ㅠ) 짜증내고 그리고 헤어짐이 아쉬워서 잠자리에 누운 뒤 한시간 여를 엉엉 울었다. 퉁퉁 부은 눈으로 공항에 가서도 그냥 드라이브웨이에 내려드릴테니 알아서 티켓팅 하시라고 했던게 나다... 공항이 익숙하지 않아서 티켓팅까지 해주고 가라는 말씀을 듣고서 주차장에 주차하고 티켓팅 도와드리고 그리고 들어가시는것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지막까지 뭐 하나 더 사주고 갈까, 반찬 뭐 해놓고 갈까, 결국 뭐 하나 더 해줄까 고민만 하시다가 가신 부모님이다. 휴. 내 이 성질머리 어떡할까. 결국 다 필요없다고 말하는 딸의 말에 그저 노란 장미 사다가 내 식탁에 올려 놓고 가셨다. 오늘도 장미 보면서 밥먹다가 눈시울이 붉어져 목 메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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