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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글씨 Dec 28. 2020

'실패'를 '실패'하는 것을 '실패'하는 일

거절에 대한 담담함을 가지는 것

면접에서 연이은 탈락은 서류 전형 탈락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다. 물론 서류에서 줄줄이 탈락할 때는 당연히 서류라도 붙어보자, 면접이라도 한번 가보자 하는 마음이지만 막상 상황이 이렇게 되면 차라리 서류에서 떨어지면 좋을 텐데라는 어이없는 생각이 든다. 면접도 못 갔는데 이제 서류는 붙나 보다 하는 희망적인 마음은 잠시뿐이다.


사실상 취업의 모든 과정은 거절에 무뎌지는 절차 같다. 간절히 바라 왔고 애써왔던 무엇에 대하여 단호히 네 자리는 없다는 통보가 하루에도 몇 번씩 들려온다. 거절의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스스로 찾아 나서기를 시작한다. 같은 목표를 바라보는 사람들과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나의 부족한 부분을 찾고 또 찾는다. 비교 끝에 취업 준비생이 몇십만 명에 달하는 얼어붙은 취업 시장에서 경쟁력을 찾아내기 어렵겠다는 결론이 내려진다. 가끔은 차근차근 준비해서 끝까지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지만, 연이은 불합격 통보가 이어질 때는 해봤자 되긴 될까 하는 부정적인 감정만 커진다. 거절에 대한 타격감이 반복될수록 불합격이라는 단어가 당연스러워지고, 처음만큼 슬프지 않게 된다. 그렇게 거절에 담담해진다.


 한층 더 성숙한 인간이 되어 '나랑 좀 안 맞는 자리였어, 나와 더 잘 맞는 곳을 찾을 수 있을 거야!' 하는 종류의 담담함이 아니다. 불합격 통보에 비교적 담담해진 것은 애초에 합격할 거라는 기대조차 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간절해야 된다지만, 모든 지원에 온 마음을 쏟아 기대를 하게 되면 탈락했을 때의 타격감이 다음 준비를 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왜 떨어졌지, 역시 ~게 너무 부족했나', '취업을 할 수는 있을까'라는 도돌이표만 반복되고, 이런 생각이 이어지면 결국 어느 곳에도 지원하고 싶어 지지 않는다. '이번에는 되겠지'라는 다짐은 '여기라고 되겠어'로 변모한다. 그래도 지원을 안 할 수는 없으니 꾸역꾸역 자기소개서를 써낸다. 마음 한편에는 합격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강렬하지만 겉으로는 티 내지 않는다. 내가 나에게 자존심을 부리는 것이다. 떨어져도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말이다. 방어적인 태도라고 해도 별 수 없다. 그래야 다시 다음을 준비할 수 있다. 


자존감은 이미 바닥나 있다. 서류 탈락, 인적성 탈락, 면접 탈락을 해결하기 위해 자기소개서나 면접 답변을 뜯어고치다 보면 짧디 짧은 내 인생과 경력에 대해 뒤돌아 볼 수밖에 없다. 그럴 때는 내가 정말 하고 싶어서 마음을 걸었던 일들이 다 실패 같이 느껴진다. 인생의 목표가 오로지 취업 하나였던 것도 아닌데, 취업과 상관없는 일을 하느라 허송세월을 보낸 것만 같다.  

 그 쯤의 나는 나의 세상만 멈춰있는 것 같았다. 대학원을 다니다 다른 일을 찾겠다며 자퇴를 한 친구도, 직장을 다니다 전혀 다른 분야로 이직을 하겠다며 퇴직을 한 친구도 모두 자기 자리를 찾아 움직이는 것 같은데 나만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시도하는 모든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를 않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이 밉고 마음은 삐뚤어진다.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내가 제일 밉다. 모든 일이 후회되고 실패같이 느껴진다.



 사실상 취업을 하기 전에 딱히 실패라고 이름 붙일 일들이 없었다. 물론 사회적 시선에서 본다면 명문대를 졸업하지 않아 대입 실패로 보는 사람도 있고, 작게나마 책방 운영에 뛰어들었다 결국 문을 닫았으니 사업실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뭔가 실패라고 하면 어쩐지 너무나 거창하고 담대한 목표와 도전정신이 뒷받침되어야만 할 것 같다. 무일푼으로 세계일주를 하던 중 갑자기 배가 난파되어 무인도에 떠밀려 세계일주는 못했지만 어찌어찌 살아 돌아왔다거나, 히말라야 등반을 하던 중 거센 눈보라에 3일간 조난을 당해 정상까지 등반은 못했지만 무사히 하산을 했다는 등의 어마 무시한 도전을 하고 현실에서 일어날 수도 없을 것 같은 어떤 풍파를 만나 결국 해내지는 못했지만 그 안에서 소중함을 배웠다는 그런 일들에만 실패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사실상 실패도 아닌 일인데 말이다.


  돌이켜보면 '실패'를 두려워했다. 실패라고 이름 붙이고 싶지 않았다. 사소한 어떤 것일지라도 실패는 부정적인 것이고, 실패했단 사실이 그 외 모든 부분까지 실패라고 결정 내리는 줄 알았다. 취업 준비를 시작할 때의 계속되는 거절에 순식간에 작아져 버린 것도 그 때문이다. 불합격이 실패를 대신하는 말인 줄 알았다.

 실패의 사전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실패(명사) :일을 잘못하여 뜻한 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그르침.] 뜻한 대로 되지 않는 일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일어난다. 오늘 아침에도 알람을 한 번에 듣고 일어나기에 실패했다.  


 누군가는 실패가 아니라 경험이라고 한다. 정말 멋진 말이다. 도전했기에 배울 수 있었던 경험이 있다. 나는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다. 그렇지만 실패는 그냥 실패다. 실패가 뭐 어때서. 일이 뜻대로 안 풀릴 수도 있지. 하다가 그만둘 수도 있지. 그냥 좀 천천히 갈 수도 있지. 거창하지 않은 일에도 어쩌다 실패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실패에 너무도 박하다.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실패했던 경험을 묻는 곳은 너무 많아서 도대체 어떤 답을 써내야 할지 모르겠다. 세계일주 경험 정도는 있어야 그럴듯한 실패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나는 겨우 컴퓨터활용능력 필기시험에 5번 떨어졌다는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다. 그렇지만 실패했었다고 이야기라도 하려면 꽤나 도전정신이 있어 보이는 일에 도전한 뒤에 실패하고 어떻게든 그 안에서 배운 점을 찾아 근사한 경험으로 포장해야 한다.


나는 여전히 실패가 두렵다. 실패라고 이름 붙이기 망설여진다. 하지만 실패할 수 있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숨을 참고 건너는 혼자만의 게임에서도 숨 참기를 해내면 성공이라고 부른다. 사소한 성취를 성공이라 하듯이 작은 일에도 실패는 있다. 실패는 실패일 뿐, 매몰되지 않으면 된다. 거절당하면 다시 또 문을 두드리면 된다. 실패는 실패고 거절은 거절이고 그뿐이다. 나는 그냥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면 된다. 지긋지긋하고 무섭고 귀찮고 무기력하지만 하면 또 어찌어찌 된다. 이렇게 계속해서 어찌어찌 되는 건 내 개인으로서는 무인도에서 살아 돌아온 경험만큼이나 귀하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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