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그렇게 이야기하셔서 좋아지는게 뭐죠
나는 부모님과 꽤 멀리 떨어져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비행기로 10-12시간 거리에 있다. 일주일에 한번 부모님께 전화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 적도 있다. 아니 지금도 사실 기다려진다.
"니가 지금보다 더 잘되리라는 보장이 어디있냐, 지금이 최고 잘나가는 시절이 아니냐, 부지런히 돈 모아야지. 이제 앞으로는 내리막일텐데. 집이라도 있어야 그냥저냥 먹고는 살꺼 아니냐. 이제 나이들면 주변에 누가 남겠니. 젊을때나 주변에 사람이 모이고 같이 놀자고들 하는거지 혼자 늙으면 누가 옆에 있겠나."
"남자는 누구든지 나이먹으면 젊은 여자를 좋아하게 되어있는데, 그렇게 연하 남자친구 사귀다가 그애가 나중에 나이먹어서 마음 변하면 어쩔려고하니. 사람이 다 그런거야. 누구든지 자기가 나이먹어보면 젊은 상대가 이뻐보이고 좋아보이지, 지보다 늙은 여자를 좋아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줄 아니."
빡센 회사업무중에 금요일 오후 세시. 한국 시간으로 토요일 아침 일곱시. 나는 그 시간이 참 좋다. 바쁜일도 거의 끝나가고 이제 슬슬 퇴근과 주말로 향해가는 시간. 그 시간에 나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께 전화를 한다. 70줄에 접어드신 부모님은 토요일 아침 내 전화를 많이 기다리신다. 전화를 받을때부터 "아이고, 딸이 전화했어!" 라시며 반색을 하신다. 미주알 고주알 서로 한주간 있었던 이야기 주거니 받거니, 하하 호호 웃고 떠들고 삼십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만큼 반갑고 좋은 시간이다. 부모님이 걱정을 앞세운 부정적인 말들을 쏟아내시기 전까지는 그렇다.
나는 나이에 상관없이 늘 배우고 싶어하고, 어떻게든 한발 앞으로 전진하는 편이고, 그러기 위해서 나름 치열하게 살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40에 접어든 내가 지금이 내 인생의 정점이고 앞으로는 하락할꺼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었다. 나는 아직도 배울것이 너무 많고 올라가야할 산이 아직 있다. 나는 무슨 조직의 대표도 아니고 백만불짜리 연봉을 받지도 않는다. 내 인생의 정점이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될수 있겠나. 그리고 나는 한번도 엄마 말처럼 "그냥 저냥 먹고는 사는" 그런 인생을 꿈꾸어 본 적이 없다. 먹고 사는 문제는 내가 생각할 필요조차 없었던 부수적인 것이고, 나는 아직도 내 직업에 대해서는 더 배우고 더 잘하고 싶은 것이다.
이런 내 꿈이 그렇게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것은 야망이라고도 불릴만한 사이즈도 아니다. 그냥 나의 일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고 싶어서 매일을 발버둥치는 사람일 뿐이다. 이런 나의 소박한 직장인 또는 기능인(?)으로써의 꿈이 왜 나를 낳고 기르신 엄마에게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지며, 지금의 내가 최대치라는 평가를 하시는 걸까. 도대체 그런 생각을 하시는 배경이나 이유가 무엇일까.
엄마에게 물었을때 엄마는 "인생이 그렇게 마음먹은대로 안되니까, 걱정되니까 그렇지." 라고 대답하셨다. 명치가 답답해져왔다. 응, 인생은 마음먹은대로 안되고, 노력한대로 되는게 인생인거같아. 나는 그저 마음을 먹는게 아니고 노력하는 중인거야. 걱정을 한다면 더 응원을 하고 긍정적인 마음의 지원을 해주시는것은 어떨까. 그 편이 훨씬 나에게 도움이 될텐데.
내 커리어에 대해 '나는 노력한다'라는 방어를 했을때, 엄마는 또하나의 공격을 날리셨다. 나이어린 남자친구 공격이었다. 남자친구나 결혼은 과연 노력이라는 것만으로는 모두 이룰 수 없는 것이니까. 사람은 '다 그렇다' 라고 아예 못을 박고 시작하실때에는 뭐라고 반박할 말이 생각이 안나면서 너무나 서운했다. 이렇게 딸의 마음을 모르실까. 이제 겨우 제대로 된 사람 만났는데, 진심으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찬물을 시원하게 들이 부으실까.
딸이 멀리 있어 걱정이 되니 최악의 시나리오가 생각이 나고, 그러다 보니 그 최악의 시나리오를 내가 방어할수 있도록 나에게 이야기해주어야 겠다는 마음이신것 같다. 그리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이고 늘 그자리에 있어주시는 사랑스러운 우리 엄마가 이럴때는 정말 얄밉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엄마가 다 틀렸다는것을 머지않아 다 증명해 보일꺼다.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꼭 증명해 보일 것이다. 아마도 엄마는 이걸 원한 것일까. 그렇다면 이것은 엄마의 큰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