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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의 노래 Aug 26. 2023

꿈같은 네덜란드 여행  1

13일간의 네덜란드 여행, 그리고 아일랜드

긴 꿈을 꾼 것 같기도 하고, 아주 짧은 꿈을 꾼 것 같기도 한 네덜란드 여행에 대하여..


나되사

나에겐 꽤 긴 호흡을 함께 하고 있는 6인 멤버 모임이 있다.

우리는 지난 13년여의 세월 동안 잡음 하나, 갈등 한 자국 없었다.

교직생활 중 가장 힘들었을 때 도피성으로 지원한 연수에서 만난 친구들인데 다 나이가 다르다.

누구 하나 언니, 동생 하지 않고 우린 그저 이름을 부르는 친구다.

이 모임의 특징이자 장점은 서로 사생활 깊숙한 질문이나 조언, 충고 등은 하지 않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적당한 스페이스를 지키고 지켜준다.

어쩌면 이런 약간의 거리 두기가 우리를 더욱 공고하게 받쳐주는 것 같다.

모임 이름은 ‘나이 되는 사람들의 모임’..

바로 '나되사'이다.

아주 단순한 이름 짓기이지만 나이 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나 매너를 지키며 살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쯤으로 해두자.

우리가 그러하다.

8/4~16일, 나되사 멤버 전원이 12박 13일 일정으로 첫 여행을 떠났다.

6명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나라인 네덜란드로..


암스테르담과 만나다

스키폴 공항은 공항 내에서 모든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있어 편리하다.

첫 번째 미션은 예약한 힐튼호텔까지 찾아가는 것이다.

우리는 에어비앤비에서 단독주택을 빌렸는데 일정이 맞지 않아 도착 후 2박은 호텔에 머물기로 했다.

나되사 멤버들이 아무리 여행 베테랑이어도 공항 밖으로 나오면 누구나 일단 허둥대기 마련이다.

나는 미리 교통편을 정리해서 왔지만 영어 한 글자 없는 낯선 세계에 있으니 어리둥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정말 영어 안내가 없다.

이때 특유의 E와 T기질을 장착하고 조직 내에서 ‘무엇이든 물어볼래요'를 담당하고 있는 세렌이 티켓 판매하는 부스로 가서 이것저것 물었다.

"우린 햄튼 바이 힐튼 아레나로 가는데 기차 타는 곳은 어디고, 어떻게 가야 하지?"

"오케이, 거긴 아주 찾기 쉬워. 저리로 내려가서 빌머 가는 기차를 타. 아레나 역에서 내리면 역 바로 앞에 힐튼이 있어. “

세렌이 아주 유창한 영어로 물어 보고 왔음에도 플랫폼으로 내려가는 입구를 찾느라 잠시 갈팡질팡하다 기차를 탔고, 예약한 힐튼호텔까지 어찌어찌 무리 없이 찾았다.

여행의 길 찾기는 '어찌어찌'가 다 해준다.

그렇게 첫 기차 탈 때 살짝 허둥거렸지만 그 후에는 아주 자연스럽고 자신 있게 다.. 니진 못했다.

우리는 나되사.. 아닌가.

나이 되는 사람들은 기억 호흡이 짧다.

자기가 물어봐 놓고 또 묻고 또 묻는다.

내가 대답해 놓고는 좀 있다 내가 또 묻는다.

그래놓고 서로 멋쩍어 웃고, 웃겨서 웃고, 동병상련의 페이소스로 또 웃고.. 웃음의 연속인 여행이었다.


암스테르담은 가히 아름다웠다. 사람들은 또 왜 그렇게 친절한지 말이다.

아무도 나에게 길 찾기 임무를 주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길 찾기나 교통 시간표 보기가 내 임무 같아서 구글맵을 자주 보곤 했는데 구글맵을 좀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누가 다가와 어딜 찾느냐며 도움을 주려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유쾌하고 부드러웠다.

키는 어찌나 큰지 우린 거인국에 떨어진 소인들 같았다.

유럽을 여러 번 다녀봤지만 이렇게 큰 사람들은 처음 본 것 같다.


도착 다음 날은 세계게이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이라 도시는 형형색색의 깃발과 의상들로 다채로웠다.

일명 Gay Pride Festival이라는데 모두가 Happy Pride!라는 인사를 건넸다.

우리도 이 축제의 날에 있을 수 있어 행운이었다. 도시탐험을 끝내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구글맵을 보는데 키가 엄청 크고 화려하게 치장한 어떤 남자가 "도와줄까?" 하며 말을 걸었다.

"아니, 도움은 필요 없어. 그저 교통편을 체크하는 중이거든."

"너흰 어디서 왔니?"

"우린 한국에서 왔어."

"오, 한국.. 거기 엄청 덥다지? 잼버리 대회 참가한 스카우트들이 힘들어하고 있잖아."

"...(너무 부끄러워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근데 우리가 기후를 어떻게 할 순 없잖아. 나도 안타깝게 생각해."

"아니야, 아니야, 너희 잘못은 전혀 없지. 사과하지 않아도 돼. 어쨌든 Happy Pride! 우리 허그하자!"

순간.. 아니.. 이 자식이.. 근데 옷차림으로 보아 너는 게이.. 키 크고 잘 생긴 게이네.. 내가 언제 키 크고 잘 생긴 게이랑 허그를 해보겠어.. 그래, 하는 거야..

우리 멤버들은 나랑 좀 떨어져 있었는데 미리애~미리애~ 빨리 와요~ 지나, 지니 찾았어~라며 나를 구해주려는 듯 불렀다.

그러면 뭐 하니.. 나는 이미 키 크고 잘 생긴 오빠의 배꼽쯤에서 숨이 막히도록 허깅을 당하고 있었다.

덩달아 옆에 있던 세렌도 마지못해 허그를 했는데 이 오빠야 세렌의 표정을 읽고는 살짝 안는 척만 했다.

그들은 그저 그들의 날을 축하받기를 바랐던 거다.

우리 오빠야들.. 늘 행복해라..


1995년 8월

첫 배낭여행을 갔을 때 암스테르담에서 하룻밤을 지내야 했는데 기차역 밖으로 나가기가 너무 무서웠다. 당시 암스테르담은 마약 소굴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차를 갈아타야 해서 부득이 암스테르담 역에 내렸는데 타야 할 기차는 이른 새벽에 있었다. 도시를 둘러볼 시간이 있었지만 배낭을 끌어안고 역 안에서 밤을 꼴딱 새웠다.

커다란 두 눈 속에 의심과 공포 가득했던 '간 크고 겁 많던' 내가 이 도시를 28년 만에 다시 왔다.

이번엔 든든한 친구들과 함께 말이다.

들은 이야기는 그저 들었던 것일 뿐 본 것은 아니다. 암스테르담에게 미안했다.

이제는 내가 암스테르담을 꽉 끌어안을 차례다.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

아름다운 근교 도시 이야기, 멋진 숙소 이야기, 그리고 세 명씩 팀을 나누어 여행했던 아일랜드 더블린 이야기 등 말이다.

아, 빠질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카드게임으로 폐인 된 이야기까지..

아직 시차적응으로 꽤 고생 중이라 천천히 이야기해야겠다.

다음 편은 숙소 이야기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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