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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한 May 12. 2024

인구문제에 대한 생각(4)

- 우리의 딸들에게 

     

지나온 세월 속에서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발명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조사(선정) 기관에 따라서도 결과가 다르지만 그것 중에는 이외의 것도 있다. 피임 도구, 콘돔도 그중의 하나다.      

19세기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도 고무 콘돔을 '19세기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의 자세한 배경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기구들이 단순하게 쾌락 차원이 아니라, 여성의 인권 차원에서는 큰 의미가 있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콘돔 발명으로 인해 여성이 많은 자녀를 출산하고 육아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전기의 힘에 의해 세탁기가 개량되면서 가사노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빨래하는 것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처럼, 콘돔은 여성의 역할에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여성은 불과 백 년, 아니 수십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종족을 보존하고 집안일을 책임지는 역할의 비중이 매우 컸다.     

우리나라 경제 발전사를 보면 형제, 자매 중에 장남에게 대부분의 혜택이 돌아가던 시절이 있었다. 한정된 자원을 활용하여 집안을 일으키려는 생각이 장남 또는 똑똑한 아들에게 우선적으로 투자해서 투자 효과를 보려는 행동으로 이어졌다. 당연히 다른 자식들, 특히 딸들에게는 양보의 미덕이 당연 시 되었다. 나아가 오빠 또는 똑똑한 동생을 위한 희생도 필요했다. 이른 나이에 집을 나가서 돈을 벌어 집안에 보태야 하는 것이 당시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직장에서도 남성 위주의 우대, 승진 문화가 있었다. 임신한 여성에게 퇴사는 당연했고, 집안을 책임진 남성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는 것은 사회적인 묵계였다.      

여성의 이러한 상황은 결혼 후에 모든 꿈을 포기하고 집안에 남더라도 달라지지 않았다. 남편도 돈을 벌기 위해 애를 써야 했지만 여성에게도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자식으로서 열심히 기대에 부응해야 하는 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잘 살기’ 위해서 정신없이 내달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신없이 바쁠 때는 몰랐지만 한참 뒤에 생각하니 허전함이 남았다. 그리고 부모님은 말없이 세상을 떠났고, 개인화된 가족은 제 갈 길로 갔다.      

이제 세상이 변했다. 아들이 중요한 시대에서, 딸이 더 중요하다는 세상으로(이것도 기존 세대의 입장에서 딸이 더 도움이 된다는 뜻으로 보인다), 딸을 낳으면 200점이라는 세상에서, 자식도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라는 세상으로, 아니 자식보다는 내 삶이 더 중요하다는 세상으로, 끊임없이 바뀌고 있다. 이것은 결국 구세대의 관념에 대해 반해서 나온 것이다.     

세상은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는 것을 존중한다. 그런데 그 가치는 누구나 인정하는 것에서도 나오지만, 인정받지 못하고 의미를 부여받지 못한 것에서도 나온다. 가문이 중요하고, 가문을 위해 아들과 돈과 경제적 안정이 우선시했던 시대는 지나갔다. 가상의 것이 대접받는 세상에서는 인간 그 자체가 대접받을 수 없다. 가족도 마찬가지다. 당연히 미래보다는 현재의 자신을 끌어안게 된다. 여성은 그 맨 앞에 있던 희생자다.      

유리천장도 하나의 강요된 문화 잔상이다.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오랫동안 유지했던 기득권, 남성우월주의와 가문우선주의는 이제 내려놔야 한다. 아니 더 나아가 앞선 이들의 희생에 대해 모두가 인정하고 반성해야 한다. 이것은 오랫동안 머뭇거린 주제다. 그러나 매듭짓지 않으면 나아가기 어렵다. 이제는 이야기해야 한다. 그동안의 희생에 대해서 솔직하게 인정하고 이제라도 올바른 방향을 잡아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적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다. 여성이 있는 곳에 남성이 있기 때문이다. 인구문제의 근원에 여성이 있다.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우리가 걷어차야할 것은 남성주의, 권위주의, 독재주의뿐만이 아니다. 독단적인 신념의 강요가 결국 우리 사회를 편향적으로 몰고 간다. 이러한 편향적인 움직임은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구동력을 낮추고 우리로 하여금 제자리를 맴돌게 한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당연하지 못했던 그것에 있다.     

“딸의 꿈에는 나타나지 못했던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의 꿈에 나타났다. 그리고는 딸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네 누나가 있어 고마웠단다. 네가 그렇게 된 것도 집안이 잘된 것도 모두 누나 덕분이란다. 그런데 누나에겐 정작 고맙다는 얘기를 못했구나. 차마 하지 못한 얘기를 네가 전해 주려무나. 염치없지만 이제라도 고맙다는 얘길 하고 싶구나. 꼭 전해 줘라.’ 구천을 맴돌던 아버지의 말씀은 오늘 하얗게 센 머리가 되어 딸의 머리에 내려앉아 있다.”      

인구문제는 마음의 문제가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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