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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한결 Jan 25. 2024

우린 이미 설 곳을 잃었다

의과대학 정원 증원 논의를 바라보며

의료의 질, 접근성, 그리고 비용에 대한 사회적 합의 없이, 핵심을 피해 갈등만을 부추기는 정책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게 과연 맞나 싶은 요즘이다.

사회 제도가 변화 없이 맹목적으로 특정한 가치를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제도에 기반해 수립되어 있는 체계는 새로운 요소를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변화한다. 헌데 현실 반영도가 떨어지는 요소를 무턱대고 함입시키면 결과적으로 체계는 무너지고 찌그러지기 마련이다.

좋은 논지와 근거로 순기능을 강조하여 집행된 정책임에도 불구하고 시간 경과에 따라 급변하는 현실에 정책이 조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한정된 자원의 분배와 기능 조정에 실패하는 게 하루이틀 일이 아니지만, 인구집단의 건강 증진, 예방, 치료, 관리를 포괄하는 보건의료 영역에서의 우선순위를 고려하여 무엇이 작동하게 할 것인지, 누구를 살릴 것인지, 어떤 형태로의 공존을 가능하게 할 것인지에 관한 논의가 선행되었어야 했다. 

미래의료를 책임지는 제2 차관과의 대화, 전공의 간담회에서는 이런 부분을 짚어 이야기하고 싶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묻고 싶었다. 무엇을 달성하고자 하고,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고 고려하고 있는지를 이야기하길 바랐다. 층위를 나누어 목적을 이야기하면 다소 동떨어진 수단을 활용하려 든다는 점을 충분히 짚고 넘어갈 수 있지 않은가 하는.. 순진한 생각이었다.

지역사회의 자생적 체계 구축에 주민참여는 근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요인이다. 허나 그 참여를 통해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구체적인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등은 때로 특정 결정권자들이 숙고하여 형성해 둔 틀을 잘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고로 시민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동료 시민과 열린 대화를 이어가고자 사회가 요구하는 수준에 맞추어 대화하는 사회적 의무를 부족하나마 수행해 왔다. 국가가 배타적 권한을 부여한 면허권자에게만 특별히 당연하게 주어진 권리와 권한은 없고, 잠자는 권리를 보호해 줄 이는 없으니까.

다만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문이 들었다. 과로한 탓에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지 못한 원죄가 있다면 죄의 삯을 받는 것이라 생각한 적도 있다. 환자 진료에 집중하기만도 바쁜 의사 동료들이 정책 집행의 근거까지 마련해야 하느냐는 볼멘소리에 자연히 심정적 동의가 되었다. 정책을 마련하고 집행하는 건 본래 정부의 역할이 아닌가.

그러나 연구할 수 있는 자료원으로 가공된 것만 연구의 대상이 된다는 편향이 의사직역의 근로에 대해서도 적용된다는 점을 알고서도 이를 외면할 수는 없어서 일을 시작했다. 정부 당국이 들고 오는 자료의 허무맹랑함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논의를 발전적으로 이끌어가기에 충분하지 못했다.

한편 보다 진전된 논의를 위해 엄밀한 연구결과를 먼저 내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예컨대 행위별 수가제 하에서, 지속 불가능한 단일보험자 체계와 실손보험 등장에 따라 초과 이용을 보이는 현행 의료행위량이 인구 감소 및 초고령화 시대에 어떻게 변하게 될 건지 추산하는 자료 등을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 복지부 비공개 연구용역 자료를 입수한 모 언론사가 며칠 전 관련 보도자료를 낸 것으로 알고 있다(기사). 아쉬운 대목이다.

여하간 충분한 논의 없이 관료 내부의 사정에 의해 정한 대로 시계가 돌아가니 약간의 허무를 섞어 강경 대응을 강조하는 세력이 근래 보다 더 득세하는 모양이다. 일견 공감이 된다. 의견을 수합하여 현황을 파악하고, 내부의 논리 정합을 따져 기조를 수립하고 필요하다고 판단한 사안에만 예산을 배정하는 식으로 정책 집행 결정권자에 의해 뜨거운 정책은 실행되기도 자연사하기도 하니까.

사회계약을 파기하고 단체행동에 임하면 현재 의사가 주장하는 내용의 정당성조차 잃게 된다는 점을 시민인 우리 역시 잘 알고 있다. 여러 법령의 위반을 명목으로 어떠한 처분이 내려질 것인지를 동료 시민뿐 아니라 시민 중 하나인 의사도 학습한 바 있다. 과연 의사인력 증원집행가능한 유일한 해결책일까? 사람 중심의 보건의료체계를 위한다면 해당 체계를 떠받치는 인력 또한 사람답게 안전히 체계 속에서 발 붙여 지낼 수 있어야 할터. 그러자면 우선 해결해야 할 산적한 문제가 한 둘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텐데. 곳곳이 낡아 헤진 신발끈을 매듭짓기에 앞서 첫 코가 잘 꿰어졌는지부터 되짚어보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모 언론지에 실린 사설 제목을 빌려 말하자면, '우린 이미 설 곳을 잃었다(기사)'.  2024년 지금 단기적으로 동료의 안녕과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모든 동료 시민의 안전을 위하는 길이라고 보기에.. 나는 지금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고 해야하는 일을 지속하고자 한다. 더 이상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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