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노동자에요.” Vs. “안녕하세요 저는 리더입니다."
브런치가 맺어준 인연인 동갑내기 작가, 용진이(https://brunch.co.kr/@nsung) 를 만났을 때, 저는 3주간 서울에서 지내면서 세가지 현상에 많은 충격을 받은 상태였어요.
1. 첫번째는 도처에서 듣게되는 ‘레버리지’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게 부동산이나 주식같은 투자던, 사업이던 그동안 대중적으로 논의된적이 많이 없었던 레버리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은 사람들이 하더라구요. 사실 '레버리지'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고, 대화의 주제는 투자와 사업이었지만, 저는 핵심은 레버리지라고 판단했어요. 즉, 노동소득의 성장이 자본소득의 성장을 너무나 앞지른 현상이었는데, 그걸 낮은 레벨로 말하면 '내 월급은 하나도 안올랐는데, 서울 아파트 값만 미친듯이 올랐다.'이죠. 저는 이번에 서울에 오기 전까지는 '나는 연봉 잘받고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한국 들어와서 돌아가는 걸 보아하니, 갑자기 투자도 제대로 못한 똥멍청이가 된 느낌의 현타에 정신을 못차리고 있었죠.
2. 두번째는 서울에서 사람들이 계층화되어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초등학교때 만난친구, 고등학교때 만나친구, 대학교때 만난친구, 성인이 되어서 해외 나오기 전과 후로 만난친구들이 서로 엄청나게 다른 라이프 스타일을 가지고 사는 것이 20대때보다 30대에 더 확연하게 차이가 나더라구요. 대화의 소재도, 삶의 고민도 정말 다른 것을 보면서 세대 차이는 경제그룹 차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컨데 사업을 하는 60대와 30대는, 사업을 하는 30대와 구직중인 30대보다 훨씬 대화가 잘통할거에요.
3. 제 주변 사람들의 편향적인 행동방식이지만, 적어도 한국에서 제 주변 사람들은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엄청난 와일드 웨스트가 되어있단 걸 발견했어요. 노동소득의 끝판왕까지 간 역량있는 친구들이 많이들 사업으로 뛰어들고 있었고, 그들을 받아줄만한 네트워크와 기회가 한국에 도처에 있다는 것을 목격하고 전 흥분했죠.
이런 모습들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서울과는 또다른 모습이라, 이 현상에 대해 깊게 이해하지는 못한채, 생각들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으니, 용진이가 자기가 만든 ‘인간사 모델링’으로 제 혼란을 정리해주었습니다.
그는 이런 질문으로 그의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왜 한국에 20 - 30대의 고연봉자가 많아졌을까?”
(http://www.joseilbo.com/news/htmls/2019/12/20191227389609.html)
그의 인간사 모델링에서는 5개로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그룹을 분류했습니다.
이게 간단하지만 재밌는 그룹핑이에요.
이 그룹은 결국 가치, 그리고 회사나 조직의 성장에 대한 자신의 기여도를 어디까지 공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분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그룹 사이에 절대적 우위는 없고, 귀천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경제적 자유도 이 계급과는 상관이 없다고 합니다.
돈을 잘 버는 노동자 (예를 들면 의사)도 많고,
좋은 회사에서는 임플로이와 리더도 엄청나게 많은 보상을 받구요 (급성장한 스타트업의 초기 직원, 1조원의 연봉을 가져가는 헤지펀드 매니저 등)
반면 시급으로는 최저시급도 안나올만큼 많은 시간 일하는데 보상은 많지 않은 창업가들과,
평생 갚아도 못갚을 것 같은 빚더미에 앉은 사업가들도 많으니까요.
그런데 얘기는 이제부터 재밌어집니다.
바뀌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는 연차가 쌓이면서 직급이 올라가는 방식에 익숙했어요. 회사의 성장에 대한 기여도를 엄격히 평가해서, 그 기여도에 따라서 승진 및 보상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었죠. 왜냐하면 오너가 미래를 결정하고 이끄는 기업구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오너는 방향성을 정하고, 오너의 말을 충실히 이행해줄 노동자 그룹이 필요했어요.
오너는 대부분의 보상을 가져갔고,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한 노동자들은 적은 노동 소득을 가져가게 됩니다. 승진이 연차와 연결되어 있고, 개인에게 조직의 성장과 직결될만큼 큰 책임과 의무를 부과하지 않기 때문에 승진할 때마다 가져가는 연봉 상승률이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제 구조 자체가 임플로이와 리더 그룹이 중요하고 장려되는 경제 구조가 아니었습니다.
개개인이 아무리 역량이 있어도, 조직의 구조가 그렇게 짜여지면, 생각하는 방식이나 마인드셋이 그 구조에 맞춰 적응이 되죠.
뭐랄까, 노동자이기를 강요당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모든게 달라졌죠. 글로벌화가 시작되면서, 특히 전통산업이 아닌 정보산업처럼 정말 쉽게 국경을 넘나드는 산업이 가장 중요한 고부가가치 산업이 되면서, 노동자 - 오너의 체제가 한계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글로벌 회사들과 경쟁을 해야하니까 이제 시스템으로 value를 만들 수 있는 리더를 영입해야할 필요성이 커지기 시작한거에요. 리더 그룹의 핵심은 시스템을 고치고 만들어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고 밸류를 늘리는 것인데, 한국에는 대부분 회사가 오너중심이었기 때문에 리더의 입지가 작았고, 따라서 미국처럼 몇 십, 몇 백억씩 월급을 받아가는 리더 그룹 또한 두텁지 않았죠.
지금까지 '까라면 까'라는 멘탈리티에서는 리더와 임플로이를 키우는 구조가 아니었거든요. 시스템을 바꿔서 나아지게 하기보다는, 내가 열심히 해서 고치는 경우가 더 많으니까요.
여담이지만 그래서인지 한국과 영어권 국가는 자기개발의 방향성도 다소 다릅니다.
한국은 스킬셋을 습득하는것에 집중하는 반면 (외국어 공부, 자격증 공부, 코딩공부, 등등)
영어권 국가, 특히 미국식의 자기개발은 마인드셋과 관련한게 더 많습니다. (토니 로빈슨의 성공 마인드 워크샵, 카네기 인간관계론, 프랭클린 다이어리 등등)
한국사회가 노동자 - 오너의 콤비가 열심히 일해서 이룩한 경제 성장이, 다음 레벨의 성장으로 넘어가려다 보니, 임플로이와 리더그룹 인재들의 수요가 가파르게 늘어나면서 리더, 임플로이급의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나라가 된거에요. 국내파든 해외에서 들어온 인재든 리더와 임플로이 그룹이 빠르게 인정받기 시작했고, 많지 않은 리더와 임플로이 그룹의 사람들을 채용하려다보니까, 그에 맞는 대우를 해주어야 했죠. 이것이 한국에 20 - 30대의 고연봉자가 많아진 스토리의 사회적 배경인거에요.
그렇다면 세번째 포인트였던 외국에서 일하고 있던 연봉 끝판왕 친구들이 한국으로 들어와서 사업을 준비하는 것에 대한 설명은 어떨까요? 이미 외국에서 임플로이, 리더 급으로 일하고 있던 사람들은 창업가, 사업가들과 만날 기회가 많거든요. 이런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한국에서 창업가, 사업가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마인드셋을 배우게 되는거죠.
이 상황은 중국도 비슷해서, 미국에서 스타트업의 광기를 맛본 많은 중국인 임플로이, 리더급 직원들이 중국으로 돌아가서 중국 내 투자자들의 거의 ‘아묻따’ 투자를 받고 창업가로 전향하는 스토리가 많아요.
그래서 "왜 굳이 미국에서 억대 연봉을 포기하고 한국/중국으로 가느냐?"라는 질문들이 많은데, 대답은 이거에요. 미국에서 임플로이/리더로 억대 연봉을 받는 것보다, (물론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손에 닿을 것 같은, 그 이후 단계의 기회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인거에요. 그리고 거기에 업사이드가 훨씬 큰거죠. 제가 한국에서 느꼈던 한국이 창업가들의 와일드 웨스트가 되어가고 있다고 느낀 것의 설명이 되더라구요.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건, 이 다섯 그룹을 나누는 가장 합리적인 기준이 연봉수준도, 지능도 스킬셋도, 역량도 뭣도 아닌, 마인드셋이라는겁니다. 이 그룹들의 사람들은 다른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저는 노동자에요.” Vs. “안녕하세요, 저는 리더 포텐셜입니다.”
이걸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어떤 마인드셋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행동 양식이 달라지기 때문이에요.
구직활동을 예로 들어볼게요.
구직활동이 소극적 구직자에서 적극적 구직자들로 행동양식이 바뀌고 있어요.
공고가 뜨면, 그걸보고 이력서를 제출하는 단순한 과정을 안에서보면 많은 물밑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죠.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구직자들을 도와주고 있는데, 쉽지 않은 이유가 구직을 잘하고 못하고는 단순 기술적인 ‘팁’에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마인드셋을 바꾸는 것이 훨씬 중요해요.
예를 들면, 많이 주는 팁중에는 '지원하고 싶은 회사의 직원들에게 컨택해서 도움을 요청하라’같은 팁이 있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하는 고민은 ‘무슨 얘기를 해야하나요?’ 혹은 ‘무슨 질문을 하죠..?’ 이런거에요. 당연히 질문이 없을 수 밖에 없어요. 왜냐면 내 마음상태가 ‘나를 뽑아주면 무슨일이든 하겠습니다’라는 일을 시켜주길 기다리고 있는 ‘노동자’의 마인드셋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들이 선망하는 회사들이 ‘인재’라고 생각하는 것은 노동자가 아니거든요.
우리가 지원하는 회사들은 지금 어느때보다 경쟁때문에 미칠 것 같은 상태에요. 작은 회사는 resource가 넘쳐나는 큰 회사들과 경쟁하느라 머리 터지고, 큰 회사들은 나는 6개월은 지지고 볶아야 기획안을 간신히 통과시키는데 2개월만에 신제품을 만들어내는 미친듯 agile한 작은 회사들때문에 정신 없구요.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사람은 시키는 일을 열심히 해내는 머슴같은 직원이 아니고, 이렇게 말하는 직원일거거든요.
“평소에 XX회사 제품/서비스를 엄청 좋아했어요. 이런이런 점이 제 삶에 이렇게 저렇게 유용했고, 그래서 헤비유저가 되었죠. (Why 이 회사인가?)
그런데 보아하니 마케팅에서 이런 부분이 좀 더 나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부분은 정말 훌륭한데 이런 부분은 좀 아쉽더라구요. (What 무엇이 좋은데, 무엇이 아쉬운가?)
그런데 마침 제가 XX 부분을 잘합니다. XX 부분을 이런 저런 일을 통해서 많이 해봤고, 더 추가로 공부하고 있어요. (Why 나 인가?)
마침 채용공고를 보고 이력서 중 하나로 묻히고 싶지 않아 연락드립니다. 인사팀이나 해당 부서에 추천 부탁드려도 될까요?
(채용공고가 없다면) 현재 채용은 안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혹시 관련해서 얘기를 나누고싶은데, 회사내에서 연결해주실 수 있는 분이 있으실까요? (그래서 당신이 날 위해서 해줘야할 액션에 대한 명확한 요청)”
마인드셋을 바꾸고나면, 뭐라고 써야할지, 뭐라고 말해야할지는 자연스럽게 술술 나오게 돼요.
인터뷰에서도 마찬가지에요. 같은 명문대를 졸업하고 비슷한 스펙을 갖춘 두사람을 인터뷰하는데, 인터뷰를 하다보면 마인드셋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인터뷰가 끝나고 나면 같은 스펙을 가졌어도, 금액이 매우 다른 오퍼를 받을 수 있어요. 노동자를 자처한 사람은 같은 대학교 출신이라도 3천만원의 연봉을 오퍼받고 그 오퍼를 수락하고, 조직의 성장에 기여를 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진 임플로이/리더의 포텐셜을 가진 사람은 5천만원의 오퍼를 받고도 6천만원까지 끌어올리죠. 왜냐면 그 직원은 그 값을 하기 때문이에요.
개인적으로 저의 가장 큰 관심사는 창업가와 사업가 그룹입니다.
이 두 그룹 사이에는 이런 차이가 있어요.
예컨대 창업가는 내가 마케팅을 아주 잘해서 마케팅 에이전시를 만든 사람입니다.
사업가는 역시 마케팅 에이전시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은 마케팅은 잘 모르지만, 나에게 투자를 해줄 사람을 데려오고, 마케팅 잘하는 사람을 데려오고, 나에게 마케팅 외주를 줄 고객을 데려와서 판을 깔아 놓고 비즈니스가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계발서의 실수 중 하나는 좋아하는 일로 하는 것의 한계는 리더 혹은 개인 사업자까지라는 것을 말을 안했다는 것이라는 용진이의 말에 무릎을 쳤죠.
결국 창업가나 사업가는 레버리지가 핵심이라, 계속 성장을 목표로 해나가면 본인은 ‘레버리져 (이런 단어도 존재하지 않지만)’가 되어야 하는데, 그거 자체는 자원을 분배하는게 핵심 일인데, 자원분배가 행복한 사람이 어딨냐는 거에요.
그래서 인플루언스가 좋은 사람, 요리하는 게 좋은 사람,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아이템으로 사업을 했을 때 불행해지는 이유가 그거입니다. 사업을 잘하는 것의 핵심은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게 아니고, 레버리지를 잘하는데에 있기 때문이에요. 커피를 좋아해서 카페를 만든 사람의 핵심은,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게 아니라, 카페를 운영하는게 되니까요.
주변에 성공적으로 자기가 운영하던 사업을 팔고 exit을 한 창업가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걔들에게 너는 무엇을 잘해서 좋은 결과를 냈냐고 물어보면, 많은 친구들이 이렇게 대답해요.
“내가 잘하는 건 투자를 잘 받아오는거야.”
.
투자를 잘받아오고, 그 돈으로 좋은 임플로이와 리더를 영입해오는 판을 벌리는 능력.
그러면 그건 이미 절반 이상의 성공인거죠. 리더와 임플로이들에게는 성장을 이루어내는 역량이 있으니,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낼 것이거든요. 설사 아이템이 좋지 않더라도, 피봇을 해서든 어떻게 해서든요. 투자를 결정할 때 팀을 본다는게, 결국은 이 개인의 레버리지 역량을 본다는게 아닐까 생각해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환장을 하겠는 건, 이 모든 그룹 사이을 나누는 것은 ‘마인드셋’이라는 거에요.
저렇게 구분해놓으면 노동자 -> 임플로이 -> 리더 -> 창업가 -> 사업가의 사다리를 오를 것 같지만, 실제 사회에서 보면 노동자 -> 창업가/사업가로 가기도하고, 임플로이 -> 창업가도 많고, 사업가 -> 임플로이도 있고, 유동적이거든요.
문제는 어떤 마인드셋을 가질 것인지는 학교에서도 가르쳐주지 않고, 이게 타고 나는건지, 내가 어디가서 배울 수 있는건지도 감도 안옵니다. 사실 뭐 경영학을 공부하면 임플로이가 되는 마인드셋까지는 알려주지만, 그걸 내 마인드셋으로 탑재하냐는거는 다른얘기고, 따라서 어찌저찌해서 경험과 시간으로 리더는 갈 수 있지만, 거기서 창업가와 사업가가 되는 것은 다른 차원이니까요. 회사 생활을 하면 할수록 내가 진짜 돈에 대해서는 멍충이구나라는것을 느끼며 겸허해지죠. 매년 수확량을 어떻게 제값을 받고 팔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농부인 우리 할아버지가 저보다 돈에 대한 흐름은 더 잘보실걸요?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마인드셋은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는 겁니다. 같이 다니는 사람들이 친구든 동료든 매~일 이런얘기하면 그런 마인드에 익숙해지게 되요. 이게 제가 말한 한국의 계층화 트렌드와 합해지면 좋지 않은 결과를 만들게 될거에요. 부의 계층화가 눈에 보이는 조건들이 아니라 마인드셋처럼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 방법으로 일어나면, 이걸 뭐 어떻게 고쳐요? 혁명조차도 일으킬 수가 없죠.
개인적으로 저에게 가장 극적인 마인드셋의 변화는 임플로이에서 작은 회사의 리더가 되면서 일어났어요.
임플로이였을 때는 내가 일을 잘해서, 회사의 성장에 기여를 해서 내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려고 했던 마인드셋이었고, 그 관점밖에는 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리더가 되면서 회사의 성장이 아니고, 거의 회사의 존속을 좌우하는 위치에서 내가 방향과 방법을 생각해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니까, 처음으로 내가 이 일을 잘해서 목표를 이루어야겠다가 아니고, 잘하는 사람을 통해서 이 일을 이뤄야한다로 바뀌는게 느껴졌거든요.
즉, 늘 레버리지를 당하는 입장에 있다가,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을 레버리지 하는 관점에서 일을 보기 시작한거에요. 그러니까 비즈니스를 보는 관점이 많이 바꼈죠. '내가 잘해야겠다'가 아니라, '잘하는 사람들을 뽑거나, 잘할 포텐셜이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잘 키워야겠다'로요.
그렇게 한번 마인드셋이 바뀌고 나니까, 더이상 레버리지를 당하는 쪽으로는 가기가 어렵더라구요. 이게 제가 거만해져서 그런게 아니라, 실제로 젊은 직원들이 진짜 잘하거든요. 그 일을 저보다 잘해요. 걔네들이 하는 일을 제가 해서 걔네보다 좋은 밸류를 만들어내지 못할거란게 인정이 되고 눈에 보여요. 그래서 저는 그런 친구들을 잘 활용해서 종합적인 성과를 내는 일을 해야만 하는거죠.
내가 능력이 있어서 그 자리에 가든, 자리가 사람을 만들든, 유전자에 타고나든, 어리 시절의 환경이든, 후천적 학습이든, 핵심은 마인드셋이에요. 나는 어떤 마인드셋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하고 있을까, 어디에 목표를 둘까를 계속 고민하고 배우며 살아야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인드셋은 좋은 책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무엇보다 가장 효과적인건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입으로부터 전해들어야해요. 그게 멘토의 중요성이고, 소속집단의 중요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급 마무리인데, 이게 요새 제가 세상을 보고 있는 관점들이에요. 사실 이 얘기를 발행했다가, 발행취소하고 반복했었어요. 일단 좀 재수없잖아요, 제가 이런말 한다는거 자체가. 더욱이 저는 학자도 전문가도 뭣도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사회를 바라보는 개인적이고 편향적인 시각이니까요.
저에게 너무나 큰 교훈이었지만, 모두에게 의미가 있지는 않겠죠. 제 글을 읽는 분들 주변에 저나 제 친구같은 사람이 없다면, 그냥 세상에 이런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 있구나 정도의 신선함으로 와 닿으면 좋겠어요. 그렇지만 제가 보고 있는 것을 보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들에게는 food for thought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