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
우린 때론 '편의'를 위해
수십수천 개의 색깔과 특징을 담은 어떤 것에 대한 해석을
단 한두 단어, 혹은 한두 문장으로 정의 내리려 한다.
이런 행위를 통해 우린 기억하기 쉬워지고
그것에 대처할 방법을 마련할 시간을 얻게 되지만
말 그대로 '편의'를 위한 방편인 만큼
그 손쉬움에 취해 본질을 잊어버릴 때도 있다.
한두 단어로 정의 내려진 어떤 개념과 관념의 결합체들은
누구에게나 그 단어가 품은 모든 의미가 전달되거나 이해되기 어려우며
그 말을 내뱉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정의 내려버린 어떤 '개념'을 지칭하는 그 단어에 대해
결국 각자의 또 다른 해석을 통해 다시금 정의 내린다.
이런 서로의 차이는 누구의 탓도 아니고,
사실 어쩌면 그런 격차조차 감안하며 표현해야 할지도 모른다.
결국 이것은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을 바라는 우리에게 '존중' 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다가온다.
이 존중은 사람별로, 상황별로, 시간별로 달라지기 때문에 누구도 숙련돼있지 않다.
그렇기에 우린 가끔 이 익숙하지 않은 녀석들이 만들어내는 마찰에 힘들기도 하고,
우릴 위축되게 만들어 점점 그런 마찰이 없는 비슷한 사람을 찾게 된다.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남을 더 존중하기 위해
우린 또다시 '편의'를 사용한다.
우린 이 고마운 '편의'를 통한 끝없는 경험의 굴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녀석은 가끔 공격적이 되어 나를 좌절시키기도,
감당키 어려울 정도로 나를 북돋아주는 잊지 못할 녀석이 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건 누군가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 어지는일.
어쩌면 이 녀석은
우리 마음속에선 그 무엇보다도 더 잘 활용하고 간직해야 하지만
내뱉기엔 껄끄러운 그런 녀석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