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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Apr 14. 2024

조문 답례글

        

우리나라에서 관혼상제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4가지 의례이다. 그중에 관례(冠禮)는 지금으로 치면 성인식에 해당하는데 의미가 다소 퇴색된 면이 있고, 제례(祭禮)도 점차로 의미가 옅어지고 있지만 결혼(혼례·婚禮)과 상례(喪禮)만은 아직도 중요한 의미로 남아 있다.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명이 있는 것은 언젠가 그 수명이 다하기 마련이다. 당연히 이별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알지만, 그래도 막상 일을 겪는 사람에게는 크나큰 슬픔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정서에서는 결혼은 어쩌다 사정이 있어 못 가는 경우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지만 조문해야 하는 경우라면 가능하면 참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생활의 일정과 생사의 일정은 조율이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지라 부득이하게 조문을 못하고 결례를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아무튼 모든 상례 절차가 끝날 즈음, 상주는 문상객에게 문상에 대한 감사의 글을 적어 문자나 카톡을 보낸다. 오래전에는 편지로 부고를 알리고 당연히 편지로 조문에 대한 답례 편지를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문자나 카톡으로 보내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물론 가까운 어른들은 직접 찾아뵙거나 전화로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그 내용도 상조회사의 모범 문안을 반영해서 대체로 비슷비슷한 내용으로 온다. 그 내용에는 조문과 위로 덕분에 큰일을 잘 치렀다는 감사의 말씀과 일일이 찾아뵙지 못한 송구스러움, 그리고 집안 대소사에 연락을 주시면 보은 하겠다는 이야기 등이 포함된다. 요즘에는 색다른 글을 위해 AI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아주 기억나는 글도 있다. 그 글에는 단순히 문상에 대한 감사의 말과 상투적인 내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고인과의 추억과 애틋한 사연이 알알이 맺혀 있었다. 부친상을 당하신 분은 아버님과의 추억과 어릴 적 가르침에 대해서, 장인(빙부)상을 겪으신 분은 일찍 여읜 아버님을 대신해서 아버님처럼 모셨던 장인어른에 대한 기억에 대해서, 장모님(빙모)상을 치르신 분은 사회생활로 바쁘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장모님이 아이들 뒷바라지며, 집을 장만할 때 도움을 주었던 추억 등을 진솔하게 써서 보내왔다. 그곳에는 고인에 대한 추억과 함께 앞으로 함께 하지 못하는 아쉬움과 더 잘해드리지 못한 회한과 그리움이 가득 묻어 있어 공감을 자아낸다. 고인과의 추억을 통해서 그리움과 아쉬움에 대한 공감이 감은 물론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여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하게 한다.          

'반중 조홍감이 고와도 보이나다...'로 시작하는 조선시대 문인 박인로가 그의 시조에서, 맛있게 익은 감을 보면서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지만, 가져다 드릴 부모가 안 계신 것을 아쉬워하였듯이, 내 복이 적어 이제는 양쪽 부모님께서 모두 이 세상에 계시지 않고 아련한 기억만 남아 있으니 아쉽다. 그래서 그런지 사촌 동기들 카톡방에 돌아가신 분들의 기일이 되면 고인과의 기억이나 얽힌 이야기를 적어 올리며 두런두런 넋두리를 하게 된다. 얼마 전 숙모님이 타계를 하셔서 연락이 온 것을 계기로 상념에 젖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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