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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Nov 18. 2022

산책이라도 안전하게 하고 싶어!

#꿈이라도 끔찍한 .. #현실에서도 다르지 않아 


집 근처 금강공원에서 산책하다 숲 속에 있는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을 열고 나오는데 문 앞에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간이 철렁 내려앉았다. 

남자는 내가 나가려는 것을 막으며 나를 다시 화장실로 들이밀려고 했다. 

공포에 악.. 소리도 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새끼가 내 털끝 하나 못 건드리게 해야 한다는 의지로 

온몸에 있는 힘을 모두 모아 소리쳤다. 


"아아아아.......... 악!!!"


내 비명에 놀라 잠이 깼다. 

등이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오.. 하느님..

꿈이어서 너무 다행스럽고 감사했지만, 새벽 4시 30분의 공포극으로  다시 잠에 들 수 없었다. 

너무 현실 같았기 때문이다. 

꿈에 나온 그 새끼.. 현실 속에 분명 있을 놈이다.


송사마가 일이 있어 서울에 갔기에 퇴근 후 혼자 온천천에 걸으러 나갔다.

5시 30분이면 이미 어둑하다.

500ml 물 한 병을 들고 부지런히 온천천을 향해 걸었다.

온천천으로 가려면 럭키 아파트를 지나 동래 전철역 지하도를 건너야 한다.

지하철 역과 연결된 지하도가 아닌, 대로를 건너기 위한 아주 오래된 지하도라 얼굴 가리고 무릎 꿇은 채 돈을 구걸하는 걸인이 아직도 있어 부산 도심임에도 조금 그로테스크한 느낌이 드는 곳이다. 


온천천엔 저녁 운동하러 온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 무리에 끼어 부지런히 걸었다. 

이 생각 저 생각을 넘나들며 걸으니 어느새 내가 정한 반환점이 나온다. 여기서 돌아 다시 왔던 길로 빨리 걸었다.

다시 동래 전철역 지하도.. 

지하도 계단에서 한 남자가 비틀비틀 걷고 있었다.

왠지 느낌이 쎄했다. 

후드를 쓰고 마스크를 눈 밑까지 끌어올린 후 그 취객을 앞질러 가려고 재빨리 걸었다.

순간 남자는 내가 예상한 반대 방향으로 휙 돌았다. 

그리고 내 옆에 바짝 다가섰다. 

내 눈을 쳐다보며 역겨운 목소리를 내었다.


"오 니 이뿌네"


남자가 나를 잡아 안으려는 순간 본능적으로 몸을 구부리고 막 뛰었다. 

그 시키, 내 뒤를 몇 발짝 따라 뛰며 뭐라 욕을 했다. 

나는 숨도 안 쉬고 달렸다.

나는 뇌동맥류 있는 여자.. 뛰면 안 되는데 막 뛰었다.

그러자 새벽에 꾼 꿈이 다시 생각났다.

'뭐야, 꿈이 예지몽이었나?'


이 나이에도 모르는 남자의 예상치 못한 성추행을 두려워하며 살아야 하다니.. 좀 전의 공포는 분노로 바뀌었다.

아무 소리도 못 낸 채 취객으로부터 도망쳐 집까지 뛰어온 나에게 화가 났다. 

욕이라도 할걸 말이다.

다음 날 집에 온 남편에게 말해주니 몹시 흥분하며 욕을 했다.


- 이 미친 소새끼가!

- 잉? 왜 소새끼야? 이럴 땐 개새끼라고 하지 않나? 순서상 소새끼는 그다음이지. 

- 어, 오랜만에 욕해서 그런지 소새끼가 먼저 나오네. 

- 아, 김 빠지게.. 다시 제대로 욕 해봐봐..


다소 임팩트 없는 욕일지라도 같이 흥분하고 욕해줘서 기분이 좀 나아졌지만, 여자가 이런 공포에서 자유로워지는 세상은 도대체 언제 올 것인가.. 올 수나 있을까.

품위 있고 안전한 세상은 인류가 지구상에 사는 동안에는 없을 것 같다. 


*p.s :집 밑에 우리가 두어 번 간 소갈비 집 이름이 '소세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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